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기퍼 괴롭히는 '죽음의 공' 피버노바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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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 반발력 · 회전력 · 정확성 뛰어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골키퍼들이 가장 두려워한 선수는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과 득점왕 슈케르(크로아티아)였다. 그런데 골키퍼들이 공격수들보다 더 무서워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아디다스가 만든 공인구 트리콜로였다. 가죽에 미세한 공기방울을 넣어 수축력과 반발력을 높인 이 공은, 골키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공격수들이 공을 차는 순간 미세한 공기방울들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가 팽창하면서 예측 불허의 속도와 방향 변화가 생겼던 것이다. 킥이 강하면 강할수록 공은 더 '심술'을 부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골키퍼들의 수난은 더 심해질 것 같다. 아디다스가 내놓은 공인구 피버노바(피버는 열정, 노바는 짧은 시간에 환하게 빛나는 별을 뜻함) 역시 가죽에 미세하고 압력이 높은 공기방울을 배열해 반발력·탄력·회전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기방울은 공격수들이 좁은 공간에서 공을 빠르게 컨트롤하는 데도 도움을 주어 골키퍼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전망이다.


비밀 실험에서 피버노바는 뛰어난 정확성을 보여준 것으로 알려졌다. 아디다스 코리아에 따르면, 로봇이 35m 거리에서 목표물을 향해 2천 번 공을 찬 결과 두세 번만 빗나갔다. 테스트에 참가했던 영국 국가대표 데이비드 베컴 선수는 "어떠한 공보다 정확했다"라고 말했다. 이동국 선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이 너무 잘 튀어 드리블할 때 다루기가 조금 힘들지만, 힘들이지 않고 강슛을 날릴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피버노바는 디자인에서도 혁신을 이루었다. 월드컵에서 처음 공인구가 사용된 것은 1970년 멕시코 대회. 당시 공인구는 흰색 6각형과 검은색 5각형을 뒤섞은, 텔스타라는 점박이 공이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공인구의 디자인은 5각형을 하얀 색으로 바꾸고 , 6각형에는 삼각 문양을 그려 넣은 것으로 바뀌었다. 탱고라고 불린 이 디자인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런데 피버노바는 이 디자인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가죽은 황금색으로, 문양은 붉은색 불꽃으로 바꾸었다. 아디다스 코리아에 따르면, 황금색은 한국과 일본의 노력하는 에너지를 뜻하며, 불꽃은 양국의 경제 성장 원동력을 뜻한다. 터빈 엔진을 형상화한 삼각 모양 4개는 양국이 이룬 균형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숙련된 기술자도 하루 2∼3개밖에 못 만들어


축구공은 바람을 넣은 소·돼지의 오줌보와, 털이나 풀을 넣은 동물 가죽에서 유래했다. 1872년 영국 축구협회가 가죽 공을 처음 선보였다. 그 뒤 축구공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1978년 월드컵 때 비로소 5각형 가죽 12개와 6각형 가죽 20개를 꿰매고,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한 통풍 실험이 실시되었다.


현재 월드컵 공인구는 인조 가죽을 1천6백20번 꿰매어 만든다. 숙련된 기술자가 8시간을 작업해도 2∼3개밖에 못 만들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규격은 둘레 68∼70cm, 무게 410∼450g, 공기압 0.6∼1.1 기압을 지켜야 한다. 또한 기계 장치로 8만 번을 걷어차이며 탄력 검사를 받고, 방수 검사를 받기 위해 3백 시간 이상 물 속에 있어야 한다. 선수들만큼이나 피 말리는 예선전을 치르는 셈이다. 이렇게 출전한 공은 선수들의 발길질에 의해 야구공보다 더 심하게 변화한다. 또 골프 공에는 못 미치지만, 박찬호의 강속구(150km)에 버금가는 속도로 날아다니며 선수들을 웃기고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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