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 A씨 “포스코 권 회장, 말 안 들어 자르려 했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1 15:00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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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근혜 정부 핵심 ‘십상시’ 인사 증언파일 입수…십상시와 최순실 간 대결 양상도 보여

 

“권오준 회장은 취임 이후 포스코 개혁을 후퇴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와 달리 포스코 경영에 완전 자율권을 줬다. 그러면서 딱 두 가지만 지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권 회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너서클에 있던 한 핵심 관계자 A씨의 말이다. 최근 시사저널은 A씨가 전직 포스코 인사와 나눈 대담 파일을 입수했다. 그 안에는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가 공공기관 지분이 많은 포스코와 KT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이 담겨 있어 관심을 끌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2016년 11월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KT는 약속대로 했는데 포스코는 못했다”

 

시간을 2014년 1월27일로 되돌려보면,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당시 기술총괄 사장이었다. 포스코 역사상 기술총괄 책임자가 수장에 오른 전례가 없기에 그는 당시 언론의 하마평에서도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권 회장 내정 소식이 전해진 직후 증권가나 관련 업계에서 ‘예상 밖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만큼 깜짝 인사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이후 불거진 문제지만 전임 정준양 회장은 MB 정부 시절 권력의 핵심에 있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과 다양한 커넥션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권력 상층부가 경영에 간섭하는 ‘포스코 흑역사’는 권 회장 시절에도 비켜가지 못했다. 그 결과 권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광고 계열사 포레카 매각을 앞두고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근을 대표이사에 선임했는가 하면, 회장직에 선임되는 과정에서 정권 핵심 인사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된 것이다.

 

훗날 ‘박관천 리스트’에 의해 십상시(十常侍) 중 한 명으로 기록된 A씨는 포스코 회장 인사와 관련해 두 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다. 회장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가 포스코와 KT에 비리 인사 척결과 전임 회장 시절 진행됐던 부실 사업에 대한 정리를 요구했다는 것이며, 이것만 지켜진다면, 회사 경영에는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A씨는 포스코 관계자와의 대담에서 “황창규 KT 회장은 이석채 전 회장 시절 진행된 인사와 부실사업을 정리한 데 반해, 포스코 권 회장은 거대한 ‘포스코 마피아’에 휘둘려 개선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A씨가 언급한 포스코 마피아란 ‘서울대 금속공학과(현 재료공학부) 출신’으로 채워진 포스코 고위층이다. 권 회장과 정 전 회장은 같은 고교(서울사대부고)와 대학(서울대)을 나왔다. 대학에서 권 회장은 금속공학과, 정 전 회장은 공업교육학과를 졸업했다. A씨는 “KT는 황창규 회장이 약속대로 첫해에 부정부패 사업과 관련자들을 정리해서 그런지 청와대가 굳이 경영에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A씨의 언급은 당시 언론에 비쳐진 초창기 권오준 회장의 모습과 다소 상충되는 부분도 있다. 회장 취임 직후 권 회장은 구조조정 전도사를 자처했다. 회장직 내정과 동시에 ‘혁신 포스코 1.0 추진반’을 구성, 부실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권 회장의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이어지는 측면도 있다. 무리하게 해외 사업장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졌고, 성진지오텍 등 부실을 털어내는 과정에서는 전임 정준양 회장의 비리를 덮어주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맨 오른쪽) 등 주요 기업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 권 회장 행보 못마땅해해

 

최순실씨와 가까웠던 인사 B씨의 설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B씨에 따르면, 청와대가 권 회장에게 요청한 것은 포스코 내부에 만연한 구조적 비리였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몇 개 계열사를 매각하는 식이 아니라, 하청업체와 포스코 내부의 유착 관계를 면밀하게 체크해, 관련자들을 엄벌하는 식의 구조적 개혁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당시 청와대가 권 회장에 대한 기대감을 접은 시점은 2015년 7월경으로 모아진다. 통상적으로 연말 또는 연초에 진행하는 것과 달리, 이때 포스코는 이례적으로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그해 3월 검찰이 대대적으로 포스코 비리를 수사하면서 포스코 내부에는 심각한 위기감이 감돌았다. 때문에 7월에 공개될 임원 인사에서는 과거 경영진 시절 비리와 연루된 인사를 대거 정리하는 임원 인사가 이어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개혁안 ‘혁신2.0’과 관련한 인적 구조조정은 임원 40여 명을 정리하는 데 그쳤다. 당시 청와대가 주목한 것은 임원 수가 아니라 전임 회장의 경영실패와 관련된 몇몇 특정 임원이었다. 하지만 B씨에 따르면, 권 회장은 결국 그들에게 칼을 대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부실 사업을 정리하는 것도 여러 개 법인을 합치는 ‘숫자 줄이기식’ 정리에 그쳤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포스코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시선은 싸늘하게 돌아섰고, 청와대는 본격적으로 권 회장에 대한 흔들기에 나섰다. A씨는 “권오준 회장이 전혀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VIP(박근혜 대통령)는 1년 만에 권 회장을 자르려 했고, 그때부터 최순실의 포스코 인사 개입이 본격화됐다”고 주장했다. 권 회장이 권력층으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해, 해임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진행된 탄핵정국 과정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해 10월31일자 기사에서 “최순실씨를 만난 청와대 전직 고위 관계자와 재계 인사들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중도 하차시키고, 새로운 인물을 회장직에 발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십상시로 불리는 A씨가 이날 언급한 것 중 눈에 띄는 또 다른 대목은 포스코 감찰 시스템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점이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가 파악한 바로는 포스코 임원들은 회사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을 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보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상당수 내용이 허위로 보고됐다는 것이다. A씨는 심지어 “국정원에서 올라오는 보고서조차 나중에 확인해 보니, 관련 사실이 왜곡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최순실 라인이 포스코 인사와 계열사(포레카) 매각에 깊숙하게 간섭할 때다. 보기에 따라서는 십상시로 대표되는 박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 라인과 ‘최순실’로 대표되는 비선실세 라인 간 이해관계가 충돌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 역시 “보고 시스템에 의심을 품은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포스코 부사장급 고위 인사를 불러 관련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 본사 건물 © 시사저널 이종현


 

포스코 “권 회장 개혁 왜곡하는 일방적 발언”

 

결과적으로 그러는 사이 포스코는 차은택·김영수씨 등 최순실씨 측근들의 놀이터가 됐다. 따라서 A씨의 주장은 박근혜 정부의 포스코 경영 간섭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방적 주장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코와 관련해 지난 정권의 핵심 관계자로부터 처음 나온 증언이라는 점에서 향후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사저널은 A씨의 주장에 대한 포스코 측의 입장을 물었다. 권오준 회장과 포스코 측은 “당시 포스코는 청와대 등 권력층으로부터 어떠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으며, 권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고위 인사와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2015년 7월 단행한 혁신 인사안은 포스코 역사상 가장 많은 임원을 구조조정한 것이며, 당시 개혁 조치로 최근 회사가 경영정상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왜곡하는 전직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이 나와 무척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정권 코드 맞추기 인사 서두른 권 회장

 

역대 정권마다 권력에 휘둘려온 ‘포스코의 흑역사’는 이번에도 재현될까. 이는 포스코 임직원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큰 관심거리다. 포스코는 박근혜 정부 내내 크고 작은 일로 뒤숭숭했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과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회장 등 고위급 경영진이 2015년부터 검찰수사를 받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광고계열사 포레카가 매각되는 과정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근 인사들로 인해 적잖은 잡음이 일었다. 때문에 지난해 말 포스코 내부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인 권오준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느냐가 최대 현안이었다. 결과적으로 권 회장은 올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연임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그 사이 권력지형이 바뀌면서 권 회장의 행보도 순탄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이전 정권에서 연임을 확정 지은 것에 대해 권 회장이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임 정준양 회장도 연임 첫해인 2013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가 막 출범한 시기였다.

 

현 정권과의 냉랭한 관계는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6월 방미 순방길에 포스코가 제외되면서 정권과의 불화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또 7월27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권 회장이 문 대통령을 향해 “정부에서 요즘 많이 도와주고 계셔서, 산업부도 그렇고, 총리님도 부총리님도 마찬가지고”라고 말하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도중에 끼어들어 “들을수록 믿음이 잘 안 가네”라고 뼈 있는 농담을 한 것이 단적인 예다. 권 회장으로선 일련의 상황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포스코가 최근 협력업체 직원 1만5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는 것도 현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라는 해석이 많다.

 

또 최근에 포스코가 퇴사했던 강태영 전 포스코경영연구소(현 포스코경영연구원) 소장을 전문임원으로 다시 불러들인 것도 권 회장 의중이 깊숙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강 전 소장은 영국 런던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994년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입사해 포스코 종합기획팀 팀장을 맡은 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 입성, 혁신관리비서관·업무혁신비서관 등을 지냈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 정부 쪽 인사들과 가깝다.

 

강 전 소장이 소장직을 사임한 시기는 권 회장 경영 1기 때다. 대표이사를 지낸 뒤 나간 고위급 임원이 다시 포스코에 재입사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한 포스코 전직 임원은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여서 박근혜 정부에 밉보일 것을 우려해 내보냈던 권 회장이 강 전 소장을 다시 전문임원으로 불러들인 것은 현 정부와 코드를 적극적으로 맞춰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 전 소장은 8월16일자로 정식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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