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모녀 ‘막장 드라마’에 삼성 ‘멘붕’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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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삼성이 말 지원했다” 증언에 최순실 “모녀 인연 끊겠다” 격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유라 특유의 기질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재판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삼성그룹 전직 임원들에 대한 제38차 공판이 있었던 7월12일, 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이재용 재판의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정씨는 7월1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엄마가 삼성이 지원해준 것이 소문나면 시끄러우니 말 이름을 바꾸자고 해, 살시도에서 살바토르로 바꿨다. 또 엄마가 ‘공주 승마’로 논란이 있었는데 삼성이 지원한 말을 타는 게 알려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지금껏 “정씨 개인에게 지원해 준 적이 없으며, 회장사 자격으로 대한승마협회에 도움을 준 것일 뿐”이라던 삼성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증언이다. 

 

“정유라, 장시호보다 더하다. 살모사 같다”

 

정유라씨는 전날 재판부에 검찰 수사 중인 상황 등을 이유로 들며 불출석 신고서를 내, 당초 이날 재판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도 모자라,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정씨의 돌출 행동은 삼성은 물론 어머니 최순실씨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재판 출석이 알려진 직후 최씨는 변호인들에게 “걔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라”며 격노했다는 후문이다. “모녀간 인연을 끊겠다”는 발언도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만큼 받은 충격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정씨의 발언으로 지금까지 재판 시나리오는 송두리째 엉망이 됐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7월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제 정씨의 출석은 재판의 흐름을 일거에 바꿨다는 분석이다. 기소 전까지만 해도 특검은 “증거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며 자신했지만, 정작 재판이 시작되자 관련자들이 진술을 거부하거나 내용을 번복하면서 수세에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가 일련의 지원이 삼성의 계획 속에 진행된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증언에 나섬으로써 최씨와 삼성, 이재용 부회장 모두를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지금까지 삼성과 최순실씨 측은 법정에서의 발언이 서로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불출석 내지는 증언 거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당초 정씨가 재판부에 불출석 입장을 밝힌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변호인과 정씨가 재판 출석과 관련해 예전부터 이견을 보여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검이 정씨를 이 부회장 재판의 증인으로 확정한 것은 지난 7월7일. 당초 검찰은 특검과의 수사 공조 차원에서 정씨에게 증인 출석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 정씨는 범죄인인도 절차에 따라 5월31일 국내로 강제송환 된 이후 다섯 번이나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때마다 정씨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구속된 이들에게 불리할 만한 증언을 하지 않았다. 이는 철저하게 변호인 측과 사전 협의 하에 결정한 바였다. 

 

하지만 두 번씩이나 구속영장이 기각됐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또다시 영장 재청구 의사를 내비치자 정씨가 완강하게 거부하던 초반과는 다소 달라졌다는 게 검찰 안팎의 설명이다. 정씨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인 6월21일에도 검찰이 정씨가 독일 내 재산관리인인 데이비드 윤에게 보낸 자필 편지를 공개하는 등 압박한 것도 심리 변화에 주효했다. 편지에서 정씨는 “몰타가 아니라도 모든 나라, 변방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이라도 괜찮으니 빨리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해 달라.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두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에도 정씨는 두 차례나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오랫동안 정씨를 봐온 한 대한승마협회 산하 단체 관계자는 “정씨는 어릴 때부터 공주처럼 자라 감정기복이 심했다”면서 “천하의 최순실씨도 딸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덴마크 검찰에 구금된 이후 반년 넘게 조사를 받으면서 정씨가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며, 이런 것들이 심리적 변화를 일으켰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시사저널 최준필


정씨 변호인들은 “(재판에) 나가면 안 된다”며 “만약 출석하면 엄마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출석 거부를 종용해왔다. 여러 차례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씨가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고집하자 일부 변호인은 “그러면 더 이상 변호를 맡을 수 없다”고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을 무릅쓰고 정씨가 재판에 출석하면서 변호인단이 향후 어떤 행보를 취할 지 주목된다. 변호인 중 한명인 오태희 변호사가 7월12일 JTBC의 보도에서 “장시호보다 더하다. 살모사 같다”며 정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이 현 변호인단의 속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살모사는 난산으로 죽어가는 어미를 보면서 새끼들이 태어난다고 알려져, 예로부터 ‘불효자’를 의미하는 말로 많이 사용돼 왔다. 

 

 

사촌언니 장시호 석방 보며 심경의 변화?

 

정유라씨가 아들 양육에 대한 집착이 강한데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 남편 신주평씨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정씨가 강제 송환된 지 일주일 뒤인 6월7일 보모와 함께 국내에 입국했다. 법조계에서는 정씨가 만약 자신이 구속 수감되면 아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수사협조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사촌언니 장시호씨가 수사에 적극 협조해 석방 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참고사항이 됐다는 것이다. 장씨는 1심 판결 전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인 6개월을 모두 채움에 따라 지난 6월8일 석방됐다. 특검은 “정씨가 아이를 맡기고 온 터라 보모가 오후 2시까지만 일한다”며 “가능하다면 점심을 거르더라도 증인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고, 재판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이날 재판은 중간에 약 15분가량만 휴정한 채, 4시간가량 진행됐다.  

  

8월2일 결심공판을 앞둔 상황에서 악재가 터진 것에 대해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들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변호인들이 결심기일 준비를 위해 날짜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할 것을 감안해도 이 부회장 1심 재판은 8월 초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삼성은 정씨의 발언에 대해 “최순실씨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일 뿐”이라며 별다른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승마 지원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정씨가 “삼성이 말 세탁과 관련해 몰랐을 리 없다” “말 중개업자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가 ‘삼성에서 돈이 안 들어온다’며 짜증을 낸 적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답한 것은 재판의 변수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건희전》을 쓴 삼성 출신 작가 심정택씨는 자신의 SNS에 “정유라의 이날 증언은 이재용의 뇌물공여 혐의,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뒷받침해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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