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돈과 몸 노리는 ‘자살 브로커들’ 판친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3 16:02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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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까지 설치하고 동반자살자 모집 후 강제추행까지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부터 14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사회단체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을 맴돌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연간 1만3510여 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6.5명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인 12명의 2배가 넘는다.

 

최근에는 집단 동반자살이 연이어 발생하는 등 자살이 전염병처럼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경기 불황, 사회 양극화, 청년실업, 급속한 고령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지난 4월1일 충북 제천시의 한 펜션에서는 20대 남녀 4명이 연탄가스로 자살을 시도해 이 중 2명이 숨졌다. 발견 당시 방 안에는 연탄불을 피운 화덕이 있고, 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주변을 정리한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

 

이틀 후 경북 안동에서는 일가족 5명이 자살을 기도해 4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로 발견됐다. 집 안에서는 “빚이 많아 고민이 많다”는 내용이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집 가스레인지 위에는 타다 만 연탄이 올려져 있었고 집 창문은 종이상자와 테이프로 막아 놓은 상태였다. 경찰은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다 동반자살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자살 방법 SNS에 버젓이 광고

 

이런 가운데 SNS를 통해 자살 방법을 알려주고 돈을 받은 ‘자살 브로커’들이 경찰에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자살방조와 강제추행 등 혐의로 송아무개씨(55)와 이아무개씨(38)를 구속했다.

 

이들은 ‘확실하고 고통 없는 자살 방법’이라는 광고까지 내고 자살 시도자들을 모집했다. 심지어 ‘자살 세트’를 직접 설치해 주고 돈을 챙겼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여성을 유인해 저승사자를 자처하며 성추행까지 일삼았다.

 

타인의 절망을 이용해 돈벌이로 삼은 ‘전문 자살 브로커’들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들의 범죄 행각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주범인 송씨의 경우 서울 소재 장례식장에서 7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는 하던 사업이 부도나자 지난해 7월쯤 포털사이트 자살 커뮤니티에서 만난 2명과 동반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때부터 송씨는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자살 방법을 습득했다. 이 가운데 질소가스를 이용한 자살 방법을 집중 연구했고, 애완용 햄스터 2마리를 구매해서 직접 실험까지 했다. 질소가스를 흡입한 햄스터가 죽자 질소가스양과 방법 등을 측정해 ‘질소 자살 방법’을 터득했다.

 

송씨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방법으로 자살 세트(질소가스, 타이머, 가스호스, 가스조절기, 신경안정제)까지 개발했다. 그리고 동반자살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이씨를 공범으로 끌어들였다. 이씨 역시 대부업체 대출로 1억원의 채무를 지고, 회사에서 퇴직한 뒤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송씨에게 ‘자살’은 돈 되는 사업이었다.

 

송씨 등은 SNS를 통해 동반자살자들을 모았다. 이들이 ‘자살 실패’와 ‘자살 과정의 고통’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송씨 등은 자살 시도자들의 이런 마음을 파고들었다. 트위터 등에 ‘질소가스로 고통 없이 확실하게 자살 가능하다’는 글을 남기는 방법으로 자살(동반자살)을 결심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자살 세트에 관심을 보인 피해자들에게는 ‘자살 세트’를 소개하며 흥정했고, 통장으로 입금을 유도한 뒤 현지 출장을 나가 설치해 줬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1월에는 100만원을 받고 인천 소재 C씨(여·38)의 집에 자살 세트를 판매·설치했다. 송씨는 “고통 없이 죽으려면 질소가스를 비닐 씌운 텐트에 연결하고, 수면제를 먹고 타이머를 맞춘 후, 질소가스를 틀고 자면 된다”며 자세한 자살 방법까지 설명해 줬다.

 

3월2일 서울지방경찰청이 SNS를 통해 질소가스 등을 이용한 자살 방법을 광고하고 일명 ‘자살 세트’를 설치·판매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들로부터 압수한 물품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약 한 달 후에는 충남 홍성군 소재 일명 ‘박사님(남·50대)’의 월셋집에다 질소가스 6통(40L)을 설치했다. 다행히 이들은 지인이 112 신고를 한 데다 자살을 실행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송씨는 우울증이 있다고 속여 병원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함께 복용해야 잠에서 깨지 않고 죽을 수 있다”며 피해자에게 판매했다.

 

송씨 등의 범행은 점점 대담하고 계획적으로 진행됐다. 자살 세트를 출장 설치하는 방식에서 아예 특정 장소에 설치해 놓고 자살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충남 태안에 있는 허름한 펜션을 장기 임차한 후 질소가스통(40L) 7개 등 자살 세트와 텐트 2개를 설치하고, 동반자살자들을 모았다.

 

송씨는 자살 실패 경험이 있는 20대 여성에게는 30대 주부인 것처럼 속이고 접근했다. 그는 ‘동반자살자들을 모집한다’며 태안의 펜션으로 유인한 후 이미 설치해 놓은 자살 세트와 텐트를 보여줬다. 그리고는 “나는 저승사자다. 나에게는 사기(死氣·죽음의 기운)가 있어 죽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며 자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했다.

 

송씨는 해당 여성이 자살을 실행하기 전에 음흉한 속내를 드러냈다. “가기 전에 한 번 하고 가라”며 피해자를 강제로 껴안으며 강제추행까지 했다. 송씨는 이렇게 동반자살로 모집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경찰이 확인한 송씨 등의 대화를 보면 “한 번 주고 가려나” “내가 찍었다” 등의 말을 주고받았다. 경찰은 송씨가 돈벌이와 성욕을 채우기 위해 자살 브로커 노릇을 했다고 보고 있다.

 

 

질소가스 이용한 동반자살 부쩍 증가

 

송씨 등은 경찰의 추적에도 철저하게 대비했다. SNS 외에도 다양한 채팅 프로그램으로 자살 시도자들과 연락하고, 연락 후에는 대화 내역을 삭제하거나 계정을 탈퇴하는 방법으로 흔적을 없앴다.

 

지금까지 송씨와 자주 통화한 여성은 16명이었고 메신저 대화를 주고받은 여성만 58명이었다. 이 중 3명이 자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는 검거되기 직전에도 여성 한 명과 동반자살을 목적으로 연락하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인적 사항이 확인된 여성들을 상대로 피해 내용을 확인 중이다.

 

송씨와 동반자살 모임에서 만난 여성들의 진술도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피해자 C씨(38)는 “송씨가 상당기간 동안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질소를 판매한 업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고, E씨(33)는 “송씨가 질소가스를 구하기 어려운 여성들을 상대로 질소가스를 판매하는 것으로 보이고, 질소가스로 자살하는 방법을 상세히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최근 들어 ‘질소가스’를 이용한 동반자살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9월5일 경기 안산 소재 한 사무실에서는 남녀 4명이 질소가스를 이용해 동반자살을 했고, 보름 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소재 아파트에서 빚더미에 시달리던 40대 가장이 일가족 3명과 질소가스로 동반자살을 했다. 올해 들어서도 1월16일 경기도 용인 수지의 한 공터 차량 안에서 20대 남성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질소가스를 이용해 자살했다.

 

문제는 이번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용 질소가스가 자살용 질소가스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포털사이트, 중고물품 커뮤니티 등 인터넷에서는 질소가스 판매 글이 게시돼 있고, 택배로 집까지 배달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 등은 충남과 인천 등 3곳의 가스판매소에서 자살용 질소를 구매하면서 용도를 확인하거나 서류 작성과 신분 확인 등 제재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최재호 경감은 “인터넷을 통해 질소가스를 이용한 자살 방법이 유포되고 있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관련 범죄행위에 대해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9월5일 경기 안산의 한 상가 사무실에서 남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 연합뉴스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자살 관련 정보가 넘쳐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인터넷 자살유해정보 신고 건수가 2만여 건에 달했다. 정부와 관련 기관의 끊임없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자살 사이트’ ‘동반자살 카톡방’ 등이 은밀하게 운영되는 실정이다. 여기에서는 자살 브로커뿐 아니라 인터넷 사기 등 각종 범죄도 빈발하고 있다.

 

경찰은 “자살을 도와주겠다는 인터넷 게시글의 상당수가 사기, 성추행 등의 범행 대상을 모집하는 수단에 불과하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기 피해자 상당수는 신고를 꺼려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실제 한 20대 여성은 지난해 8월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신원불상의 남성에게 넴뷰탈(펜토바르비탈나트륨·스위스에서 안락사에 사용되는 약물)을 구매하기 위해 135만원을 송금했으나 약물을 받지 못했다. 자살을 부추기는 전문 브로커들까지 활개 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자살자들은 반드시 징후를 남긴다

 

지금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사전 징후를 남겼다. 특히 청소년은 자살하기 전, 주변에 위험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러한 자살 징후는 행동과 언어적 의사 표현 등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자살 징후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혹시 모를 주변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으므로, 우선 가까운 가정에서부터 잘 숙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청소년의 자살 징후는 크게 직접적인 형태와 간접적인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직접적인 자살 징후 행동으로는 ‘부모 몰래 약을 사 모으는 행위’ ‘자해 위협’ ‘소유물 정리’ ‘자살 사이트 심취’와 같은 형태가 있다. 혹은 일기장이나 사이버상에 죽음을 암시하는 글귀를 남기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우 즉각적인 심리적 조치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더 위험한 것은 간접적인 자살 징후 행위다. 직접적인 자살 징후 행위의 경우 어느 누구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간접적인 자살 징후 행위는 가까운 부모조차도 쉽게 지나칠 수 있다. 평소와 다르게 우울한 음악을 듣는다든지, 죽음에 대한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든지, 뚜렷한 이유 없이 기분이 들떠 있는 행동을 한다면 한 번쯤 자살에 대해 의심해 볼 만하다.

 

심지어는 평상시와 다르게 식사량과 수면량에 변화가 있는지도 주위 깊게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평소와 다른 작은 행동의 변화가 나타날 경우에 좀 더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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