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1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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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5월말까지 밀린 숙제하듯이 글을 올리고 나서, 약 한달여를
놀았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좀 힘들고 해서 아예 몇달 푹 놀려고 했는데,
그 사이 제가 올린 글에 대해, 특히 마지막 몇회에 대해서는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 안에 많으면 백건 이상의 조회 수가 기록되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 글을 꾸준히 찾아 읽어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고 나름의 뿌듯한 보람도 느끼면서, 이대로 놀다가는 안되겠다, 다시 한번 시작해야겠다는 어떤 책임감, 중국어로 말하자면 '이쫑 스다이더 쯔어런깐(一種時代的責任感)' 같은 것을 느끼게 되더라 이겁니다.
마침 제가 씨줄날줄에 글을 처음 올린 것을 찾아보니 날짜가 6월27일이었습니다. 꼭 1년이 다 되어가더군요.
그래서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도 할겸, 저도 다시 공부하는 자세를 가다듬을겸 해서 다음주부터 보잘 것 없는 글을 다시 올리겠다고 작심했습니다.
저는 다음 주부터 글을 다시 올리면서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볼까 합니다. 틈틈히 써나가다 보면 또 세월이 훌쩍 흘러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2005년이 될 것이고. 저는 이 점에 착안해 시계 바늘을 아예 1백년 전으로 팍 돌려버리려고 합니다.
그럼 왜 하필 백년 전이냐. 다들 아시겠지만 1백년전, 즉 1905년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던 해입니다. 우리는 이 해를 '을사늑약 체결의 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일본에 외교권을 강탕당해 사실상 일본의 속국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해에 러시아 내부에서 1차 혁명이 나는 바람에 러시아가 대외 문제에 신경 쓸 게재가 못되었던 것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러시아가 일본과 제대로 붙었더라면 승부는 장담 못할 상황이었는데, 내부에서 혁명이 나는 바람에 러시아 제국이 전쟁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일본은 상당히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물론 러시아가 이겼을 경우, 식민지로 전락해가던 조선의 운명에 과연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냐 하는 물음에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붙지만 말입니다.
제가 1905년을 딱 집어 써보겠다고 나선 데에는 또 다른 계기도 있습니다. 1905년의 상황은 잘라 말해 동아시아 질서의 급속한 재편기요 이행기였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그 때 우리 역사를 잘했던 못했건 오늘날의 입장에서 충분한 재검토와 평가를 요구하고 있으며, 또 그럴만한 충분한 조건도 갖추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당시와 상당한 유비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어떤 부분은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가령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딱 백년 전의 상황을 정확히 재연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신흥 강국이었던 미국은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받는 대신,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이른바 '가스라-테프트' 밀약을 성립시켰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일본은 과거의 공조를 또 한번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백년 전의 공조는 러시아의 진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오늘날의 공조는 중국의 등장을 억제하려는 뜻이 분명하다는 점만 약간 다를 뿐입니다.
그 때 각국은 어떻게 움직였나. 국가의 운명이 잡아 먹히는 그 상황에서 조선인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했는가. 이런 것들을 오늘날의 상황과 비교해가면서 입체적으로 드러내볼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제가 올릴 글에는 많은 조선인과 외국인들이 등장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중에는 을사늑약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 목숨을 버린 우국지사도 있고, 일신의 안위에만 매달려 속국화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인물도 있을 것이며, 이를 배후 조종한 일본인, 일본인과 동아시아를 사이좋게 나눠먹은 미국인, 청일전쟁 패배후 꼭 10년만에 한반도에 대한 종주권을 완전히 포기해야했던 중국인들도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저는 '세계사에서 10년은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는 폴 월포위츠의 발언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저는 오는날 미국의 많은 의식 있는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폴 월포위츠를 상당히 위험한 생각을 가진 인물로 봅니나만, 적어도 이 발언만큼은 되새겨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 써나갈 글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피며,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데, 또는 이를 위하여 많은 논의와 궁리를 하는 데 작은 실마리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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