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1966 자신합네다”
  • 손장환 (중앙일보 기자) ()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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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축구, 스피드·세련된 전술로 무장…해외파 기용하고 포상금 검토
‘AGAIN 1966’.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붉은 악마’들이 수놓았던 카드섹션 내용이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올랐듯이 한국도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에 오르자는 의미였다. 한국은 응원단의 염원대로 안정환의 골든골로 2-1로 승리해 8강에 진출했다.

‘북한 축구’하면 역시 잉글랜드 월드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박두익의 결승골로 이탈리아를 꺾은 것도 이변이었지만,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전반 27분까지 3-0으로 앞서간 것도 세계 축구팬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장면이다.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에게 4골을 내주며 3-5로 역전패했지만, 북한 축구는 돌풍의 진원지였다. 당시만 해도 세계 축구는 속도전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조직력으로 무장한 북한은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 북한 축구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한국이 월드컵 예선에 아예 기권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반공’이 국시이던 1960~1970년대에는 남북 대결에서만큼은 무조건 이겨야 했다. 그런데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북한 축구가 너무 세다. 붙으면 무조건 진다’는 보고를 올렸다. 결론은 ‘기권’이었다.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깜짝쇼를 펼쳤던 북한 축구는 그 후 세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기껏 킹스컵이나 메르데카컵에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실력은 평범했다. 달리기는 잘했지만 전술이나 개인기는 처졌다. 후진적이었다.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이 벌어졌다. 조별 예선 1위 6개 팀이 모여 본선 티켓 2장을 놓고 싸웠다. 최종 예선 진출 팀은 한국·일본·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이란·북한이었다. 그런데 북한 선수단이 이상했다. 선수 엔트리는 22명인데 선수는 19명뿐이었다. 다른 팀은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어째서 북한은 엔트리보다 적은 수를 데려왔을까. 알고 보니 이유는 ‘돈’이었다. 22명에 대해서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이 항공·숙식 등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북한은 선수 3명을 줄이고 대신 보도일꾼(기자)과 임원을 엔트리에 넣었던 것이다. 결국 한 달에 걸쳐 벌어진 최종 예선에서 북한은 나중에 교체할 선수가 없어서 부상 선수가 그대로 뛰어야 했다.

1993년 10월28일. 한국과 북한은 마지막 경기에서 만났다. 북한은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고, 한국은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북한 감독은 한국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남조선이 월드컵에 나가야지요”라고 말해 놀라게 했다. 그 날 한국은 3-0으로 이긴 데다 일본이 이라크와 2-2로 비겨 극적으로 본선 티켓을 따냈다. 그 날 이후 북한 축구는 국제 무대에서 사라졌다. 올림픽에도, 월드컵에도. 예선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모두 경제난 때문이었다.

그리고 10년여가 흐른 올해, 북한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 모습을 나타냈다. ‘강팀’의 면모를 갖추고서. 성적은 3승2무1패(11득점·5실점)로 5조 1위였다. 한번의 패배는 조 1위가 확정된 뒤에 치른 아랍에미리트와의 최종전(0-1)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지난해 12월 117위에서 96위로 뛰어올랐다.
유럽 전지 훈련 등 아낌 없는 투자

북한은 최종 예선에서 일본·이란·바레인과 함께 B조에 속했다. 현재 아시아 최강이라는 이란, 그리고 일본과 한 조가 되었는데도 북한의 자신감은 여전하다. 정인철 북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본선 진출을 낙관하고 있다. 올해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일본은 강하고 경험이 많지만 우리의 젊은 선수들도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성장해 자신감을 갖고 있다. 우리가 정상 전력을 갖추고 강한 정신력을 발휘한다면 어떤 경기라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이란이 힘든 상대이긴 하지만 우리가 못 이길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2차 예선에서 보여준 북한 축구는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빠른 것은 여전하고, 전술도 세련되었다. 북한 축구가 급속히 강해진 비결은 ‘개방’이다. ‘우리끼리, 우리 식으로’ 하던 폐쇄성을 벗어던졌다. 비록 경제 사정이 더 악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축구에 관한 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내년 초에는 유럽 전지훈련도 잡혀 있다. 본선 진출 목표를 이루면 선수단에 포상금을 주는 것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무대에서 통하는 여자 축구대표 선수들에게는 몇 차례 포상금을 준 일이 있지만 남자 축구에는 처음 하는 배려이다.

최근에는 해외 루트를 통해 세트플레이 전략 등 선진 축구 기술을 받아들여 꾸준히 익혔고, 상대팀의 경기 비디오도 입수해 연구했다. ‘해외파’도 과감하게 기용했다. 일본 J리그에서 뛰고 있는 안영학(알비렉스 니가타)과 이한재(산프레체 히로시마)가 가세하면서 경기 전개가 훨씬 매끄러워졌다.

북한 대표팀은 군인 팀인 ‘4ㆍ25’ 소속 선수가 대부분이다. 4ㆍ25팀이 중심이 되고 다른 팀에서 몇 명을 보완한 형태다. 단일팀이나 다름없으니 팀워크가 좋을 수밖에 없다. 북한 대표팀은 우리의 파주트레이닝센터와 같은 ‘대표팀 축구 합숙소’에서 훈련한다. 평양 인근에 있는 이곳은 일반인 절대 출입 금지 구역이다. 국제축구연맹이 ‘축구 개발도상국’을 돕는 ‘골 프로젝트’의 지원금을 받아 최근 시설을 최신식으로 고쳤다.

수비수·미드필더, 개인 능력 뛰어나

북한 대표팀의 포메이션은 ‘4-4-2’ 또는 ‘4-3-3’이다. 수비는 주장 이명삼을 중심으로 ‘일자(一字)형 포백’을 쓴다. 수비수끼리 호흡이 잘 맞고 대인방어 능력도 뛰어난 편이다.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는 김영준이 붙박이다. 몸싸움과 위치 선정이 좋고 전방으로 보내는 패스의 질도 높아 윤정수 감독이 매우 아끼는 선수다. 소속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인 안영학은 북한 대표팀에서는 왼쪽 미드필더로 나선다.

최전방에는 홍영조와 김영수가 있다. 2차 예선에서 팀 내 최다인 4골을 넣은 홍영조는 전형적인 골잡이로 문전에서 침착함이 돋보인다. 김영수는 점프력이 좋아 헤딩슛이 위협적이지만 지나치게 서두르다가 찬스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한재는 개인기와 돌파력이 뛰어나다.

과연 북한 축구는 그들이 장담한 대로 40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갈 수 있을까. 한국과 북한은 다른 조에 속해 있다. 각 조에서 2위 안에 들면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단일 팀 구성’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단일 팀’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남북이 동반 진출하게 된다면 유럽에서 벌어지는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세계 축구 팬들에게 ‘코리아’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 ‘AGAIN 1966’은 남과 북이 똑같이 기대하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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