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 애벌레가 사람 생명도 좌지우지
  • 박호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곤충자원연구실장) ()
  • 승인 2005.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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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활용한 유전자·질병 면역 연구 활발
지구상에서 가장 종이 많은 생물은 곤충이다. 곤충은 역사도 길다. 인간이나 공룡보다 훨씬 이전에 지구상에 출현했다. 뛰어난 환경 적응력 덕에 서식지도 다양하다. 사막이나 빙산에서도 발견된다. 최근 이같은 곤충을 산업·경제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선두 주자는 미국과 일본이다. 두 나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곤충의 행동과 기능을 적용한 생체 모방 기술 연구를 진행해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한국도 최근 무당거미에게서 단백질 분해 효소인 아라자임(Arazyme)을 추출해 두 나라를 뒤쫓고 있다.

꿀벌이나 누에는 가장 오래된 산업 곤충이라 할 수 있다. 옛 조상들은 곤충들을 생약이나 식품으로 이용했다. 번데기와 벼메뚜기는 지금도 간식이나 술안줏거리로 애용한다. 최근 여러 제약사가 지렁이를 혈액 순환 개선제로 상품화하고 있다. 굼벵이도 간질환 개선제로 꽤 오랫동안 이용되고 있다. 말라 죽은 벌레에서 자란 동충하초와 거머리·지네·전갈도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데 적극 이용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지금 100종이 넘는 곤충에게서 고지혈증·당뇨·비만·암·간질환 등에 효과가 있는 활성 물질을 찾아내 산업화하고 있다.

고효율 단백질 분해 효소인 ‘아라자임’이 대표적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바이오벤처 인섹트바이오텍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당거미에서 이 물질을 추출해, 한순간에 무당거미를 고부가가치 산업 곤충으로 격상시켰다. 연구팀은 맨 먼저 거미의 먹이 소화 메커니즘에 주목한 뒤, 거미 몸속에서 강력한 단백질 분해 효소를 생산하는 미생물을 발견했다. 세계 최초의 일이었다.
단백질 분해 효소 ‘아라자임’ 세계 최초 발견

놀라운 점은 아라자임의 독특한 효능이다. 이 효소는 보통 온도는 물론 아주 낮은 온도에서도 잘 작용한다. 그리고 산성·알칼리성 물질이나 바닷물보다 짠 염분에서도 작용한다. 더 놀라운 것은 단백질 분해 기능 외에도 여러 가지 병원성 미생물에 대해 높은 항생·항균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 분해 효소가 알려져 있지만, 아직 아라자임만큼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는 효소는 보고된 적이 없다.

아라자임의 쓰임새는 광범위하다. 우선 질병 예방제와 성장 촉진제로 가축에게 먹일 수 있다. 강력한 항균·항생 효과 덕분이다. 단백질 분해 기능을 활용하면 화학약품을 대신해서 얼굴이나 발, 몸의 각질을 부작용 없이 벗겨낼 수도 있다. 가죽 가공 공장에서는 화학 약제 대신 사용할 수 있는데, 가죽의 질이 좋아지고 환경 오염도 예방할 수 있다.

이밖에 수돗물이나 찬물, 바닷물에서도 잘 작용하는 세제나 정밀화학 공정에 사용되는 세정제, 햄·소시지 등에 식품 가공제로 쓸 수 있다. 최근 대량 생산에 성공한 아라자임을 국내는 물론 미국·일본·중국·브라질 등 해외 시장이 주목한다.

곤충의 쓰임새는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온실 안의 딸기·토마토·사과 꽃에 수분하는 꿀벌이나 뒤영벌이 있는가 하면, 낚시 미끼와 애완 동물 사료로 쓰이는 곤충이 있다. 또 축산 폐기물을 먹어치우는 환경정화용 곤충, 특정 잡초만 골라 먹는 잡초방제용 곤충도 있다. 최근에는 가축 분뇨를 먹고 자란 뒤 가축의 먹이가 되는 곤충까지 등장했다.

곤충의 유전자가 사람의 유전자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활용 폭이 더 넓어지고 있다. 초파리와 누에는 유전자 연구용 곤충으로 쓰인다. 특히 유전자가 조작된 초파리는 질병 치료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 세계적인 제약사들은 곤충 세포 배양이나 누에·배추벌레에서 사람이 쓸 백신이나 호르몬, 기능성 단백질 등을 뽑아내 상품화하고 있다.

곤충은 생물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연구는 곤충의 서식 환경과 행동 특성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예컨대 거미에서 실을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내, 가벼우면서도 신축성과 강도가 뛰어난 신소재를 개발해내는 것이다. 실제 섬유 시장에서 거미실로 된 천연 섬유, 인공 피부, 신소재 의복, 인공막, 특수 로프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물 속에 서식하는 곤충이 분비하는 생체 접착 물질을 활용하면 물 속에서도 달라붙는 접착제와, 수술 뒤 피부를 붙이는 바이오 접착제를 생산할 수 있다. 누에 똥에 다량으로 함유된 클로로포피린은 항암 치료제로 이용된다. 반딧불이의 발광 유전자는 누에나 담배 같은 생물의 유전자 발현을 확인하는 데 쓰인다. 만약 가로수에 이 유전자를 주입해 발현시킨다면, 깜깜한 밤에 반딧불처럼 빛나는 가로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나비의 날개 표면에서 뽑은 광물성 천연 염료를 위조 지폐 방지용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곤충의 행동을 모방해 공학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비행 중인 파리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도 그 중 하나다. 만약 이 연구가 결실한다면 비행체에 활용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노벨 의학상은 냄새를 맡는 후각 수용체와 후각 기관을 연구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도 곤충이 쓰인다.
마약 탐지하는 바이오 센서로 쓸 계획도

곤충은 다른 동물에 비해 다양한 화학물질을 탁월하게 감지해낸다. 더듬이의 감각 수용체가 대단히 민감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에서는 마약이나 특정 물질을 탐지하는 바이오 센서로 곤충을 쓰고자 한다. 그 외에도 벌의 집짓기 능력은 첨단 건축 구조 기술에, 개미의 위치 측정 능력은 자동 항법 장치 개발에 응용되고 있다. 가볍고 견고한 딱정벌레 껍질은 기동성과 안전성이 우수한 전차의 방탄 기술에 참고되고 있다.

곤충에게는 무시하지 못할 능력이 있다. 혹한에서도 얼어 죽지 않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가 곤충 몸에 있는 항동결단백질(AFP) 때문인 것으로 밝혀냈다. 특히 한반도에서 월동하는 특정 곤충에서 분리한 항동결단백질의 내동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항동결단백질을 동물이나 식물에 활용하면 냉해 방지나 동상 방지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얼마 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와 함께 곤충 면역에 관여하는 생체 방어 물질을 나방의 애벌레에서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복률 교수(부산대·약학과) 연구팀도 딱정벌레 애벌레에서 세균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 진단 시약으로 상품화했다.

국내의 지방자치단체도 곤충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함평 나비축제와 무주 반딧불이축제가 대표적이다. 곤충나라나 (주)킨섹트는 풍뎅이나 사슴벌레 사육 키트를 판매하고 있으며, (주)세실은 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천적 곤충을 생산하고 있다. 무심코 만나는 곤충이 사람의 생명과 환경을 ‘정화’하고 있고, 그 효과는 과학이 발달할수록 더욱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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