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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거치지 못한 역사의 대가 크게 치르고 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안철흥 기자 ㅣ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1.03(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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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는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교수 시위단의 일원으로 거리에 섰다. 학생운동 하던 대학 시절 이후 40여년 만이다. 통혁당 무기수 출신으로 그 자신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였기에 몸소 나선 소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국보법 논의가 막히는 걸 보면서 보수 세력이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사실 조선조 인조반정 이후 우리 나라에서는 지배 그룹이 바뀐 적이 없었다.” 소감을 묻자 그는 에돌아, 그러나 어찌 보면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그는 최근 학교의 고전강독 시간에 강의했던 내용을 묶어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돌베개)을 펴냈다. 책 또한 고대 성현들의 사유를 에돌고 있지만, 실은 오늘 우리의 문제를 성찰하는 대목이 많다. 2004년을 하루 남긴 날, 학교로 그를 찾아가 책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과학자로서 동양 고전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언젠가 누가 책을 추천해 달라기에 마르크스의 <자본>과 공자의 <논어>를 권했더니, 너무 이질적이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다. 춘추전국시대는 풍부한 사회 담론이 생겨나던 시기였다. 동양의 고전들은 당시의 인간 관계와 사회제도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담고 있다. 현재의 사회 질서가 지속 가능한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대안 논리를 찾기 위해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유가 철학은 봉건 지배층 이데올로기였는데, 21세기와 어떤 연관이 있나?

모든 사상은, 심지어 보수적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시장 원리도 발생 초기에는 혁명적인 논리였다. 맹자는 양혜왕이 부국강병의 방도를 묻자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인데 어찌 이(利)를 말하느냐고 따졌다. 유학이 나중에 중앙집권적인 봉건 국가의 국교가 되면서 보수적인 논리로 바뀌게 되지만, 초기 유학의 정신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성찰할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동양 고전의 지혜를 빌려 오늘을 바라볼 때 가장 시급한 화두가 무엇인가?

우리는 과거를 일단 지나간 것, 다시는 오지 않을 것, 망각해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은 미래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는 우리들 현재 속에 그대로 남아 있고, 미래는 이를 통해 만들어진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가 필요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 고전 읽기가 붐이다. 동아시아 담론이 나오고, 동양의 고대에서 문명론적 해답을 찾기 위한 모색들도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보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화는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원리이고, 동은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원리다. 콜럼버스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지금까지의 서양 근대사는 부단히 동의 역사였다. 종교도 언어도 자기 것을 강요하는 세계 유일한 지배 체제를 만들어냈다. 이런 동의 세계를 청산하고 화의 논리로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동양의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서양을 배타적으로 대하거나 동양의 우월성만 강조한다면 국수주의나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많이 경제 발전을 했지만, 빈부 격차와 그에 따른 갈등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인문학자이자 사회과학자로서 우리 사회의 이런 모순을 어떻게 보나?

지금 시장주의자들은 근대 2백년 동안 빈곤·질병·무지·오염·부패 등 인류의 5대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환상이다. 매일 어린아이 3만5천명이 영양 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기아 선상의 빈곤층이 세계 인구의 33%나 된다. 빈곤은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삶의 조건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불안한가. 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자본주의 축적 논리의 최후 모습을 본다. 석유 결제 화폐를 유럽연합의 유로화로 바꾸기만 해도 미국의 달러 가치는 최소 20~40% 폭락한다. 후세인이 그렇게 하려고 했고, 이란은 이미 외화 보유를 유로화로 바꿨다. 그렇게 할 경우 국제 통화로서 달러의 힘은 약해지고, 미국의 힘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세계 질서는 이렇게 불안한 구조이다. 우리 나라도 이런 불안한 구조에 결탁해 있는데, 지속 가능성이 희박한 세계 질서에 무조건 추종하는 것에 대해 이제는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이념 논쟁이 너무 과열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과거의 보수적인 구조가 완곡하게 남아 있다. 그런 사회, 혁명을 거치지 못한 사회가 두고두고 치르는 비용이 엄청나다. 보수적 구조에서 새로운 개혁과 진보를 이야기하려면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 민족이나 국민국가라는 공동체 의식이 폐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부부싸움도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합의하고 있는 때는 일정 선에서 자제된다. 그러나 가정을 버리기로 했을 때 싸움은 극단화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렇다.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편입되면서 우리 사회가 과연 남북한 민족 공조라는 국민국가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 갈등을 치유할 만한 해법이 있나?

이미 말했듯이, 이런 세계 질서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한지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근본 담론을 되살려야 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질서는 춘추전국시대의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도 수많은 제후국들이 춘추 12개국으로 전국 7개국으로, 결국 진나라로 통일되었지만, 일원화한 사회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동양의 관계론적 사유 체계에서 새로운 대안 담론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한때 사회단체 사무실에 가보면 신선생의 ‘어깨동무체’가 안 걸린 데가 없었다. 글씨 쓰기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다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그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붓글씨라는 것은 획을 그은 뒤 마음에 안든다고 지우고 다시 쓸 수가 없다. 다음 획으로 결함을 보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글자를 쓰면서 아래 위 옆까지 다 살펴야 한다. 다른 예술 장르에서는 작가의 파탄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도는 다르다. 작품에 작가의 정신이 준엄하게 드러나는 예술이 서도다.

이번에 펴낸 <강의>의 서문에는 감옥에서 노촌 이구영 선생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양 고전의 정신을 익히던 이야기가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 선생에게 감옥은 최고의 대학이었던 것 같다.

옛날 선비들은 전문성을 기르지 않았다. 문사철과 시서화를 함께 익혔다. 오늘날의 교육은 너무 전문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문성은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것으로 인간적인 원리가 아니다. 옛날에는 노예들의 노동에만 전문성을 요구했다. 내가 그래서 이것저것 배우고 익힌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 교육이 너무 전문성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제 2005년 신년이다. 새해를 맞아 독자들에게 생각할 만한 경구를 하나 들려달라.

최근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글씨를 한 점 썼다.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씨과실은 먹지 않고 씨를 받아 땅에 뿌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거품과 허위의식을 버리고 우리 삶의 실상을 직시하라는 것이 석과불식에 담긴 가르침이다. 지금이 외환위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일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과 사회의 참된 구조를 직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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