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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길2-수도 이전 헌재 판결에 대해

박성준 기자 ㅣ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10.25(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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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자꾸 샛길로 빠집니다.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수도 이전에 대한 헌재의 위헌 판결 이후 우리 사회가 보이는 반응을 보면서 떠오르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냥 한번 들어두시면 됩니다. 아주 새빨간 거짓뿌렁은 아닐 겁니다.

하나는 중국 고전 가운데 하나인 서경의 반경 이야기입니다. 우선 반경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잠깐 설명하고 지나가야 하겠습니다. 헌재가 행정 수도 이전에 대해 경국대전까지 들춰가며 별스러운 논리를 동원했지만, 그 분들이 법률에만 눈이 어두운 분이라 역사적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반경은 중국 고대 은(상)나라의 중흥조인데, 왜 중흥조냐, 수도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원래 상나라는 경 땅에 도읍을 정했더랬는데. 처음에는 수도가 문제가 안됐다가 한창 뒤에 수도가 물난리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땅은 황하 가에 있었고, 황하가 범람하는 바람에 노상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수도를 옮겨야 겠다는 논의가 일었는데, 이를 실현시킨 이가 바로 반경이고 그가 수도를 옮긴 곳이 바로 은 땅이어서 훗날 은나라가 됩니다, 이 사람의 수도 이전 논리와 주장이 집약된 문장이 바로 서경 상서의 반경 상중하 올시다.

그럼 당시 수도 이전을 누가 반대했느냐. 바로 상나라 창업에 공을 세운 이후 대대로 우대받으며 나라의 윗자리를 차지했던 소위 '기득권층'이었습니다. 당시 수도 이전에 따른 논란은, 신행정 수도 이전에 버금갈 정도로 치열한 양상을 띄었는데, 기득권층의 가장 주된 핵심 논리가 오늘날 헌재가 주장했던 '관습'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반경이 설득과 설득을 다해 결국 수도를 옮겼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수도를 두었더라면 상나라는 오늘날 역사책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명을 제촉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두가지 교훈. 첫째 실행에 옮길 것은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 둘째, 실행에 옮길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반경의 수도를 옮길 때의 이익과 수도를 옮기지 않을 때의 불이익을 통한 간곡한 설득은, 권력자가 국민적 콘센서스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보여주는 모범 케이스로 두고두고 지목됩니다. 사실 노무현 정권이 전 국민의 합의를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도 이전을 밀어붙인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대국적인 안목이 결여된 수도 이전 반대 논리를 정당화할 생각은 추호도 별로 없지만.

다음 경국대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헌재 재판관의 역사 지식은 정말 볼 품이 없어서, 겁이 날 정도입니다. 가령 정조 시대에 있었던 수원 화성 얘기를 좀 해볼까요. 서울은 조선 왕조의 개창 이래 6백년간 흔들리지 않은 수도였다고 하는데, 이는 정말 무식한 법률가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아예 알려 들지 않고 담쌓은 주장입니다. 오늘날 다산 정약용이 설계에 참여했고, 그 공사 과정을 인건비 항목까지 낱낱이 기록한 성역의궤로 더 유명한 조선 시대 수원성 공사도 따지고 보면 조선 후기 판 행정 수도 기능 분산과 관련 있습니다.

서울이 너무 비대해진데다가, 기득권 세력이 서울을 차고 앉아 허구헌날 당파 싸움(오죽 하면 탕평책이 정조의 최대 치적으로 논의되겠습니까)만 하고, 국가 기능을 정지시킨 데 신물이 나서 수도 기능을 좀 분산하고, 실사구시로 나라 분위기를 좀 혁신해 새 기운을 불어넣고자 임금이 직권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총감독이 되어 국가적으로 추진했던 대역사가 바로 수원 화성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상의 교훈으로, 빛나는 역사 유산으로 물려받아야 할 목록으로 당파를 떠나 되뇌는 실학 사상의 정수가 바로 정조 시대 '수원성 프로젝트'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조의 원대한 통치 계획은 거기에서 올스톱됐지요. 제가 역사학자가 아니라 그 스톱 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단 중요한 사실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정조의 서거 이후 통치권을 불려 받은 임금은 순조였습니다. 순조의 즉위 이후 행정 수도 기능 분산이니 뭐니 하는 논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럼 당시 정국의 이니셔티브는 누가 잡고 있었나. 새로운 국가 운영 원리를 제시한 실학파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실사구시를 중시하고, 기득권에 비판적이며, 개혁을 꿈꾸었던 실학파가 권력을 잡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왕위를 계승한 순조가 국가 운영권을 쥐었던 것도 아닙니다. 영정조 시대 '중흥'으로 일컬어지던 조선의 국운은 순조 때 갑자기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그 원인의 첫째가 다름 아닌 '세도 정치', 즉 기득권층에 의한 나눠먹기 식 정치였습니다.
세도 정치의 패해가 조선의 멸망에까지 미쳤다는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국사를 배웠던 분은 다들알고 계실 겁니다. 풍산 조씨니, 안동 김씨니, 안동 권씨니 하는 것 말입니다.

매천야록 아시죠. 매천 황현의 역사 기록말입니다. 황현이 이 기록에서 가장 통탄해 했던 것이 바로 세도 정치의 폐해였습니다. 이들이 나라가 어찌되는지는 돌아보지 않고, 온갖 구실과 궤변을 일삼으며 역사의 수레 바뀌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는 사실, 그래서 국가 설계의 방향을 대국적으로 보지 못했던 것, 그것이 바로 부국강병을 위해 조선에게 주었던 시간을 물 쓰듯이 허비하고 급기야 멸망에 이르게 한 주요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반경과 정조 이후의 역사를 대비해 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중흥을 가져왔고, 다른 하나는 멸망을 불렀습니다. 시간은 언제까지나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시 서울의 기능 분산 필요성을 재확인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래도 몇마디 하지 않으면 울화병이 생길 것 같아 몇자 적습니다.
저는 서울이 고향이고 5대에 걸쳐 서울에 살다가 가정을 이뤄 분가하면서 서울을 떠났습니다. 나름대로 온 집안이 서울 토박이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왕년에 제가 자란 고향을 보면서 날이 갈수록, 이렇게 가서는 결딴 나겠다 느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특히 수도 이전 논의가 훨씬 전부터 북한산에 올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대개 서울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대 사회의 생산력입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배산임수도 따지고 보면 생산력과 관계 있습니다. 생산력이 미약하던 시절, 가장 빠른 교통로는 강이었습니다. 도시 계획의 전제 조건으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이,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는(여기서는 농사도 포함됩니다) 풍부한 수량이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중요했습니다.

서울은 6백년 전의 생산력 수준과 사고 방식에 의해 지정되고 설계된 도시입니다. 그 땅기운이 6백년 이상 지속될 정도로 한양 수도 계획의 안목과 선택은 탁월했지만, 생산력 차이는 조선 개국초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개국 당시는 서울이라고 해봐야 사대문 안이었습니다. 노량진만 해도 서울의 끝자락에 해당됐고, 한강을 넘으면 교에 속했습니다. 고려대 최영준 교수가 저술한 국토와민족생활사에 따르면, 왜란과 호란을 겪고 나서 수도 방위가 중시되어 동으로 광주, 서로 강화, 남으로 수원, 북으로 개성을 '유수부'로 삼았다 합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고 난 뒤 한성부의 인구는 25만이었다 합니다. 지금은 얼마입니까. 북쪽으로는 북한산에 막혀 강남으로만 확장됐는데 1천만입니다. 25만 대 1천만.

쉽게 말해 서울은 현재의 생산력, 교역 규모 세계13위의 생산력을 그것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절박한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경기도 포함) 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밀집하고, 전 생산력의 1/3이 집중한 상황에 그토록 태평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정도전이 환생해 북한산에 올라 오늘의 서울을 본다면? '당장 수도권 집중화를 막을 신도시 설계에 나설 것입니다.

행정 수도 문제의 안보 문제는 워낙 민감한 사항이어서 그런지 행정 수도 이전을 추진했던 현 정권도 얘기하길 꺼리는데, 저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군사 문제에 관심 있는 분은 다들 아시겠지만, 앞으로 전쟁은 폭격에서 시작해서 폭격으로 끝납니다. 폭격의 요체는 당장 적을 살상하는 것말고 적군의 종심을 파괴해 전쟁 수행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인데, 이거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럴 일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만에 하나 북한이 공격해온다? 따로 조준할 필요 없이 눈감고도 결정타를 입힐 수 있습니다. 그냥 수도권을 향해 갈기기만 하면, 웬만한 것은 모두 전략적 목표물에 명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시설이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꼭 북한이 아니고, 중국 또는 일본으로부터 공격받을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서울은 이미 외부 위협의 인질이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 모 의원이 국가 기밀 중 하나를 정부를 조지려는 뜻에서 '누설'하신 바 있는데, 그 핵심 내용은 서울이 북한 장사정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안보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서시는 분들이, 정작 최대 안보상의 취약점이 될 수도권 집중에 대해서는 어째서들 한말씀도 없으신지, 저는 다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눈 앞이 캄캄해질 따름입니다.

우리는 명절 때마다 수도권이 엄청난 교통 대란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수도권 인구가 어디로 얼만큼 빨리 피할 것인가. 우리가 환경 파괴까지 애써 외면하며 피땀 흘려 닦아놓은 수도권의 거미줄 교통망은 막상 전쟁 때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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