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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과학의 선 자리와 갈 길

사회:<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강정인/아카넷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학) ㅣ 승인 2004.12.14(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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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한국 사회과학이란 구미의 과학을 한국 땅에 들여온 것일 따름이었다. 그 과학(보편·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한국’ 땅은 짜증의 대상이었다.

강정인의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는 한국 사회과학이 이 땅의 과학이어야 한다는 각성의 문지방을 넘는 선언서이다. 저자가 한 주제를 두고 근 10년에 걸쳐 공을 들인 이 책은 크게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구미중심주의의 정체를 논한다. 둘째는 더 깊이 그 사상사적 전개 과정을 다루는데, 서양정치사상 연구자인 저자의 식견이 잘 발휘된 부분이다. 셋째는, 앞서 요리된 구미중심주의와 한국이 만나는 점이지대다. 여기서 한국의 두 정치적 정향, 보수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프리즘에 비친 구미주의의 맥락이 개진된다. 넷째는 ‘구미중심주의를 넘어서’다. 앞 세 편이 학자로서의 조밀함이 기초된 글이라면, 마지막 4부는 사상가로서의 비전이 담긴 부분이다.

이 책으로부터 한국 사회과학은 겨우 출발점에 섰다. 그간 구미와 일본에 대해서는 주눅이 들고, 이 땅의 삶에 대해서는 짜증을 부리던 한국 사회과학은 이제 그 콤플렉스를 벗어나 두 발로 반듯하게 선 것이다. 구미의 선진을 인정하되 우리의 특수성도 보전하는 어른스러움이 이 책 속에는 있다.

그러나 이제 겨우 바로 섰을 뿐이다. 문제는 발걸음을 내딛는 데 있다. 구미중심주의를 넘는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절충주의, 예컨대 ‘구미 학문에 익숙한 학자들은 동양적(한국적)인 것을 폄하하는 의식을 청산하고 동양 학문(한국학)에 익숙한 경우 구미적인 것에 대한 경계 의식을 극복하여 호혜성·평등성 및 차이의 존중에 입각한 교차문화적 대화를 선진적이고 창조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제안은 기계적이다. 도리어 구미 학문 하는 사람은 구미 학문에서 끝을 보고, 동양 학문 하는 사람은 또 그 속에서 넝쿨을 자아내는 그야말로 ‘(한 군데) 미쳐야 (상대에까지) 미치는’ 심화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은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같이 생긴’ 한국 사회과학의 오늘과 내일을 가장 첨단적으로, 그리고 가장 깊이 보여주는 지도책이다. ‘한국-사회과학’에 목말라 ‘한국사회-과학’을 지향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밑줄을 그으면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추천인:구춘권(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박명림(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함인희(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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