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리처드 펄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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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올해도 댁내 두루 평안하시기를 바라며, 새해 첫 씨줄날줄을 엮어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리처드 펄.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는 '밤의 황태자'라는 별칭으로 자주 부르고, 네오콘으로서 방귀 꽤나 뀌는 인사입니다.
리처드 펄은 왕년 닉슨 시절과 포드 시절, 미국이 추진했던 옛 소련과의 데탕트를 짐 싸들고 반대한 것으로 악명높은 인사입니다. 당시 닉슨-포드 시절의 대소련 정책이 소련에 대해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며, 시쳇말로 데탕트에 고춧가루를 뿌렸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당시 데탕트를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당시 국무장관 핸리 키신저와 척을 지게 됩니다. 키신저는 특히 나중에는 네오콘이 당시 했던 일정한 역할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리처드 펄 저 녀석 두고봐라. 국무부에 들어오면 6개월도 안돼 나처럼 될 것이다'라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양반은 체니와 마찬가지로 이재에도 관심이 많아 자주 구설에 올랐습니다. 부시 정부가 출범할 때 그는 미 국방부 차관에 기용될 수 있었는데, 고사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차관 자리에 오르면 공직자 재산 공개와 미 상원의 심사를 거쳐야 해야하는데, 이를 꺼렸기 때문이라는군요. 대신 그는 미 국방부를 자문하는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얻었습니다.이 분은 생김새부터가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구석이 있어보이고 구린내가 풍기는 인상인데, 아니나 다를까 군수 기업체와 모종의 뒷거래가 논란이 되어 결국 국방정책위원장 자리에서 도중하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위세가 꺽인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해가 갈수록 그가 일으키는 칼바람은 요새처럼 엄동설한의 동장군도 울고 갈 정도로 날로 매세워지기만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최근 그가 백악관 특보를 지냈으며 2002년 연두 연설 때 등장한 '악의 축'을 작명한 장본인 데이빗 블럼과 함께 펴낸 <악의 종언:어떻게 테러와의 전쟁을 이길것인가>(An End to Evil:How to win the war on terror)입니다.
저는 리처드 펄의 새롭게 버전업된 '전쟁 철학'의 정수가 이 책에 담겨 있다고 봅니다. 저는 또 이 책에서 부당한 일을 정당한 일로 둔갑시키는 네오콘의 현란한 자기 정당화를 위한 궤변을 듣습니다. 저는 또 이 책을 통해 이제야말로 이라크를 겨냥했던 미국내 네오콘의 날카로운 비수가 마침내 한반도를 향해 번뜩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 책에서 네오콘 일파의 세계를 향한 더 없이 소름 돋치는 살기와 전쟁을 고취하는 북소리를 듣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이 책에서 어떤 살기를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얼마 전 중국 공산당의 대표 신문인<런민르바오> 인터넷판도 '미국 매파, 전화를 다시 부추기는 책 출간'(美國, '鷹派' 出書再扇戰火, 메이꾸어 잉파이 추슈짜이샨젼후아)라는 제하에 이 책의 내용을 분석한 장문의 서평을 게재했습니다.
이 책이 강조하는 바 '악의 축'에 대한 응징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아닙니다. 또 <런민르바오>의 서평은 결론적으로 올해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필시 부시의 재선에 부담을 줄 수 있는 필자들의 강경책이 그대로 실현될 공산은 그리 높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섬뜩한 살기가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문제에 바로 북한과 한반도 문제가 끼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무리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그리고 현장에 직접 다녀온 동료 기자의 전언을 통해 이라크의 현지 소식을 가슴 아프게 전해 들었어도 이라크의 일은 어디까지나 이역 만리에서 벌어졌던 '남의 일'이라는 게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다른 것 같습니다. 과거 한반도 상황이 '반테러 전쟁'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놓였었다면, 지금은 '직접 영향권'으로 한층 더 가까이 접근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내용이 엄중하므로, 다음 회에는 <악의종언>의 관련 대목을 좀더 꼼꼼히 살펴볼 것을 약속드리면서 오늘은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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