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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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원 출마한 ‘황신혜밴드’ 출신 조윤석씨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조윤석씨(37)는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던 자유인이었다. 펑크 문화의 기폭제였던 인디 그룹 ‘황신혜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던 대중음악인이었고, 그 이전에는 건축가였다. 전시회를 열었고, 영화를 만들었으며, 음반을 홍보하는 한편, 거리 축제를 기획했던 ‘홍대앞 큰형님’이었다.


철근 콘크리트 같은 고정 관념과 제도에 반기를 들고 홍대앞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멋지게 한다’는 펑크 정신을 실천했던 그가 서울 마포구의회 의원선거(서교동)에 출마했다. 그가 출마하겠다고 하자 따르던 후배들도 고개를 돌렸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빌 때에는 ‘내가 정치를 왜 시작했나’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월드컵 축구 열기에 가려 역대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6·13 지방 선거를 나흘 앞둔 6월9일 일요일 오후, 홍대앞에서 조윤석 후보를 만났다. 이 날 홍대 정문 앞에서는 조후보가 개설한 ‘희망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혼자 유세한다는데.


주위에 있는 친구들은 직장에 다니느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선거운동원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주민 1천5백여 명을 직접 만났다. 처음에는 말렸던 홍대앞 후배들도 내 포스터가 붙자 돕겠다고 했다. 자신있다.


그동안 투표는 해 보았는가?


안했다. 그 벌을 이번에 톡톡히 받고 있는 것 같다(웃음). 젊은이들이 정치 의식이 너무 없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에는 열정적이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 게다가 월드컵 열기까지 겹쳐서 안타깝기만 하다.


왜 출마했는가?


홍대앞은 젊은 예술가들의 해방구다. 황신혜밴드가 결성된 이후 인디 밴드가 무려 2백 개가 생겨났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후배들에게는 내가 ‘어른’으로 비쳤나 보다. 지난해 겨울 홍대앞에서 음악하는 후배가 결혼을 하면서 나에게 주례를 서달라고 했을 때, 어떤 책임감을 느꼈다.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지가 단순 상업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정작 홍대앞 문화를 일궈낸 예술가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임차료는 오르고, 정책적 배려는 전무하다. 구청의 문화 예산이 엉터리로 쓰이고 있다. 홍대앞 사람으로서 억울했다. 홍대앞이 갖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을 살려야 주민과 상인 그리고 후배들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출마했다.


홍대앞이 왜 중요한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산할 토양이 갖추어져 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젊은 작가들이 많다. 누구 눈치 안 보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실험 정신들이 많은 것이다. 서울에 이런 공간이 없다. 우리나라에 뛰어난 예술가는 많지만, 그를 둘러싼 그룹이 없다. 그룹이 있어야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전체적으로 발전한다. 홍대앞은 단순히 애들이 노는 데가 아니다. 미술·디자인·음악·영화·연극·출판이 어우러져 있는 지식 생산 기지다.


이번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는가?


우선 내가 젊고 새롭다는 강점이 있다. 기존 정당과도 무관하다. 둘째, 홍대앞이라는 문화적 특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 같은 전문가여야 한다. 대학 교수가 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다들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공약이 무엇인가?


홍대앞 살리기와 성미산 살리기이다. 홍대앞의 인적 자원을 네트워크화하는 지역 미디어를 발간하면서 홍대앞만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강조할 것이다. 지난 5월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에 열리고 있는 ‘희망 시장’도 좋은 실험이다. 홍대앞에서 사는 젊은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내다 팔고, 지역 주민들도 자기가 쓰던 물건을 가지고 나온다. 흥겨운 마을 장터다. 성미산은 마포구의 유일한 녹지인데, 서울시가 성미산 정상에 배수지를 만들겠다고 한다. 배수지가 들어서면 그 아래 사유지는 아파트로 변한다. 성산 1동에 출마한 김종호씨, 연남동에서 출마한 이현창씨와 연대해 성미산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막상 선거운동을 해보니, 어떠한 점이 가장 어려운가?


말단까지 정당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선거가 시작되니까 지역의 각종 단체나 모임이 선거에 동원된다. 조직이 없는 나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거에 필요한 인력을 쓰려면 4년 내내 건달을 키우라는 얘기다. 이웃들 사이가 좋다면 굳이 이같은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이웃들이 서로 교류한다면 조직을 동원해야 하는 소모적인 선거운동은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웃들 사이가 의외로 좋지 않다.


이웃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행정이 주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붕괴시키고 있는 것 같다. 거주자 우선 주차제를 보자. 주차 공간은 40대인데, 실제 자동차는 100대다. 주차 전쟁이 이웃을 원수로 만든다. 지역 주차 문제는 지역 주민이 해결하도록 맡겨 놓는다면 이웃 간에 대화가 생기고,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너무 많다.


선거 비용은 얼마나 들었는가?


최대 2천8백만원까지 쓸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3백만원쯤 썼다. 기탁금 2백만원에다 선거 공식 홍보물 인쇄비와 밥값을 합해 100만원이 들었다. 돈 들어갈 일이 없다.


대중 음악을 했던 것이 정치에 도움이 되는가?


‘황신혜밴드’가 젊은이들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프로는 아마추어에게 열등감을 심어준다. 노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르고 싶어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우리가 펑크를 외친 이후 자생적 문화가 등장했다. 1970년대 IMF 위기를 맞았던 영국에서 그랬듯이 펑크는 사회참여적이다. 당시 영국의 펑크 예술가들은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희망이 되자’며 거리로 나섰다. 내가 희망 시장을 개설한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구도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었다.


현실 정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경선을 통해 노무현씨가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걸 보고 용기를 얻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도 고무적이다. 게이트, 게이트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국민·시민·주민이 모두 깨어 있다. 희망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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