가을 아침 산책 단상(斷想)
  • 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8 16:49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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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산책을 나갈 때가 많다. 가을이라 새벽 공기가 선선해서 동네 골목길을 걷기 좋고, 마주치는 나무들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일찍 배달된 신문을 펼치면 이런저런 문제로 시끄럽기만 해서 요즘은 아예 접힌 채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직행하는 날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시비와 분쟁이 있기 마련이다. 재산에 관련된 것이건 명예에 관련된 것이건 다양한 이해관계로 다투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닌가.

 

문제는 해결 절차다.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나 논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것이 신속·정확하게 정리·해결될 수 있다면 선진국이다. 이런 분쟁 해결 시스템이 미비하거나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사회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사회적 이슈가 해소되지 않고 쌓이면 결국은 집단행동이나 폭력 등 불법적 수단에 기대게 되고 자칫 법질서가 와해되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 부민고소율(部民告訴律)이란 독특한 법제가 있었다. 이 법은 세종 2년(1420) 실시됐는데 종사안위(宗祀安危)나 비법살인(非法殺人)을 제외하고는 백성이나 부하가 관리 또는 상관을 고소할 수 없게 막고, 고소하면 오히려 고소인을 처벌하는 법령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불합리한 내용이지만 과거에는 백성들이 부모와 같은 지방수령을 고소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유교 윤리로 정당화됐다. 삼강오륜의 사회 기강을 세우고 지방관의 소신 있는 행정을 보장하겠다는 뜻도 있었지만, 백성들이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 결과적으로 지방관들의 부정부패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정한 사법 절차를 통해 모든 분쟁이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이다. ‘국민의 알권리’에 봉사하는 언론의 취재와 보도, 국회의 국정 감시·견제 기능을 보장하는 민주적 의사 절차 등 다양한 경로로 사회적 이슈가 걸러지고 검증받지만 최종적으로는 수사와 재판이라는 사법 절차에서 분쟁 해결이 이뤄지는 것이다.

 

ⓒ 사진공동취재단

따라서 검찰이 수사하고 있거나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안이라면 그 결과를 기다려 판단하는 것이 옳고, 사법적 결론이 나오면 누구나 그것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대신 사법은 신선(新鮮)해야 한다. ‘지연(遲延)된 정의(正義)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법언(法諺)처럼 수사와 재판이 신속하게 종결되지 않고 오래 끄는 것은 어떤 경우건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는 그런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수사 성과를 두고 비판도 있었지만 수사에 착수한 지 4개월 내에 결론을 내리고 마무리 지은 것은 근자에 보기 드문 신속하고 깔끔한 조치였다.

 

최근의 몇몇 논란을 지켜보면서 산책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다. 언론의 문제 제기 기능은 소중하고 국회의 국정 감시도 포기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일단은 철저·신속한 수사를 믿고 지켜보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검찰의 결론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가서 당부(當否)를 비판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는가.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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