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지구 수비대’ 우주에 적수 없다
  • 서형욱 (MBC 축구 해설위원) ()
  • 승인 200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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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축구 명문 레알 마드리드, 절대 강자 노려
축구공은 둥글다. 그러므로 그라운드 위에서 만큼은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다. 하지만 여기에 도전장을 던진 팀이 있어 눈길을 끈다. 스페인의 명문 구단 레알 마드리드가 바로 그 주인공. 최근 2년 동안 피구와 지단이라는 월드 스타를 차례로 영입하는 데 성공해, 최강 전력을 구축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이 둘을 붙잡기 위해 퍼부은 돈은 무려 1억1천5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천억원에 이른다. 레알 마드리드는 라울·이에로·카를로스·카시야스 등 기존 황금 멤버에 이들 월드 스타를 묶어 최근 5년간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이탈리아의 인터밀란으로부터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축구 천재’ 호나우두를 영입한 것이다. 이때 레알 마드리드는 재정난으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적료 4천5백만 달러 가운데 천만 달러를 앞으로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기로 하면서까지 고액 지불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오를 곳이 없어 보이던 레알 마드리드가 이같은 무리수를 감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2002년이 팀 창단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02년 모든 대회 석권을 목표로 매년 최고 스타 영입에 아낌없는 투자를 시도했다. 챔피언스리그 9회 우승에 빛나는 역사를 앞세워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에 2002년은 명실상부한 ‘유일 강자’ 입지를 구축하는 시발점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1902년 창단한 이래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 우승컵을 휩쓴 레알 마드리드는 팀 고유의 하얀색 유니폼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하얀 사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구 수비대’라는 새로운 별칭이 붙었다.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을 모두 휩쓸어 가면서 자신들이 바라던 대로 최강자의 면모를 갖추게 된 덕분이다. 한동안 유럽과 스페인 모두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명성을 위협했던 카탈루냐의 상징 FC바르셀로나도 최근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위력 앞에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할 만큼 레알 마드리드의 입지는 굳건하다.


이 팀이 최근 3년간 사들인 3총사의 면모를 보면 단박에 그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세 슈퍼 스타는 세계축구연맹(FIFA)이 최근 7년간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 가운데 무려 여섯 번을 나누어 가졌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축구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각 개인의 면모를 살펴보면 더욱 놀랍다. 2000년에 입단한 루이스 피구(30)는 FC바르셀로나의 핵심 공격수로 활동하면서 조국 포르투갈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2001년에 입단한 지네딘 지단(31)은 프랑스의 1998년 월드컵 우승과 유로2000 우승을 이끈 ‘천재 미드필더’다. 지난 여름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호나우두(27)는 10대 후반부터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었고 2002년 월드컵 때는 20년 동안 ‘마의 벽’으로 인식되던 6골 득점왕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새로운 황제’가 아닌가.


이로써 레알 마드리드는 1990년대 초 이른바 ‘오렌지 삼총사’를 앞세워 세계 축구계를 호령했던 AC밀란 이후 10년 만에 그라운드의 ‘유일 강자’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아스날(잉글랜드)과 인터밀란·AC밀란·유벤투스(이탈리아) 등 또 다른 명문 팀들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위협할 만한 팀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아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1월20일 현재 자국 리그에서조차 레알 소시에다드에 뒤져 2위에 올라 있고, 이번 시즌 들어 벌써 여러 차례나 패배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스타 쇼핑’에 몰두, 유망주 육성 외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선수 사들이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외부 영입을 통한 세 불리기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다른 클럽들은 가뜩이나 자금 사정이 악화한 축구 시장에서 불필요한 고액 이적료를 남발함으로써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고, 레알 마드리드 팬들 역시 유망주 육성보다 ‘스타 쇼핑’에 골몰하고 있는 팀 방침에 썩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엄청난 이적료를 퍼부으며 시장 규모를 확대시켰던 명문 구단들이 적자에 허덕이는 사정도 이같은 ‘슈퍼 클럽’ 출현이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이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독보적인 멤버 구성을 갖춘 팀의 존재는 더욱 도드라진다. 지단·피구의 패스를 이어받아 골을 터뜨리는 호나우두와 라울의 골 세리머니 그리고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호쾌한 프리킥 골에 이은 명 수문장 카시야스의 선방을 한 팀의 경기에서 관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동시대 축구 팬들에게 주어진 일생 일대의 행운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관심은 이처럼 초호화 진용을 자랑하는 레알 마드리드가 올 시즌 어떤 성적을 올리느냐에 있다. 현재 자국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우승권에 근접해 있는 이 팀이 우승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어떻게 떨쳐낼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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