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상처내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
  • 양한모 기자 (hanmo@sisapress.com)
  • 승인 2004.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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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겨울이면 더 기승…조기 발견하면 완치 가능
조아무개씨(42)는 어려서 겨울이 몹시 싫었다. 찬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피부염 탓이었다. 한겨울에 내복을 입고 누우면 벌레가 기어들어 온 듯 온몸이 근질거렸다. 특히 사타구니 부위가 심해서 밤새 득득 긁어대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끔 손끝에 피가 묻어났지만 극렬한 ‘손질’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정말이지, 백약이 무효였다. 온갖 연고를 덕지덕지 발랐지만 가려움증은 사라지지 않았다”라고 조씨는 말했다.

긁은 부위에서 진물이 흘러나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아침이면 상처에 들러붙은 내복을 떼어내느라 ‘으윽’ 소리를 내는 일이 잦았다. 나날이 화농(化膿) 부위가 증가했고, 마침내 엉덩이에까지 ‘열꽃’이 피어났다. 상태가 그 지경이었는데도 다행히 조씨는 생활에 별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낮에는 가려움이 훨씬 덜했기 때문이다.

피부염은 그 뒤에도 2, 3년 더 조씨를 괴롭혔다. 그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지금까지 조씨는 아무런 후유증도 겪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사타구니가 근질근질하다고 웃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운이 좋았다. 피부염에서 비교적 일찍 벗어나고, 사회 생활에 별 지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아토피 피부염(아토피) 환자들의 처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환경 오염으로 육체적 고통이 더 심해지고, 아토피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까지 받기 때문이다. 아토피는 오랜 기간 재발과 완화가 반복되는 만성 질환으로, 조각 난 피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 염증, 건조, 비듬처럼 떨어지는 각질 따위 증상을 나타낸다. 세계 인구의 20% 정도가 아토피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체 환자의 40%가 유아이다. 서성준 교수(중앙대 용산병원·피부과)는 “아토피는 발병이 빠르면 빠를수록 예후가 좋다. 그러나 성인기에 발병하면 치료가 매우 어렵다”라고 말했다.

유럽 피부·성병학회는 최근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삶에 관한 국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프랑스·독일·스페인·멕시코·영국의 아토피 환자와 보호자 2천명을 면접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아토피 환자 대부분은 대인 관계 및 사회 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었다.

예컨대 청소년·성인 환자 20%가 연인을 찾는 데 힘들어했고, 성인 환자 40%는 연인과의 키스나 스킨십을 거북하게 여겼다. 증상이 심한 환자의 40%는 아예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외출을 삼간다고 응답했다. 또 4명 중 1명(27%)은 놀림을 당한 적이 있었고, 환자 6명 중 1명은 취업 면접이나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환자 2명 가운데 1명은 우울증까지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한국 아토피 환자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 의미 있는 자료가 있다. 최근 박천욱 교수(한림대 강남성심병원·피부과)는 아토피 환자 4백53명을 대상으로 ‘아토피 피부염 환자 실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아토피로 인해 받는 한국인의 스트레스 강도는 유럽인에 못지 않았다.
학교나 직장에서 놀림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43%가 ‘그렇다’고 답했다(‘그렇지 않다’ 39%, ‘모른다’ 17%). 응답자의 56%는 아토피 탓에 연인이나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고, 성인 환자 31%는 취업 면접에서까지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내적으로 겪는 우울증·분노·좌절과 자신감 상실도 심각했다. 무려 82%가 그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육체적으로 겪는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환자 89%가 아토피로 인해 ‘숙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고, 92%가 아토피가 심해지면 ‘직장 업무나 학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88%는 아토피가 언제 심해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답했다.

실제 아토피를 앓는 환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설마~’ 소리가 나올 정도로 처절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토피 환자로 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 경우 ‘… 전 지금 고 3이구요, 수시 붙어서 이제 대학 들어가요. 중2 때부터 긁느라 잠은 3, 4시에 자고, 6시30분에 일爭돗楮? 아침에 한약 먹고 약 바르느라 항상 지각했지요. …중3 때 과학 시간에 선생님이 특효약이라면서 스프레이 비슷한 걸 제 얼굴에 뿌리는 거 있죠.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도 재미가 들렸는지 웃으면서 계속 뿌리더군요. 엎드려서 엉엉 울었어요. 선생님도 당황하고 아이들도 당황하고, 저는 바로 학교를 뛰어나왔어요. …그때부터 거울도 안 보고 항상 불 꺼진 방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인생이 공허했죠. 엄마는 그런 저를 보면서 어찌나 우시던지…. 그 뒤 한 달쯤 정신과 다녔어요. 아주 심각했나 봐요. (그렇지만) 정신병자 취급해서 더 이상 안 갔어요. 이후로 선생님이 학교 오지 말라고 했지만 오기로 미친 듯이 다녔어요….’(다음 카페 ‘아토피 피부염’에 올라온 글)

다니던 학교와 직장을 그만두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접히는 부위가 가렵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피부염이 얼굴에까지 번졌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는데 그 바람에 자주 학교를 빼먹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밤새 긁느라고 잠을 설치는 바람에 매일 지각을 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 와중에 온몸으로 병이 번졌고, 한방·민간요법·건강식품 등을 두루 섭렵했다(그러나 차도는 별로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이후 백내장·망막 박리 수술을 받았고, 그 바람에 군대도 가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1년 남짓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요즘은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24세 남성 박승○씨).
나의 구세주는 고무장갑?(수면 장애) 직장인 최 아무개씨는 회사 엠티를 갔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모두들 즐겁게 놀고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평소 곱고 얌전하기로 소문 난 강난주씨(가명)가 슬며시 고무장갑을 꺼냈다. 모두들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강씨가 겸연쩍게 웃었다. 더 의아스러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강씨가 고무장갑을 끼고 그대로 잠자리에 누워버리는 게 아닌가. 누군가 나섰다. “난주씨, 설마 고무장갑 끼고 자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강씨가 말했다. “제가 사실은 아토피 환자거든요. 이렇게 고무장갑을 끼지 않으면 온몸에 상처를 내고, 잠을 도저히 잘 수 없거든요.” 모두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누가 강씨의 고통을 100% 이해할 수 있을까.

재발과 유전 때문에 불안, 불안 이0연씨(24)는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에 걸렸다. 가장 심했던 시기는 고등학교 3학년~대학교 1학년 때.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며 고통을 이겨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있어 한시도 마음 편할 ??없다. 그의 불안이 좀처럼 줄지 않는 이유는 가족과 친척 가운데 비염이나 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걸린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아토피 환자면 ‘자녀가 아토피에 걸릴 확률이 50%’라는 전문가의 말도 그의 정신을 옥죄고 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박천욱 교수는 “아토피로 인한 마음의 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안타까운 점은 재발-억제-재발을 반복하는 동안 본인도 모르게 병이 깊어진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럽의 환자보다 한국의 환자가 더 심각하게 심리적 고통을 겪는 이유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염될 위험 때문에 아토피 환자를 멀리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아토피는 절대 전염되는 질환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아토피를 완전히 퇴치할 방법은 없다. 다만 재발 시기를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다행히 최근에 비스테로이드성 치료제 엘리델 크림이 강한 억제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엘리델 크림에 대해 서성준 교수는 “빠르게 가려움증을 완화시키는 데다 재발 억제력도 높아 많은 환자에게 처방한다”라고 말했다. 2002년 미국임상면역학회가 발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유아 환자에게 엘리델 크림을 처방한 결과 57%가 1년이 넘는 동안 아토피가 재발하지 않았다. 한 임상 연구에서는 엘리델 크림을 처방할 경우, 기존 치료제보다 재발 주기(재발이 일어나지 않은 기간)가 6배나 긴 것으로 나타났다.

노영석 교수(한양대병원·피부과)는 약도 약이지만 조기 발견과 꾸준한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초기에 발견해 적극 치료하면 완치율을 높일 수 있다. 이미 진행된 상태라면 ‘병원 쇼핑’을 다닐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가는 의사에게 자신을 맡기고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안전하다.” 섣불리 포기하거나 마음대로 완치했다고 믿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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