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잡은' 경북 청도, 배꼽 빠질라
  • 이재윤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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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성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의 창의성 '만발'

웃는 건 중요하다. 단단한 세계의 벽은 웃음 덕에 구멍이 나면서 조금씩 허물어진다. 벽에 구멍이 뚫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박생강 소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中에서>

10월13일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 '청도반시축제' '평생학습축제' 등 경북 청도를 대표하는 3개 축제가 동시에 열리고 있는 청도야외공연장 주변 도로는 몰려드는 차량들의 행렬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행사장 입구로 들어서니, 지역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메인 무대인 야외공연장을 비롯해 행사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을 즐기고 있었다.

 

전유성 조직위원장, 페니 그린홀(오스트리아), 모리야스 방방비가로(일본)가 즉석에서 딸기코 분장을 하고 사진촬영에 응했다. 두 사람은 전유성 조직위원장이 직접 세계를 돌며 발굴해 코아페에 초청한 코미디언들이다. ⓒ​ 이재윤 기자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청도 축제

 

특유의 뻘쭘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개그맨 1세대 전유성씨의 왼팔에는 ‘조직위원장’이라 적힌 노란 완장이 채워져 있었고, 들고 있던 비닐봉투에는 삐에로 분장에 쓰이는 빨간 딸기코가 잔뜩 들어 있었다.  

 

방송활동을 접고 청도로 내려온 지 어느덧 10년. 전유성씨는 이제는 청도의 명물이 된 코미디 전용 공연장 ‘철가방 극장’과 ‘코미디 시장(市場)’이란 극단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여름 중복과 말복 사이 반려견들과 함께 무료 클래식 공연을 즐기는 ‘개나소나 콘서트’를 여는 등 여전히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번뜩이는 재치를 지역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풀어내고 있다. 

 

10월12일 전야제에 이어 13일 개막된 '제3회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코아페) 역시 그 연장선에서 기획된 콘텐츠다.

 

“이제 세 살이에요. 아직은 아장아장 걷는 수준이죠. 가장 중점을 둔 건 주민들이 참여하는 축제여야 한다는 겁니다. 4월부터 주민들이 함께 준비를 하고 전야제에서 그동안 연습해왔던 것들을 직접 선보이는 거죠. 올해는 350명의 주민들이 함께 연습해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할머니·할아버지 130명이 준비한 막춤 공연, 50명이 준비한 난타 공연, 아이들 50명이 준비한 태권도 플래시몹, 30명의 학생들이 준비한 발레 공연, 합창단 등등… 청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호스트이자 게스트로서 축제를 즐기는 거죠.”

 

쏟아지는 궂은 비에도 축제에 참여한 주민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축제의 호스트이자 게스트로서 직접 참여해 축제의 의미를 더하는 청도주민들의 공연에 비내리는 가을밤의 추위도 녹아내렸다. ⓒ 이재윤 기자

10월12일 전야제때 쏟아지는 궂은 비에도 축제에 참여한 주민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축제의 호스트이자 게스트로서 직접 참여해 축제의 의미를 더하는 청도주민들의 공연에 비내리는 가을밤의 추위도 녹아내렸다. ⓒ 이재윤 기자

 

 

축제 창의성 만발…전야제에 뻥튀기 기계 '펑'

약 반년의 시간을 함께 준비해 온 주민들의 열정은 퍼붓다시피한 궂은 비도 막지 못했다. 10월12일 전야제 때 많은 비가 내려 전유성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주최측에서 안전을 위해 공연 취소를 권했다. 하지만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할아버지들부터 “무슨 소리 하냐”는 지청구에 공연은 강행됐다. 

심지어 쏟아지는 관객들의 ‘앵콜’ 요구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공연을 펼칠 정도로 주민들의 열정은 가을밤을 적시는 궂은비에도 뜨겁게 타올랐다. 전유성 씨는 “아마 공연을 취소했으면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함께 전유성 조직위원장은 컬투쇼, 개그콘서트, 뮤지컬 루나틱, 졸탄쇼 등 TV나 서울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공연들도 유치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다. 우리와 다른 웃음 코드를 선보이는 해외초청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가미해 '코아페'의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차려냈다.

 

“기존에 여러 행사들에서 축포를 쏘거나 불꽃놀이하는 걸 대신해서, 저희들은 새로운 걸 시도해 봤어요. 전야제 행사 때 흔한 축포 대신 뻥튀기 기계로 빵 터뜨렸죠. 뻥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을 피워 올리는 모습에 사람들이 추억도 떠올릴 수 있고, 그 옛날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마주했던 것들로 축포를 대신한다는 데 신선함도 많이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전통의 놀이를 재현해 보자는 취지에서 고무줄놀이를 했는데, 사회를 보던 이영자 씨를 비롯해 빗속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주머니들이 함께 즐기는 걸 보면서, 새로운 콘텐츠로 더 확장하고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몸이 기억하는 고무줄놀이에 빠져 폴짝폴짝 뛰는 이영자 씨와 교복입은 아줌마의 모습.

 

  

청도 '철가방극장' 4천회 공연…"재밌으니까 온다!"

 

전유성 씨는 청도에 내려온 이후 ‘철가방 극장’ 출신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신봉선·안어벙·김대범·​김민경·​안상태 등 후배 개그맨들을 보며 뿌듯함도 느끼지만, 한편으론 TV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개그 프로그램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지만 코미디를 TV를 통해서만 보여주고, TV를 통해서만 보여진다는 기존의 개념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 작은 도시 청도에 '철가방극장'을 열고 묵묵히 4000회가 넘는 공연을 이어왔던 것도 하나의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란 얘기다.

 

재미있으면 어디에서 해도 찾아온다는 게 전씨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 옛날 시골읍내 장터에 천막을 치고 약을 팔던 약장수들도 재미가 있으니까, 하루 종일 들판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도 천막을 찾아오고, 돌아갈 땐 약효랑 관계없이 인정으로 뭐 하나라도 사들고 가는 것처럼, 재미있으면 사람들은 언제고, 어디든 찾아온다"

 

감 떨어지는 계절, 씨가 없는 감 '반시'로 유명한 경북 청도에서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 전유성은 10월15일까지 열리는 행사장에서 방문객의 배꼽을 노리고 있는 듯 마냥 신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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