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속도 냈던 韓, 中 협상술에 말렸다
  • 박혁진 기자·모종혁 베이징 통신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7 22:30
  • 호수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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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對笑顔唾亦難)’.

 

우리 속담으로 알려진 이 속담은 중국에서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 청와대는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이러한 정서적 유대감을 잘 활용하고자 했다. 12월14일 문 대통령이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인근 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것도 사실 이를 고려한 일정이었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문 대통령이 중국 국영방송 CCTV에 출연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 대해 ‘신뢰할 만한 지도자’라고 한 것이나 우리 주최 행사에 한류스타들을 대거 출연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 측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웃는 얼굴에 침을 뱉는 결례를 방중 기간 내내 범했다. 차관보의 공항영접, 사진기자 폭행, CCTV 편집논란 등 우리 정상의 해외순방 중 이렇게 많은 논란이 동시에 일어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중국의 국빈대접은 허술하고 무례했다. 청와대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지만, 내부에서는 지난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당시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당시 윤창중 전 대변인이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정상회담 소식이 주목받지 못했다”며 “이번에도 양국 정상 간 회담 내용이 기자 폭행이나 외교 결례 논란에 휩싸여 빛이 바래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방중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큰 고민 보따리를 하나 떠안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셈이 됐다. 미국의 독자적 북한 선제타격론이 나올 정도로 한·미 동맹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든 중국을 설득해 북핵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어느 정도의 당위성을 갖췄었다. 하지만 중국과 원론적 합의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 우방인 미국과 일본과의 협상도 향후 쉽지 않게 됐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양측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 언론은 한·중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며 양국 간 합의 내용보다는 이견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리춘푸(李春福) 중국 난카이대학 아시아연구센터 부주임교수의 말을 빌려 “한국 측이 관계 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것 같지만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속도를 중시하며 한·중 정상회담을 빠르게 추진한 우리 정부에 뼈아픈 지적이다.

 

© 일러스트 신춘성

 

中, ‘사드’ 그리고 또 ‘사드’

 

이번에도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것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였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독일, 베트남에서에 이어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두 번의 만남이 사드 문제로 인한 양국 간 갈등을 해소하는 자리였다면, 이번만큼은 사드가 아닌 북핵 문제와 경제협력 등 양국 현안에 대한 보다 실질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 측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번 방중 기간에도 중국은 ‘사드’ 그리고 또 ‘사드’를 이야기했다. 비록 시 주석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문제’란 표현으로 사드 문제를 우회적으로만 한 차례 언급했지만, 중국 정부와 언론은 사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청와대와 여당은 시 주석이 사드 문제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성공적이라 자평하지만, 정작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속내는 국영방송인 CCTV를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12월11일 밤 10시30분 중국 국영 CCTV 뉴스채널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를 내보냈다. CCTV 간판스타인 수이쥔이(水均益) 기자가 진행하는 ‘글로벌 워치(環球視線)’에서 23분 동안 문 대통령 인터뷰를 방영했던 것.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아주 특별한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CCTV나 관영 신화통신이 외국 정상의 방중을 앞두고 관행적으로 진행했던 방식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날 방송에서는 수이 기자가 오프닝 멘트에서 “‘한국 정부의 특별한 요청’으로 이뤄진 단독 인터뷰”라고 설명했다. 마치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특별히 이뤄진 방송인 것 같은 냄새를 풍기기에 충분했다. 

 

인터뷰 질문은 노골적이고 무례했다. 수이 기자는 모두 8개의 질문을 던졌는데, 3개가 사드와 관련된 문제였다. CCTV는 ‘언론’이라기보다 ‘선전 기관’이다. CCTV의 녜천시(辰席) 사장은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이면서 중국의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당서기 겸 국장이다. 그 방송사 앵커의 질문은 언론의 질문이라기보다 중국 정부의 ‘해명 요구’로 봐야 한다. CCTV 측은 “양국 간 해빙무드가 감지되지만 사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향후 양국 관계는 한국이 ‘3불(三不)’의 표명 입장을 어느 정도로 이행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등 한국의 책임을 일관되게 물었다. 클로징 멘트에서는 “한국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길 바란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사실 기자 폭행 사건으로 인해 다른 외교 결례가 주목받지 못했지만, CCTV의 인터뷰는 ‘역대급 결례’였다. 지난 22년 동안 중국에서 CCTV의 수많은 외국 정상 인터뷰를 시청했던 모종혁 시사저널 중국 통신원은 “이렇게 한 가지 사안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문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해 “말과 행동에서 아주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며 친근함을 표시했음에도 이 같은 질문 공세를 퍼부은 것은 더욱 이례적이었다고도 했다.

 

사실 중국의 이런 결례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상대를 강하게 밀어붙여 길들이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중국은 발군의 외교술을 가진 나라다. 평소 국제분쟁에서 직접 대화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일관되고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뿐만 아니라 한국처럼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계획 아래 상대국을 때로는 겁박하고 때로는 달래면서 굴복시킨다.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맨 오른쪽)이 12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1년 중·일 갈등과 비슷한 국면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2011년 12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일본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상황과 흡사하다. 양국은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 열도)를 두고 영토분쟁을 겪고 있었다. 2010년 9월 일본은 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고 선장을 체포했다. 중국 정부는 맹렬히 반발했다. 중국 단체관광객의 일본 관광 금지, 희토류 원소의 대일 수출 중지 등을 앞세우며 일본을 압박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선장을 즉각 석방하는 굴욕을 맛봤다.

 

그 뒤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소소한 충돌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의 상대국 방문은 미뤄졌다. 노다 총리의 방중도 한 차례 연기되어 간신히 이뤄졌다. 그마저도 1박2일의 경제협력 관련 일정으로 채워졌다. 2012년 4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太) 당시 도쿄도지사가 댜오위다오 매입을 발표하면서 분쟁이 재발했다. 중국 정부는 각종 대일 무역보복 조치를 취했고 단체관광객의 일본 관광을 금지시켰다. 또한 중국 각지에서는 대규모 반일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이 취한 조치나 행동 양상과 동일하다. 당시 노다 총리도 방중 내내 냉랭한 대접을 받았다. 따라서 문 대통령만 특별히 홀대받았던 외국 정상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과 달리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지난 10·31 합의로 일거에 해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의 전례로 볼 때 흔치 않은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이었다. 중국이 취한 일련의 보복 조치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한국의 대중 수출은 2010년 이래 최고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2~3분기 큰 매출 하락을 겪었지만, 4분기부터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다. 중국인들의 반한(反韓) 감정도 중·일 영토분쟁 때와 비교해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8월말 우리 정부는 일본과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을 1년 더 연장했다. 집권 전 문재인 대통령은 이 협정에 반대했었다. 또한 얼마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인도·태평양 라인’ 구축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 내에서는 한·미·일 3국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형성됐다. 즉 10·31 합의는 이 같은 국내외 정세를 고려해 중국이 필요해서 응한 것이지, 결코 우리가 매달려 한·중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매달리는 모양새까지 보이며 한·중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관련 행사 참석 차 베이징에 온 한 기업인은 “국빈방문이라고는 하지만 두 나라 간 향후 진로를 밝히는 이렇다 할 메시지가 없는 데다 이번 국빈방문을 바라보는 중국 언론의 관심도 크지 않아 솔직히 몹시 놀랐다. 한·중 관계 회복을 바라는 기업인 입장에서는 이번 국빈방문을 통해 한·중 간 앙금이 해소되리라 봤는데 중국 언론을 유심히 살펴본 입장으로서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한·중 수교 25주년에 매달려 너무 급하게 국빈방문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구체적 실익을 취했어야 했지만 모양새만 구겼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은 향후에도 사드 문제를 계속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향후 지속될 중국 정부의 사드 대응에 좀 더 강단 있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중국의 대외전략과 경제협력에서 꼭 필요한 파트너임을 제대로 주입시키진 못했다. 중국인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이에게 더 힘을 휘두른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개발로 촉발됐고, 북한 동맹국인 중국도 문제 해결에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는 공세가 필요한 때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북대청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익 못 취하고 모양만 구겨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도출한 합의가 추상적이라는 데 있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12월1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4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두 정상이 합의한 4대 원칙은 △한반도 전쟁 불용 △한반도 비핵화 원칙 확고히 견지 △북한 비핵화 등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 △남북한 관계 개선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 등이다. 기존에 양측이 했던 외교적 수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다.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압박 같은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4대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대북제재와 압박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우리 정부가 독자 대북제재를 취하는 상황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제재와 압박’에 대한 중국 측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대북 문제를 바라보는 한·중 간 엇박자로 비치면서 앞으로도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두 나라의 앙금을 완전 해소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양국 ‘공동발표문’이 나오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두 나라는 1992년 수교 이후 양국 정상이 만날 때마다 의미 있는 협약 등을 내놨고 김대중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 때까지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두 나라 정상의 국빈방문이 있을 때마다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외교적 전례를 가져왔었지만 이번엔 아주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수확을 거둔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두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양한 소통 수단을 활용,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을 구축해 긴밀한 소통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정상회담 후 브리핑에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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