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멋진 신세계’는 오는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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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복제, 카운트다운 돌입…“축복이냐 재앙이냐” 논란도 본격 점화
1997년 2월24일, 이안 윌머트 박사가 복제양 돌리의 탄생을 발표했을 때, 신중하게 복제 인간 출현을 예견한 학자들이 있었다. 로리 앤드루 교수(미국 시카고 대학)는 “시장이 인간 복제를 주도할 것이다.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익숙한 사설 클리닉에서 (인간) 복제에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결국 복제 인간은 탄생한다”라고 단언했다.





5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조심스러운 예언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 복제를 추진 중인 미국의 클로나이드(UFO 관련 단체인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라엘이 4년 전 세운 회사)는 얼마 전 “6개월 뒤에 복제 인간이 탄생한다”라고 발표했다. 클로나이드 한국지부 곽기화 홍보팀장(31)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에서 복제 배아를 착상한 임신모 한 사람이 한 달 전 한국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 여성이 20대 미혼으로, 인간 복제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되려고 인간 복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여성의 이름과 거주지 공개는 거부했다.


곽씨에 따르면, 클로나이드는 올해 초 전세계에서 대리모 50명을 모집했다. 그 가운데 한국인은 10명이었다. 엄격한 심사를 거친 뒤 선발된 대리모 몇 사람에게 복제 배아가 착상되었다. 그러나 몇 명에게 복제 배아가 착상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숫자는 본사 과학자들만이 알고 있다고 곽씨는 말했다. 만약 일이 틀어지지 않는다면 대리모들은 여섯 달 안에 복제 인간을 낳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클로나이드는 이 아이들을 공개할 예정이지만, 그들이 정상으로 태어날지 어떨지 현재로서는 예측할 수 없다. 모르기는 클로나이드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동물 복제 기술이 불안정하고, 이제껏 인간 복제와 관련한 어떤 성과도 보고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소·양·염소·돼지·쥐 실험을 통해 복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밝혀냈다. 서울 마리아불임병원 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은 “기술 면에서 인간 복제는 아직 시기 상조다”라고 말했다. 동물 복제 실험을 해본 결과 정상으로 태어난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돌리를 탄생시킨 윌머트 박사도 양 배아 2백77개에서 겨우 한 마리의 양만을 얻었을 뿐이다. 황우석 교수(서울대·수의학)는 복제된 배아가 대리모에게 착상된 뒤에도 태아 가운데 30∼70%가 죽거나 유산된다고 주장한다. 거기에다 출산 전후에 사산도 빈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6개월 뒤 탄생” “시기상조” 주장 엇갈려





설사 복제에 성공한다고 해도 아기는 비정상일 확률이 높다. 우선 태반이나 장기가 지나치게 비대해 정상적인 아기보다 두 배나 많은 8kg 정도의 체중을 갖고 태어날 수 있다. 또 심장의 벽에 큰 구멍이 뚫려 있거나, 간장의 크기가 정상 개체에 비해 네댓 배나 커진 경우도 나타나며, 뇌에서도 종종 기형이 관찰된다. 이 고비를 넘긴다고 해도 노화와 관계 있는 염색체의 말단 소립(텔로미어)이 축소되어 제 수명대로 살 수 없다. 즉 27세 성인의 체세포 핵을 이식해 태어난 복제 인간은 27세 성인이 갖고 있는 말단 소립 길이를 지닌 세포들로 구성된 상태에서 삶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의 게놈에 영향을 주어서 정상으로 자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클로나이드가 인간 복제를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회사 홈페이지(ww w.clonaid.com /korean/pages/human_cloning. html)에 들어가 보면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항목에서 그들은 ‘아이를 만들지 못하는 불임 부부와 동성애 부부,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가족을 위해서’ 생식 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그 비용으로 그들은 20만 달러를 요구한다). 또 1년에 1백75 달러만 내면 인슈라클론도 해준다고 말한다. 매년 일정액을 내면 의뢰자의 세포를 일생 동안 보존해 주고, 그 세포를 이용해 먼 훗날 의뢰자를 복제하고 장기를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곽기화 팀장은 인간 복제에 성공하면 영생까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까? “일단 인간의 뇌 속에 든 모든 추억과 경험과 지식을 내려받아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복제 인간의 뇌 속에 깔면 또 다른 내가 탄생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기술이 실용화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전문가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다(그들은 아예 복제 배아를 대리모에게 착상했다는 말조차 믿지 않는다). 인간 복제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는 이미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30대의 나를 복제한 아기가 과연 나일까?





지금의 나는 30∼60대이고, 복제된 나는 아직 아기인데 그 둘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아기는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과 추억을 전혀 모른다. 무엇보다 선천적인 유전자보다 교육이 개성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간섭이 선천적인 유전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경험에서 비롯한 뇌의 독특한 성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복제할 수 없다. 따라서 히틀러의 유전자로 만든 인간이 신부가 될 수도 있고, 차범근의 유전자로 만든 인간이 학자가 될 수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자궁 안에서 유전적으로 복제된 일란성 쌍둥이나 샴쌍둥이조차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 데 주목한다.


복제 인간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비난이 있었다. 현대 의학윤리학의 선구자인 미국 신학자 폴 램지는 인간 배아 복제가 사람을 복사하는 것이라면서 신을 농락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바티칸은 일찍이 ‘성행위와 어떠한 관련도 없이 수정란 분할·복제·단성 생식을 통해 인간을 얻기 위한 시도나 가정은 도덕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못박았다.


일부 학자는 복제된 인간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로봇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염려한다. 성모병원 김동욱 교수(혈액분과)는 “단지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안된다. 난치병은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정복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출생에 유전적으로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 아버지와의 이질감과 그로 인한 심리적 피해를 예견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반대가 있으면 찬성도 있는 법. 그레고리 E. 펜스 교수(미국 앨라배마 대학·철학)는 인간 복제에 찬성하는 몇 안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복제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 복제는 불임 부부에게 도움이 되고, 배아 복제는 유전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공상 과학 소설과 영화 탓에 복제 인간이라면 노예·공원·자동 로봇, 혹은 범죄자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편견부터 버리라고 충고한다. “복제 인간은 무선 조종 로봇이 아니다. 그들도 인간이다. 우주라는 관점에서 다 똑같은 존재다.”(<누가 인간 복제를 두려워하는가> 양문출판사).


정광수 교수(전북대·과학철학)는 복제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점 때문에 인간 복제를 반대하지만, 인간 복제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반론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인간 복제가 인간 개개인의 유일무이한 독자성을 해친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피복제 인간과 복제 인간의 유전 형질이 100% 같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독자성은 훼손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한다. 질적으로 나은 외모·재능·인성을 가진 인간만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의견을 달리한다. 즉 재능·외모·인성은 유전자보다 환경 요인에 의해 더 좌우되므로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시험관 아기도 처음엔 비판받아


결국 정교수는 안전한 복제 기술이 개발되면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사회에 큰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인간 복제 같은 생식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통해 아기를 가졌을 때 아기가 신체적 피해나 질병을 물려받게 될 경우에도 복제술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1970년대 말, 유리관 안에서 체외 수정으로 ‘시험관 아기’를 만들 때에도 지금의 인간 복제와 비슷한 비난을 받았다. 그 때문에 체외 수정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했다. 그런데 1978년 7월25일, 존과 레슬리 부부(영국인) 사이에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면서 사람들의 태도는 놀랄 만큼 변했다.


복제 기술도 시험관 아기의 궤적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위험 요소가 많아 섣불리 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클로나이드의 ‘도발’로 인간 복제 연구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머지 않아 복제 인간이 탄생할 것이다. 그 미래가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린 것처럼 디스토피아가 될지, 아니면 제목 그대로 ‘멋진’ 세상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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