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 ‘대통령 후보’ 되나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12.12 09:28
  • 호수 14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 시험대’ 오른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국무총리

“황교안을 잘 봐라. VIP가 황교안 총리를 참 좋아한다. 상당히 뜰 수 있다.” 올해 5월, 종편 방송에 출연하는 한 시사평론가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뜰 수 있다”는 말은 곧 ‘대권 주자 황교안’을 의미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함께 ‘박근혜의 남자’로 꼽혔던 황 총리가 대권 주자 판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12월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재적 의원 300명 중 23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제 대통령의 역할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신한다. 이날 오후 7시3분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황 총리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고, 한동안 마비되다시피 한 국정운영도 안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2017년 있을 조기 대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거나 자진 하야할 경우 헌법에 따라 조기 대선을 치를 수 밖에 없다. 국정운영을 대행하는 황 총리 역시 조기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 이미 야권은 잠룡들이 즐비하다. 현 시점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부터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후보가 많다. 하지만 여권은 현재 뚜렷한 인물이 없다. 친박계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구애를 했지만, 반 총장 측은 “대선에 나가더라도 새누리당과 손잡기는 힘들다”는 기류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

“박 대통령, 황교안 키운다” 분석

 

여권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황 총리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누리당과 손잡지 않을 경우, 폐족(廢族)이 된 친박계가 황 총리를 영입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무대라는 관측도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이 ‘대통령 후보 황교안’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관상을 다룬 허영만 화백의 만화 《꼴》의 감수자이자 현 시대 대표 관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신기원씨는 2013년 9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 총리의 관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다른 모든 것이 좋아도 목소리가 나쁘면 완벽한 관상이 못 된다. 그런 예가 바로 김종필씨다. 그는 세상에 없는 귀상(貴相)이다. 그런데도 그가 최고 권좌에 못 오른 것은 탁성(濁聲) 때문이다. 반면 최근 공직자 중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목소리까지 갖춘 귀상이다.” 이후 관가에서는 “황 장관은 차기 총리감”이라는 하마평이 돌았다. 실제로 2015년 4월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낙마한 뒤 총리에 지명되자 “관상 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얘기가 나오자마자 관상 얘기가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박 대통령은 황 총리의 ‘이미지’를 상당히 좋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총리가 2015년 6월 총리 자리에 오를 때, 한 여권 인사는 “황 총리는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부드러운 인상과 일처리 능력, 진중한 성격 등이 ‘이상적인 공무원’에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라고 전했다. 황 총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 역시 이 부분을 황 총리의 강점 중 하나로 꼽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본래 황 총리를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키운다는 복안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6월 국무총리 임명 당시 “대통령이 ‘황교안 카드’를 일찍 사용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한 여당 인사는 “원래 박 대통령은 황 장관을 임기 후반 국무총리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임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자 서둘러 ‘황교안 총리 카드’를 내민 것”이라고 전했다.

 

황 총리는 취임 후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일각에서는 ‘그림자 총리’라고 불렸던 정홍원 전 국무총리에 빗댈 만큼 언론 노출 빈도가 낮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황 총리의 행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그중에서는 “차기 대권을 위한 준비 중”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황 총리가 현안의 중심에서 벗어나 조용히 대선 주자로서의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이 시간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2015년 9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는 박 대통령의 골수 지지층은 약 30% 정도 된다. 박 대통령이 이인제 전 경기지사를 ‘깜짝 놀랄 후보’로 육성한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무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 주자군(群)이 너무 얕고, 친박 주자가 없다 보니 황 총리의 성장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는 있다. 기대대로 커주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만약 박 대통령이 황 총리를 육성하는 그림이 구체화되면 이들이 황 총리를 대선 주자로 밀어 올리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이 의원의 예상은 빗나갔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면서 국정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황교안 카드’는 유효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새누리당 내 친박계는 ‘수장’을 잃었지만, 아직까지도 엄연히 존재하는 계파다. 이들이 뭉쳐서 황 총리를 ‘영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황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분이다. 국정 안정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다면 국민의 뜻이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상황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의미다.

 

온라인에서도 미약하지만 황 총리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페이스북에는 12월7일까지 ‘황교안 대통령 만들기(황대만)’라는 페이스북 그룹이 존재했다. 통상적인 페이스북 페이지처럼 ‘좋아요’를 누르면 구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가입 신청 후 관리자가 승인해야 활동할 수 있는 그룹이었다. 하지만 12월9일 현재 이 그룹은 폐쇄됐다. 폐쇄 전까지 가입자는 약 5500명이었으며, 박 대통령 탄핵 반대와 황 총리의 대선 출마를 촉구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12월9일 오후 4시10분쯤 국회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탄핵소추안은 299명이 참여해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 시사저널 박은숙

“‘관리형 대행’으로 존재감 높일 수도”

 

정치권에선 전반적으로 황 총리가 조용하게 국정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소위 ‘관리형 권한대행’을 의미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권한대행을 했던 고건 총리의 행보와 비슷할 것이란 관측이다.

 

고 총리는 2004년 3월12일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곧바로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이어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탄핵소추 의결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처음 주재한 임시국무회의도 탄핵안 가결 뒤 불과 4시간 만인 오후 3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당시 고 총리는 노 전 대통령에게 권력을 매끄럽게 이어받으면서 사실상 국정 공백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 총리는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높였다. 단번에 차기 대선후보로 떠올랐다. ‘고건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였다. 2005년 상반기까지 고건 전 총리는 각종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2위와의 격차를 10%포인트 이상 벌리며 30%대의 높은 지지율을 이어갔다. 인터넷에서는 각종 팬클럽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2007년 1월 불출마 선언을 하며 물러났지만, ‘성공적 권한대행’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확인된 셈이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황 총리는 상당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다 권한대행 체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게 된다면, 보수 진영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엔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이번에는 탄핵 희망 여론이 80%가 넘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황 총리는 무조건 ‘관리형’ 총리로 남을 것”이라면서도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극히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황 총리는 박근혜 정권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세 번째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박근혜 정권의 모든 부채를 안고 있는 인사”라며 “황 총리가 대권에 도전한다면 야당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길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12월9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 관련 담화문’ 발표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여우 물러난 곳에 호랑이 온 꼴”

 

반면 황 총리가 국정을 맡게 될 경우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는 황 총리가 전형적인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점과, 그의 저서에 드러난 역사 인식에서 기인한다. 황 총리는 검사 재직 시절 ‘삼성 X파일 사건’과 ‘임수경 방북 사건’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점거농성 사건’ 등을 맡았다. 당시 얻은 별명이 ‘미스터 국보법’이었다. 또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에는 통합진보당 사건에 적극 개입해 해산을 이끌어냈다. 반면 국정원 댓글 사건 때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데 반대해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었다.

 

황 총리의 역사 인식에 대한 우려도 있다. 국무총리 후보자 시절, 2009년 저술한《집회 시위법 해설서》 인사말이 문제가 됐다. 그는 책에서 ‘집시법은 4·19 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해 무질서와 사회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5·16 혁명 직후 제정’됐다고 밝혔다.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또 ‘용산참사 당시 경찰의 강제진압이 신속히 단행된 이유는 농성자들의 (중략) 불법 폭력성 때문’이라고 했다. 또 2011년 10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요즘 종북 세력이 많아진 건 1991년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때 법에 주관적 요건이 추가되면서 예견됐던 현상”이라고 밝혀 시국을 바라보는 인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야당은 당장 황 총리도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 부역자’로서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비박계 중진의원실 관계자는 “여우 물러난 곳에 호랑이 온 꼴”이라며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11월21일 의원총회에서 “황 총리야말로 (최순실 사태의) 부역자”라며 “2014년 정윤회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사건 은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12월8일 “황교안 총리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탄핵소추안 뜻에는 내각불신임이 포함돼 있다고 보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12월9일 라디오에 출연해 “황 총리가 양심이 있으면 일괄 사퇴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태에 이르게 된 직접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그걸 보좌하는 것이 총리의 제1책임인데 그 보좌를 제대로 못해서 이 지경까지 온 것 아니냐”며 “본인도 똑같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일의 결과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직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도덕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여당은 황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2월2일 탄핵 이후 로드맵을 황 총리 권한대행으로 못 박은 바 있다. 또 홍문종 의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황교안 총리는 법적으로 권한대행을 하게 돼 있다”면서 “다 함께 그만두면 도대체 정부를 누가 어떻게 운영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