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니 전쟁이란 당시 서부 지중해역의 최강국이었던 카르타고에, 새롭게 부상하는 로마가 도전장을 던짐으로써 시작된 전쟁이다. 기존 질서를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카르타고의 영토를 침범하고 착취하는 로마는 오랫동안 이 지역의 강자로 군림하던 카르타고에게 정말 짜증나는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알프스를 앞두고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 모든 걸 끌고 넘기엔 너무 높고 험한 길이었다. 그는 공성장비를 버리고 코끼리는 끌고 산을 넘는다. 알프스를 넘는 코끼리 부대라는 역사적 진풍경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웹사이트 'ancient.eu/hannibal'에 게재된 지도를 기초로 재구성 ⓒ 사진=이진아 제공
고생고생해서 알프스를 넘어 거기서 또 약 1000킬로미터를 행군, 로마에 가까이 갔지만 한니발은 로마를 공격할 수 없었다. 높고 튼튼한 로마 성을 공격하려면 성을 공격하는 전용 장비가 꼭 필요했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들면 큰 바위덩이를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 멀리 날려 성벽을 부수는 장비 같은 것들이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에 공성장비를 요청하지만, (로마 역사가들에 따르면) 부패하고 이기적인 카르타고 귀족들은 이를 묵살한다.
승승장구하던 카르타고, 로마에 함락
한니발은 로마의 주변 및 훨씬 더 남쪽에 있는 로마의 연맹국까지 돌며 그들을 포섭하면서 지원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느라 또 약 1000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로마의 용장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본토를 공략했다. 카르타고에서는 한니발에게 빨리 돌아와 공격을 막아달라고 했고, 한니발도 소식을 들은 즉시 귀향했지만, 지칠 대로 지친 그의 군사는 크게 패한다.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있었고, 결국 한니발은 조국의 미래에 대한 절망 속에서 자살하는 길을 택하고 만다.
이 슬픈 얘기는 로마 역사가들의 붓끝에서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세계사 이야기 중 인기 있는 소재가 되고 있다. 필자에게도 어린 시절 역사 이야기책에서 이 스토리를 읽으면서 몰입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한니발은 바다만 건너면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던 로마를, 그 먼 길을 돌아 육로로 공격했을까? 왜 카르타고 사람들은 최고 지도자였던 그를 그렇게도 지원해주지 않았을까?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 오래 된 역사 속에서 의문으로 풀리지 않는 부분을 당시의 기후변화 및 그 지역의 생태적 특성과 함께 보면 이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지금까지 이 연재를 통해 봐 왔다. 이번에도 기후변화 그래프부터 보자.
오른쪽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포에니 전쟁은 로마 기후 최적 바로 이전의 한랭기가 최저점을 쳤을 무렵 일어났다. 나중에 오는 소빙하기 정도는 아니더라도 홀로세 기후 최적으로 지구기온이 안정된 이래 가장 빨리, 가장 낮은 기온점까지 내려갔던 한랭기다.
이렇게 되면 일단 배를 만들 목재 구하기가 힘들어져 해양족들이 대체로 쇠퇴한다. 카르타고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카르타고가 있었던 지금의 튀니스 자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간의 정주가 먼저 일어났던 비옥한 땅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조건이 악화되면 빠른 속도로 쇠약해질 수 있는 특성도 가졌다. 다음 지도를 보자.
카르타고에선 높은 아틀라스 산맥이 서쪽으로 있다. 그 기슭에 자리 잡은 카르타고는 비옥한 땅을 베이스캠프로 하고, 이 산지의 목재를 이용, 지중해 전역으로 활동하기 좋은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서쪽에 위치한 산지는 대서양 쪽에서 불어오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또한 바로 그 밑에 엄청난 면적의 사하라 사막이 있다. 이런 위치의 정주지는 한랭기가 되어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식생들이 급속도로 타격을 입게 된다.
“풀 한포기도 날 수 없도록” 정복한 카르타고 땅에 소금 뿌린 로마
온난기 동안 강력한 해상국이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그 가까운 바닷길을 두고 이베리아 반도로 가서 거기서 육지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던 것은, 한랭기라서 로마의 해군에 대적할 만한 배를 만들 목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전 시대에는 해전을 할 때 일단 배를 부딪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크고 단단한 목재로 만든 배가 거의 해군력을 좌우했다. 아무리 잘 만든 배라도 나무를 조각조각 이어서 만들었다면 충돌 시 쉽게 부서지며, 그럼 그걸로 게임이 끝난다.
크고 단단한 나무는 공성장비를 만드는 데도 꼭 필요하다. 어렵사리 육로로 로마까지 왔는데, 높은 라우레툼 언덕에 위치한 로마 성을 공격할 수 없었던 한니발. 고국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공성장비도 그걸 실어 나를 배도, 크고 튼튼한 목재들이 충분해야 확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카르타고에 남아 있던 정책결정자들이 한니발을 도와주고 싶었다 해도, 대규모 공성장비를 공급해주는 건 능력 밖의 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쇠퇴해가는 나라인 만큼 자기만 살고보자는 이기주의가 카르타고 사회에 팽배해 있었을 수도 있다. 똑 같이 한랭기를 겪으면서도 생태적 조건이 월등 유리했던 로마인들은 그렇게 약해지고 분열되어가는 카르타고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