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100일’ 마크롱의 끝 모르는 추락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2 10:14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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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갈등, 영부인 지위 부여 논란 등 악재 겹쳐

 

8월15일로 집권 100일을 맞은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36%였다. 당선 직후 지지율에 비해 반 토막 난 것이다.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4%에 근접한 셈이다. 화려하게 등장한 마크롱은 왜 100일 만에 이렇게 추락한 것일까.

 

프랑스 주요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은 7월22일 일제히 마크롱 정부의 국정 지지도에 대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프랑스 보도 전문채널 BFMTV는 “지지율 하락의 낙폭보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는 프랑스가 제5공화국 체제에 들어선 이후 초유의 상황이라고도 덧붙였다.

 

지난 7월 설문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 조사 결과는 프랑스 국민 51%가 ‘마크롱 정부는 좋은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을 갓 넘긴 수치다. 반면 경제 전문지 ‘레제코’와 라디오 클래식의 공동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엘라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 40%만이 정부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끝으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론조사 기관 이폽(Ifop)과 시사주간지 ‘르 주르날 드 디망쉬’가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지지층은 54%인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 2개월 후보다 10%나 빠진 수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BFMTV의 리브 오디간 기자는 “마크롱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노동법 개정과 같은 강한 메시지의 변혁을 예고해 왔다. 여론의 반응이 없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기관 이폽의 제롬 부케 소장도 “다양한 계층의 반발에 직면했다”며 “마크롱이 잔인한 시기에 들어섰다”고 덧붙였다.

 

제왕적 리더십으로 지지율 추락을 겪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사진=AP연합

 

허니문 없는 마크롱과 프랑스 언론

 

지지율 하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인 8월11일 이폽 조사에 따르면, 마크롱 정부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은 36%에 불과했다. 초반 정국운영에 대한 평가는 지지율 추락 속도만큼이나 매섭다. 지난 3개월간 마크롱의 행보에 대해 르 피가로의 알렉상드르 데베키오 기자는 “3개월간 리얼리티 쇼를 본 느낌”이라고 평가하며 “정치는 미적인 광고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마크롱의 시작은 화려했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그는 더욱 빛을 발했다. 이목을 집중시켰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면 당시 악명 높았던 트럼프의 악수법에 손을 놓지 않고 강수로 되받아 화제를 모았다. 또한 미국의 기후협약 탈퇴를 두고 프랑스 대통령 사상 최초로 영어 담화를 발표했다.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구호를 그대로 모방해 ‘지구를 더 위대하게’라고 인용하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외교행보 뒤에 민감한 국내 사안들에 대한 미숙한 대처가 이어지자, 여론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의문시됐던 정책의 구체성이나 대통령의 정체성이 다시금 논란의 중심이 됐다.

 

게다가 합참의장 경질을 둘러싼 권위주의 논란은 이 같은 불안한 기류에 쐐기를 박았다. 우선 혁명 기념일인 7월14일 전후로 국방예산 감축문제를 둘러싼 군부와 대통령의 갈등과 설전이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노출됐다. 사태는 합참의장이 사의를 표하고 물러나는 상황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그 파장은 정부의 위상을 넘어 대통령의 권위마저 흔들어버렸다. 혁명 기념일 퍼레이드를 하루 앞둔 7월13일 국가비상사태 장기화로 잔뜩 예민해진 군부 인사들을 앞에 두고 마크롱이 직접 “내가 당신들의 상관”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킨 뼈아픈 실책이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대거 하원의원으로 입문한 의회의 미숙한 의회 운영 또한 문제가 됐다. 정치권의 신인들은 구정치인들보다 더 보수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 대한 함구령에 하원의원들은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마크롱과 언론의 불편한 관계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 후 최소한의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크롱을 두고 ‘프랑스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언론을 적으로 돌려버린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 중 어느 누구도 언론을 외면하지 않았다. 좋든 싫든 언론과의 대화채널을 항시 열어 놓았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 후 대통령이 된 샤를 드골도 유신의 모델이 될 만큼 강력한 대통령제를 구현했지만 수차례 TV담화를 통해 여론 설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왕과 같은 카리스마를 가졌던 미테랑도,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로 적지 않은 스캔들 보도에 시달렸던 시라크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4%의 역사상 최저 지지율을 기록한 올랑드 전임 대통령도 언론과의 대화 통로를 봉쇄하지 않았다.

 

마크롱은 취임 직후, 혁명 기념일마다 전통적으로 엘리제궁에서 열어온 기자 인터뷰마저 취소해 버렸다. 자신의 내각 인사 비리 혐의에 대한 언론 보도를 두고도 “재판관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일침을 날렸다. 첫 각료회의에 모인 내각의 신임 각료들에게 언론을 향한 입단속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SNS에 지지자들과 직접 셀카를 찍어 올리는 등 소통을 강조하는 듯한 행보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프랑스 진보매체인 ‘Rue89’의 창립자 피에르 하스키는 “마크롱이 언론을 대하는 방식은 트럼프와 다를 것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 7월3일자 1면에 실린 마크롱 그림. 신의 몸을 한 마크롱을 통해 그의 제왕적 행보를 풍자하고 있다. © liberation


 

“마크롱은 부자들의 대통령인가”

 

심각한 지지율 추락에 대한 마크롱과 그 주변의 상황 인식은 어떨까. 적어도 최근 불거진 ‘영부인 지위 부여 논란’을 보면 아직 엘리제궁의 상황 인식은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실 영부인의 지위 부여는 선거 당시 마크롱의 공약이었다. 프랑스 정가의 관행인 ‘공직자의 가족 취업 논란’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대통령 영부인의 지위와 의전을 투명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영부인 지위 부여와 관련한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때마침 마크롱 정부가 서민들에게 지급되는 주택보조금을 5유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시기와 맞물리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졌다.

 

‘마크롱은 부자들의 대통령인가’라는 원색적인 주제로 토론이 벌어질 만큼 예민하던 시기에 다시 영부인을 위한 의전 비용까지 공개되며 여론에 불을 지핀 것이다. 결국 엘리제궁은 대통령의 휴가를 앞두고 법안을 백지화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같은 날 르 피가로가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 정부의 미래에 대해 프랑스 국민 87%가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노동법 개혁 등 민감한 사안들이 줄줄이 과제로 남은 지금, 마크롱의 추락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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