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 가능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9 10:43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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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 소재 영화들 러시 엇비슷한 이야기 구조로 기시감 지적도

 

6월15일 개봉한 《하루》는 교통사고 현장에 죽어 있는 딸을 살리려는 의사 준영(김명민)의 이야기다. 이미 죽어 있는 딸을 어떻게 살릴까.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영화에서는 가능한 얘기다. 이 영화에서 준영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어떤 이유로 자꾸만 딸의 사고 2시간 전으로 되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똑같은 사고로 아내를 잃는 남자 민철(변요한)이 합세한다. 두 사람은 눈을 뜰 때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며 딸과 아내를 구하려 하지만, 결과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처럼 특정 시간이 반복되는 타임루프(Time Loop)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들 안에서는 낯설지 않은 설정이다. 타임루프 외에도 시간을 활용한 다양한 설정들이 돋보이는 한국영화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 유독 스릴러 장르와 결합하는 추세다.

 

특정 시간이 반복되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영화 《하루》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타임루프·타임리프·타임슬립 등 다양

 

시간의 흐름은 일방향적이다. 미래로만 흐르며 되돌리는 게 불가능하다. 시간의 예술인 영화에서는 이 흐름을 뒤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편집 과정에서 흐름을 섞어 인물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플래시백이 대표적이다. 《하루》와 같이 아예 서사 안에서 인물들이 시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것도 가능하다.

 

타임루프를 포함해 극 안에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을 뜻하는 단어들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타임리프(Time Leap)는 시간을 뜻하는 타임(Time)과 되돌린다는 뜻을 지닌 리플라이(Reply)의 합성어다. 즉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 알 수 없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거스른다는 것이 타임슬립(Time Slip)과의 차이점이다. 타임슬립을 다룬 작품에서 주인공은 시간을 제어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채 과거나 미래의 특정 시간대로 미끄러진다. 또한 과거와 미래의 일이 현재에 혼재된 상태로 나타나는 시간 왜곡은 타임워프(Time Warp)다. 한국에서 영화와 TV 드라마를 통틀어 이를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시그널》(tvN)이다. 낡은 무전기 하나로 20년의 간극을 메우며 함께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들의 이야기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다.

 

과거 SF 영화들에서 주로 시도했던 이 같은 설정들은 2000년대 《소스 코드》(2011),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와 같은 할리우드 액션과 결합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2009), 《어바웃 타임》(2013)은 멜로 장르에서 시간 여행 소재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다. 뒤엉킨 시간을 소재로 한 서사가 한국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 역시 2000년대다. 당시 멜로 장르 붐과 맞물려 《시월애》(2000), 《동감》(2000) 등 영화가 나왔다. 두 작품 모두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남녀의 사랑을 다뤘다. 남북한 장교들이 뜻하지 않게 1572년으로 넘어가 이순신을 만나 겪는 이야기를 다룬 SF 코미디 《천군》(2005) 같은 영화도 간혹 있었으나 흔한 시도는 아니었다.

 

최근에는 스릴러 장르에서 시간을 활용한 작품들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아예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국형 SF 스릴러를 표방한 《열한시》(2013) 같은 영화도 나왔다. 그 밖에는 이미 벌어진 어떤 일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거나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으려 한다. 《더 폰》(2015)의 동호(손현주)는 아내가 살해당한 지 1년 후 아내의 전화를 받은 남자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걸려온 그 전화는 모든 것을 되돌릴 단 한 번의 기회다. 되돌려진 시간 안에서 아내를 구하려는 동호의 분투는 눈물겹다.

 

《시간이탈자》(2016)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시간의 축을 이탈한 사람들의 서사임을 전하고 있다. 각각 1983년과 2015년을 살아가는 남자는 꿈을 통해 서로의 시간대를 경험한다. 2015년의 남자가 보는 사건 파일을 1983년의 남자가 꿈에서 공유할 수 있는 식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 꿈이라는 매개 안에서 두 사람은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 화재의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고자 한다. 지난해 개봉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본격적인 멜로 장르 안에서 타임슬립을 시도한 경우다. 귀욤 뮈소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수현(김윤석)이 과거로 돌아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는 독특한 설정을 내건다. 현재와 과거의 수현은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누군가를 구하려는 간절함이 만든 서사

 

최근 등장한 시간 여행 소재 영화들에 유독 스릴러가 많았던 건, 큰 예산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차별화된 서사가 필요한 한국영화계가 이 장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이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담는 스릴러 장르의 특성상 시간 여행은 탁월한 소재다. 여기에서는 누군가를 구하려는 주인공의 행위가 보다 극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다.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싶은 간절함이 주인공의 동력이 된다.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결과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순간이 오더라도, 벌어지고 휜 시간의 틈 안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단 하나의 목적은 소중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는 한국 사회가 2014년 세월호라는 비극을 겪은 이후 한층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가려진 시간》(2016)은 기존 시간 여행 소재 영화들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을 다룬 영화다. 여기에서 핵심은 아이의 모습으로 사라졌던 누군가가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영화는 실종된 아이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같은 공간, 다르게 흐르는 시간 안에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세상의 규칙으로는 사라져버린 아이들이 죽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긴 시간 동안 분명 살아 있다. 그리고 사라진 아이 중 한 명은 끝내 어른의 모습으로 수린(신은수) 앞에 나타난다. 넓게 보면 이 영화는 한국 사회가 구하지 못했던 생명들을 기억하려는 시도이자 그 모든 사건들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반면 아쉬움을 남기는 시도도 많다. 《하루》의 경우 여러 명이 동일한 타임루프에 갇힌다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을 위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인상이 강하다. 시간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소재가 그간 다양한 장르와 만나지 못하고 스릴러 안에서 엇비슷한 이야기 구조로 활용됐기 때문에 기시감이 불거진다는 점도 문제다. 보다 다양한 장르 안에서 신선한 시도가 필요한 때다. 모든 장르가 그렇듯, 결국 좋은 이야기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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