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했던 스파이더맨이 마블에 돌아왔다고 전해라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3 11:01
  • 호수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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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에서 고향 마블로 귀환했음을 알리는 《스파이더맨: 홈커밍》

 

2012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라는 이름으로 리부트를 선언했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다시 한 번 제작진과 주연배우를 교체해 또 다른 시작을 알렸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그 주인공. ‘홈커밍(Homecoming·미국 고등학교에서 1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학생 파티)’이라는 부제에서도 짐작 가능하듯 이번에는 고등학생 영웅이다. 동시에 이는 스파이더맨이 드디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귀환했음을 재치 있게 알리는 제목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을 둘러싼 판권과 제작 이슈들은 그간 그의 거미줄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 소니 픽쳐스

 

마블 최고 인기 캐릭터의 반가운 귀환

 

스파이더맨의 복잡한 족보를 설명하기 위해선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경영 악화에 시달리던 마블코믹스는 《엑스맨》 시리즈의 영화화 판권을 20세기폭스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영화화 판권을 소니픽처스에 각각 넘긴다. 2000년대 중반 자사 스튜디오를 설립한 뒤 《아이언맨》(2008)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던 MCU 작품에 엑스맨 멤버들과 스파이더맨이 등장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미 영화화 판권을 넘긴 캐릭터를 영화에 등장시키면 ‘계약 위반’이었던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소니픽처스는 샘 레이미 감독과 손잡고 《스파이더맨》 3부작(2002~07)을 만들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후 스튜디오와 제작진, 그리고 배우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며 이 시리즈는 막을 내리게 되었고, 소니는 2012년부터 제작진과 출연진을 교체한 리부트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2편을 선보였다. 《500일의 썸머》(2009)로 유명한 마크 웹 감독과 배우 앤드루 가필드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이 시리즈는 예상외의 흥행 부진과 2014년 소니 해킹 사건 등으로 악재를 겪으며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그 사이 마블스튜디오가 소니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판권 문제를 둘러싼 두 회사의 복잡한 이해관계는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논의하면서 극적 타결됐다. 소니는 그간 슈퍼 히어로 영화 제작 전반에 관한 노하우를 쌓아온 마블스튜디오와 적극 협력해 새로운 스파이더맨 개별 시리즈를 만들 수 있게 됐고, 마블스튜디오는 스파이더맨을 MCU에 불러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다만 이번 시리즈를 통해 판권 문제가 온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두 회사는 일정 기간 스파이더맨에 대한 ‘공동사용권’을 협상한 것에 가깝다. 판권의 재판매가 아닌 판권 대여의 개념이다.

 

팬들에게 이 극적인 타결을 알린 첫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다. 정부가 제시한 슈퍼히어로 등록법을 두고 갈등을 빚은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캡틴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팀을 나누어 대결한다.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 즉 토니 스타크가 발탁한 신예로 깜짝 등장해 아이언맨 팀 소속으로 이 거대한 히어로 전투에 뛰어들었다. 이때 토니 스타크에게 “어벤져스 멤버가 되려면 시험 같은 걸 봐야 해요?”라고 묻던 깜찍한 고등학생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바로 새롭게 리부트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이전 《스파이더맨》과 비교해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주인공 피터 파커의 나이다. 실제로도 갓 20살을 넘긴 배우 톰 홀랜드가 연기하는 피터 파커는 15살이다. 세계를 수호하는 어벤져스 멤버로 활약하는 것보다, 스파이더맨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처럼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 활약하는 것이 더 어울릴 나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피터는 어벤져스 멤버들과 함께한 전투 이후 잔뜩 흥이 오른 상태지만, 현실은 방과 후 토니 스타크가 선물한 슈트를 입고 도시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학생이다. 길 잃은 할머니에게 길을 알려주거나 좀도둑을 잡는 것 정도가 그에게 주어진 임무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 소니 픽쳐스

 

젊고 새로운 슈퍼히어로 영화, 마블의 새 승부수

 

샘 레이미 감독이 피터 파커에게 생활고에 시달리는 너드(nerd) 이미지를 충실하게 부여했다면, 마크 웹 감독이 설계한 피터 파커에게는 유머가 있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매력을 지닌 청소년 영웅이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속 피터는 어벤져스 멤버들과 활약했던 것을 셀프 카메라 동영상 촬영으로 남기며 “진짜 멋지다!”를 외치기 바쁜 소년이다. 과학 수업 시간에 거미줄 용액을 몰래 만들어야 하고, 그게 떨어지면 별수 없이 놀이터를 전력질주해 사건 현장으로 출동해야 하는 소년. 그는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무게감을 툭툭 털어내고 재기발랄함으로 어필한다.

 

산업폐기물 처리 용역업체를 운영하던 사업가 에이드리언 툼스(마이클 키튼)가 악당으로 변모하고 스파이더맨과 대결하게 되는 흐름도 탄탄하다. 하지만 그보다 돋보이는 것은 영화의 말미에 피터가 내리는 어떤 선택이다. 극 중 그의 멘토를 자처했던 토니 스타크의 말마따나 “노동자 계급 히어로다운 소신”이다. ‘소시민 영웅’이라는 점은 지구 수호의 운명을 타고난 다른 히어로들과 스파이더맨이 가장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최근 슈퍼히어로 영화 및 블록버스터 시리즈들이 보였던 강점을 골라 만든 듯한 영화다. 시리즈들의 가장 큰 고민인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뿐 아니라, 다인종 이슈 역시 영리하게 고민한 결과물을 내놨다. 실제로 이 영화는 원작과 달리 피터 주변 인물들의 인종을 조금씩 바꿨다. 신인 감독의 재능을 알아본 마블의 심미안도 통했다. 존 왓츠 감독이 장편영화를 연출한 건 이번이 고작 세 번째다. 이 파격적 감독 기용을 두고 개봉 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를 비롯한 외신들은 도박에 가깝다는 우려를 표했으나, 마블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201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돼 호평을 받은 감독의 전작 《캅 카》(2015)에서 발견한 가능성 하나로 그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마블은 이미 존 왓츠 감독, 그리고 톰 홀랜드와 차기작 계약을 마쳤다. 감독은 《스파이더맨》 3부작 연출을 계약했고, 주연 배우 톰 홀랜드는 3부작뿐만 아니라 이듬해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를 비롯한 세 편의 MCU 작품에 출연하기로 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지금 마블이 왜 최고의 스튜디오일 수밖에 없는지를 새삼 실감케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슈퍼히어로 각각의 개성을 매력적으로 드러내면서 매 작품의 만듦새를 고르게 뽑아내는 마블스튜디오의 ‘큰 그림’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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