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인데, 왜 응원하고 싶을까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7 15:09
  • 호수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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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호응 이끌어내는 《공항 가는 길》

KBS2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 9.1% 시청률로 선전(善戰)하고 있다. 특히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가 높아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설렌다’ ‘두 사람 사랑에 망을 봐 주고 싶다’는 반응이 게시판에 나타난다. 망을 봐 주고 싶은 이유는 주인공들의 사랑이 금지된 사랑, 즉 ‘불륜(不倫)’이기 때문이다. 우리 드라마에 불륜은 이미 보편적인 소재이지만, 이 작품은 그 불륜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리고, 거기에 시청자들이 호응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시청자들에게 불륜 이전에 위로·배려·존중이란 느낌으로 다가간다. 여주인공 김하늘의 남편 신성록은 “와이프는 집이라는 곳에 있는 하나의 가구”라며 “집에 있는 가구는 밖에 있는 가구랑 다르다. 똑같은 침대라도 집의 침대가 더 편하다”는 식으로, 부인을 그저 집에 있는 편한 가재도구 취급을 한다. 비행기 기장인 그는 부인에게 자신의 현 위치를 알려주지도 않고, 고압적이고 무신경한 가장의 모습을 보인다. 항공 승무원인 김하늘도 남편과 애틋한 사랑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일하러 나갔던 해외 호텔에서 밤새 대화하다 관계가 진전됐고, 관성으로 결혼한 경우다. 그런데 신성록은 다른 여승무원하고도 밤새 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하늘에게 남편은 사랑을 따지는 것조차 낯 뜨거운,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진상 손님’ 같은 느낌이다.

 

남주인공 이상윤은 고압적이고 무신경한 남편과 달리 다정다감하고 김하늘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신성록과 달리 이상윤에겐 따뜻함이 있다. 그는 딸에 대한 부성애도 지극정성이다. 이상윤 입장에선 자신의 아내가 모성애조차 없을 정도로 차가운 사람이라 괴로워하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각자의 배우자하고는 전혀 다른, 정말 상대를 배려해 주고 따뜻하고 사고방식도 비슷한 두 사람이 만나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는 설정이다. 《공항 가는 길》의 김철규 PD는 “불륜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서로 위로하는 두 사람과 그들을 바라보며 위로받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위로를 하든 말든 불륜 여부가 가장 중요했었는데, 세상이 바뀐 것이다.

 

드라마 《공항 가는 길》 © KBS

《밀회》에서 《굿와이프》《공항 가는 길》까지

 

1956년 영화 《자유부인》과 1960년 《하녀》에서 불륜녀는 엄격한 단죄를 받았다. 드라마에선 1967년 《개구리 남편》이 불륜을 다뤘는데, 사회적 파문이 일었고 청와대 지시에 의해 조기 종영되고 말았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드라마의 불륜 조장 기능을 염려했다고 한다. 이렇게 부정적인 시선이 있어도 불륜 코드는 점점 드라마의 대세가 되었고, 2004년에 한겨레신문이 ‘현 지상파 드라마 23편 중에 불륜 코드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작품은 8편뿐’이라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드라마 《밀회》 © JTBC
하지만 과거 불륜의 주체는 주로 남편이었고, 그에 대한 아내의 대응은 울고불고하다 불륜녀를 찾아가 한바탕한 다음 결국 남편을 용서하는 것이었다. 1988년 《모래성》에서 부인이 홀로서기를 선택하면서 여성의 주체성이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 후 1996년 《애인》에 이르러 여성이 ‘아름다운 불륜’의 주체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전까지 불륜 드라마를 성토했던 여성 시청자들이 《애인》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고, 남편들은 그것을 드러내 놓고 불편해했다. 급기야 국회에서 《애인》을 성토하기까지 했는데, 비판 논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았다. 

 

불륜 코드는 주말드라마와 일일드라마의 자극성이 강해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2008년에 막장드라마 전성시대의 포문을 연 《조강지처클럽》은 불륜에 올인했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대성공을 거뒀다. 2009년엔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불륜녀를 처절히 응징하는 《아내의 유혹》이 국민 막장드라마 반열에 올랐고, 임성한 작가의 작품들에서도 불륜 코드가 빈번히 등장했다. 이런 막장드라마의 불륜 코드는 본처와 불륜녀 사이의 육박전, 본처의 설움, 불륜녀의 패망 등 전통적인 불륜드라마 설정을 더 자극적으로 강화시킨 형태다.

 

드라마 《굿와이프》 © tvN
비(非)막장드라마 계열의 불륜 묘사에서 여성의 주체성은 점점 더 강화되어 갔다. 2014년 《밀회》에선 김희애가 20살 연하의 유아인과 불륜에 빠졌다. 김희애가 유아인에게 ‘특급칭찬’을 보내는 등 권력관계의 상위에 있었다. 올 8월에 종영한 《굿와이프》에선 전도연이 남편과 ‘불륜 사랑’을 모두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했다. 그리고 《공항 가는 길》에서 유부녀 김하늘이 낭만적인 불륜에 빠져든 것이다.

 

두 가지의 흐름이 읽힌다. 첫째는, 불륜 코드의 일반화다. 불륜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자극적인 소재이고, 드라마 주 시청층인 주부들의 관심이 큰 소재다 보니 과거 금기시됐던 시절에서 점점 영역이 확대됐다. 《애인》이 아름다운 불륜을 전면에 내세웠을 땐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발이 나타났었지만, 올 초 지진희가 《애인 있어요》로 조용히 로맨틱한 불륜남에 등극했고, 《공항 가는 길》에도 《애인》 정도의 반발은 없다. 일반화되는 것이다. 10월말부터 방영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처럼 아예 제목에서부터 여성의 불륜을 앞세우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 드는 현상까지 등장했다. 둘째는, 불륜 묘사의 변화다. 불륜 묘사는 막장드라마의 혐오스러운 불륜과 비막장 계열의 다양한 불륜 형태로 분화됐고, 여성의 역할도 달라졌다. 그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호응은 강해졌다.

 

 

불륜 묘사의 변화로 여성들 호응 강해져

 

이런 변화의 바탕엔 사회적 흐름이 있다. 조혜정 이혼전문 변호사는 “과거엔 이혼이 인생 실패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한다. 한 번 부부가 됐으면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또 많은 트렌드 분석자들은 점점 더 개인의 행복이 중시된다고 지적했다. 과거엔 일단 가정을 이뤘으면 배우자가 ‘가구’이든 아니든 그저 운명이려니 하고 다른 생각을 안 했는데, 지금은 ‘내가 행복한가?’를 묻고, 행복을 찾아서 행동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2007년에 재혼정보회사 ‘행복출발’의 조사에선, 본인이 불륜관계라면 ‘현 부부관계와 불륜관계를 동시에 유지한다’는 답이 45%로 나온 적도 있다. 불륜의 금기 자체가 약해졌고, 이젠 행복을 찾고자 하는데 그러려면 사랑이 필요하고, 그런 사랑이라면 배우자가 아니라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흐름이다.

 

이런 배경에서 불륜드라마가 범람하는 것인데, 문제는 불륜이 결혼제도 및 가족의 안정성, 그리고 그에 바탕한 사회의 안정성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또 드라마 속에서 불륜이 만연하면 현실의 사람들이 불륜을 쉽게 여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므로 불륜드라마 범람과 함께 논란도 커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불륜드라마는 점점 와해되어 가는 기존의 결혼제도와 그에 대한 우려가 충돌하는 전선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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