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신문 전쟁’ 촉발하다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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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한 연합군과 중앙 대결…일본에선 지하철 독가스 사건
 
10년 전인 1995년 3월 말은 신문 전쟁이 한창이었다. 조간 신문 빅3인 조선일보·동아일보·한국일보 등 조·동·한 연합군과 석간 신문 중앙일보가 맞붙었다. ‘1995년 4월15일 조간 전환’을 예고한 중앙일보가 판매 조직을 대거 흡수하면서 기존 조간 신문들과 갈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해 9월부터 중앙일보가 ‘48면 섹션 신문’을 표방한 뒤 증면 경쟁이 불붙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이 싸움은 그 연장전이었던 셈이다.

발단은 당시 ‘최첨단 매체’였던 PC통신이었다. 하이텔이 가입자 1천3백19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중앙일보가 가장 읽기 편한 신문으로 뽑혔다는 결과를 중앙일보가 받아 1면 기사로 보도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자 한국일보가 사설로 ‘재벌 신문이 언론을 파괴하고 있다’고 선제 공격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동아일보는 삼성과 관련한 기사를 사회면 머리 기사로 연이어 올렸다. 한국PC통신이 여론 조작을 남발하고 있다는 ‘보복 기사’도 사회면 기사로 올랐다.

이 사건은 언론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문들은 ‘동업자’를 비판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까지 나서 지나친 경쟁을 자제하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PC통신 전체 가입자 55만 시대에 ‘최첨단 매체’인 PC통신 여론조사가 신문 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도 흥미롭다. 그로부터 10년 뒤, 최첨단이라던 PC통신이 사양화하고, 기세 등등하게 신문 전쟁에 나섰던 종이 신문이 인터넷 매체에 위기감을 느낄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10년 전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정치인은 김종필 자민련 창당준비위 명예위원장과 박찬종 당시 신민당 의원. 김명예위원장은 충청권에서 지구당 창당대회를 돌며 꽹과리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박찬종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10년 전에는 파워맨이었지만 현재 여의도에서 이들의 모습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한편 대한해협 건너 일본은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살인 사건(1995년 3월20일)으로 발칵 뒤집혔다. 12명이 사망하고, 5천5백여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수사 결과 이 사건은 다른 납치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옴진리교를 수사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경찰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역사는 반복하고, 뉴스는 돌고 돈다. 1995년 3월23일 증권감독원이 ‘증권가 찌라시’를 단속해 그 진원지를 색출하겠다고 공표했다. 최근에는 검찰이 증권가 찌라시를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57쪽 기사 참조). 10년 동안 찌라시는 계속 돌고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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