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봉호 생활을 들여다보니…
  • 부산·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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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문·텔레비전 보고, 냉장·냉동 식품에 싫증 내



'만경봉호’(3500t)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대남 공작’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다. 공작원을 수송하고, 25년간(1959∼1984년) 재일 동포 9만3천여 명을 북송시킨 탓이다. 그러나 이번에 다대포항에 입항한 만경봉92호(9672t)는 그 배와 별로 상관이 없다. 1992년 조총련계 상공인들이 40억 엔을 들여 건조해 김일성 주석 80회 생일에 선물한 배이다.


만경봉92호를 타고 부산에 온 북한 여성 응원단(단장 리명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비서)은 모두 3백55명(기자 9명, 선원 68명 포함). 이들은 대부분 평양무용음악대·외국어대 학생들과 인민보안성(한국의 경찰청) 취주악대 대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응원단을 지휘하는 리유경씨이다. 리씨는 인민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인터넷에 팬클럽까지


생겨났다. 평양무용음악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채송이양(16)은 기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는데 ‘짙은 눈썹과 깊은 눈이 매력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북한응원단의 선박 내 생활은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최근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북한응원단의 안내를 맡고 있는 한 공무원에 따르면, 북한측은 지난 10월 초 생선회 3백인분과 야채를 부산시에 부탁했다. 그는 “선박에서는 주로 냉장·냉동 음식을 조리해 먹는데, 이제 싫증이 날 때가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선박 내에서는 한국 텔레비전 방송과 국내 신문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들의 하루 일과는 단조롭다. 6시30분에 일어나 위생 사업(세수)을 하고, 정성 사업(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앞에 예의를 차리는 일)에 참여한다. 아침 식사 후 두세 조로 나뉘어 북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장으로 향한다. 준비한 멀미약과 캐러멜을 먹지만, 장거리 이동과 응원은 고되다. 북한응원단을 수송하는 한 버스 기사(32)는 강행군이 계속된 탓에 “목이 쉬고, 차를 타면 정신 없이 자는 단원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장에서 돌아오면 그 날 성적에 따라 크고 작은 뒤풀이를 벌이기도 한다. 여자 탁구팀이 금메달을 따던 10월4일 밤에는 다대포 부두에서 취주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30여 분간 춤과 노래 잔치를 벌였다. 장외 행사가 끝나면 선박 내 공동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밥을 먹거나 하루를 정리하는 총화사업을 벌인다. 각자 해산해서는 북한 비디오를 보며 잠을 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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