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면 돈이 쏟아진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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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대 영덕 풍력단지 르포/연간 100억원어치 발전…관광 명소로 떠오를 듯

 
1997년 경북 영덕 일대를 휩쓸고 간 대형 산불로 인해 이 지역을 지나는 사람들은 ‘참담해서 차마 산 쪽을 바라볼 수가 없다’고 한탄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옛이야기이다. 요즘 포항~영덕~울진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영덕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을 지나자마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초현실적이면서 목가적인 풍경이 눈 앞에 불쑥 나타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해안가 야산을 따라 그림처럼 줄지어 서 있는 대형 풍력 발전기가 이같은 풍경을 빚어낸 주인공들이다.

  이 발전기들을 제대로 조망하고 싶으면 해안가에 접해 있는 해맞이 공원(영덕읍 창포리)에 올라야 한다. 하나 둘 셋 넷…. 공원 정상에 서서 눈 앞에 보이는 발전기 숫자를 세다 보면 곧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곳에 서 있는 풍력 발전기는 총 24기. 현재까지 건설된 풍력단지 중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발전기 한 기 한 기의 규모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부지 내에 있는 하늘공원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멀리서 볼 때보다 가까이 다가섰을 때 풍력 발전기의 덩지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덕의 발전기는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덩지가 거대하다. 하늘공원 발전기의 기둥(타워) 높이가 30m인 데 비해 영덕 발전기는 80m이다.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날개도 영덕 것은 날개 한 개당 길이가 무려 41m에 달한다(하늘공원 것은 8.8m).

  오는 4월4일 준공식을 앞두고 있는 이 ‘영덕 풍력발전 단지’는 국내 최대 풍력단지이자 최초의 본격 상업 단지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제주·울릉·포항 등 이제까지 국내에서 볼 수 있었던 풍력 발전기는 대부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하는 지역 에너지 사업이나 대체에너지 시범 보급 사업을 통해 설치된 것이었다. 그러나 영덕 풍력단지는 유니슨이라는 업체가 민간 투자로 세운 단지라는 점에서 이들과 구별된다. 영덕단지 건설·운영을 위해 (주)영덕풍력발전(사장 김길원)이라는 자회사를 세운 유니슨은 이밖에 강원도 대관령과 제주에도 자회사를 두고 대규모 풍력 단지를 건설하는 중이다.

 영덕에 세워진 발전기는 1.65MW(1,650kW)급으로 그간 국내에 세워진 풍력 발전기 중에서는 가장 대용량급이다. 영덕풍력발전은 이들 대용량급 발전기 24기를 통해 연간 9만6천6백80MWh에 이르는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영덕군 내 1만9천3백 가구의 연중 소비량(가구당 월 400kWh 소비 기준)과 맞먹는 양으로, 금액으로는 100억원어치에 해당한다.

  이렇게 거대한 풍력단지를 건설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김길원 사장은 전한다. 일단 부지 선정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바람은 좋았다. 창포리 주민의 원성을 사곤 하던 세찬 바람은 풍력 발전에 오히려 축복이었다. 2001년 풍력 자원 조사 및 사업 타당성 조사를 담당한 독일 라메이어 인터내셔널은 ‘창포리 일대 평균 풍속이 초속 7m로, 대단위 풍력발전단지 개발이 가능한 선을 훨씬 넘어섰다’는 결론을 내렸다(독일의 풍력 발전 기준은 평균 풍속 5.5m/s이다).

  그러나 사업 허가를 받고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단 대규모 발전단지를 세우기에는 부지 자체의 조건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영덕군이 한때 골프장 건설을 검토했을 만큼 해맞이공원 일대 부지는 굴곡과 경사가 심했다. 영덕 단지에 풍력 발전기를 납품한 덴마크 NEG Micon사 기술진은, 이렇게 까다로운 땅에 발전 단지를 세우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설계가 완료된 다음 발전기를 설치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일단 포항항에 도착한 발전기를 영덕까지 운반하는 것 자체가 골칫거리였다. “항구에 도착한 발전기를 직접 보는 순간 ‘이거, 큰일 났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라고 김길원 사장은 회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소개한 대로 풍력 발전기는 날개 한 개 길이가 41m에 달한다. 무게도 7.5t이다.

  따라서 대형 트레일러를 동원해도 날개 하나를 제대로 싣기가 어려웠다. 가장 긴 보조 수송대를 연결해도 트레일러의 총길이는 22m였다. 결국 풍력 발전기는 절반 정도만 수송대에 실리고 나머지는 수송대 바깥으로 삐져 나온 채 영덕까지 운반되었다. 이렇게 위험한 물건을 옮기다 보니 야간 운반은 기본이었다. 속도를 낸다는 것 또한 상상하기 어려웠다. 평소 1시간이면 충분할 포항~영덕 구간을 트레일러는 7시간이 넘게 기어 가야 했다.

  이렇게 운반해 온 발전기를 부지 위에 세우고 유지·보수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발전기 기둥은 강철 재질로 만들어져 매우 견고하다. 그런데 이 기둥의 내부는 텅 비어 있다. 기술자들이 오르내리며 발전기를 점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어떤 발전기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기도 한데, 영덕 발전기에는 이것이 없다. 대신 80m 높이의 사다리가 있다.

  말이 80m지, 이쯤이면 20~25층 아파트 높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신 하네스(안전 벨트)를 착용한 채 거의 매일 이 높이를 오르내려야 하는 현장 기술자 손민규씨는 “처음에는 어지럽고 숨이 차 한번 오르는 데 20분도 더 걸렸지만 지금은 15분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바람이 부는 날이다. 지상에서 바람이 좀 세다고 느껴지는 날 기둥에 올라간 기술자들은 초주검이 된다고 한다. 바람에 따라 기둥이 50cm 이상 좌우로 흔들리면서 배멀미할 때처럼 어지럼증과 울렁증이 밀려 온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술자들이 체득한 특급 노하우 하나. 바람이 심한 날, 이들의 귀밑 부위를 자세히 보면 뭔가가 부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명 ‘키미테’로 통하는 패치형 멀미약이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이를 붙인 뒤부터는 멀미 증세가 한결 덜해졌다고 이들은 말했다.

  동해안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영덕 풍력단지에 대해 바깥에서는 희망과 염려가 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단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 보급하자고 주장해 온 쪽은 영덕단지의 탄생에 고무되었다. 이익 창출이 최대 관심사인 민간 기업이 풍력 발전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그 경제성이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길원 사장은 “풍력의 경제성에 대해 충분히 자신한다”라고 잘라말했다. 풍력의 경우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영덕풍력발전이 단지 건설을 위해 쏟아부은 투자비는 6백70억여원. 단순히 계산하자면 발전기 한 기당 28억원 가량이 소요된 셈이다. 

  그러나 풍력의 발전 비용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세계풍력협회에 따르면, 풍력 발전 비용은 세계 풍력설비 용량이 2배로 증가할 때마다 12~18%씩 감소했다. 정부의 예산 지원 및 정책적 뒷받침도 상당하다. 산업자원부 고시에 따르면, 수력 발전으로 얻은 전기는 1KWh당 단가가 60원 안팎이지만 풍력 발전으로 얻은 전기 단가는 1백7원66전으로 2배 가까이 비싸다. 이같은 지원책은 2011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공급 비중을 5%로 높인다는 정부 목표에 따른 것이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풍력단지 그 자체가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실제로 2002년 가동을 시작한 강원도 대관령 풍력단지의 경우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12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에 영덕군과 영덕풍력발전은 창포리 일대에 펜션촌을 조성하고, 풍력단지 내에 홍보관 및 전망대를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걱정거리는 남아 있다. 우선은 풍력 자체가 불안정한 에너지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기자가 영덕단지를 방문한 3월22~23일은 유난히 바람이 약했다. 바람이 초속 2~3m 수준으로 불어 발전기들은 저마다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 우리는 라면 먹고 살아야 한다”라고 한 직원은 농을 던졌다.

  그럴 만도 했다. 중앙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발전량은 발전기 별로 50~200kWh에 불과했다(이들 발전기가 제대로 완전 가동될 때의 발전량은 1천6백50kWh에 달한다). 어떤 발전기는 아예 발전량 제로(0)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들로부터 전기를 송전받는 한전의 실무 관계자는 “바람이 센 날은 영덕군민이 모두 쓰고도 남을 만큼 전기가 공급된다. 그렇지만 그런 날은 1주일 중 1~2일이다”라고 말했다.

  풍력 발전기의 부실한 유지·관리 시스템 또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에너지대안센터 이상훈 사무국장은 “몇년 가동되다 말고 멈춰서 버린 발전기들로 인해 풍력 발전에 대한 일반의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대부분 지자체의 전시 행정으로 말미암은 일이다. 임기 중 성과를 내려고 조바심치는 단체장들에 의해 계획이 추진되다 보니 지방의 풍력 사업은 입지나 사업 타당성 조사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더욱이 풍력단지가 너무 소규모여서 발전기가 고장 나도 기술진이 방문하려 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이에 대해 김길원 사장은 “영덕단지는 대규모 단지인 데다 앞으로 5년간 AS 계약을 맺어 본사 인력이 상주하기로 한 만큼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른 기업들의 대응도 활발하다. 특히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서 기업들 사이에는 ‘신·재생 에너지=돈 되는 사업’이라는 인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한 예로 대우건설과 효성은 각각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일대와 남제주군 일대에 대형 풍력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사업 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이렇게 대기업들이 진출하는 데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한켠에서는 대기업의 마구잡이식 사업 확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지만 쉘·지멘스·제너럴 일렉트릭(GE)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 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진출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대기업의 진출 그 자체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시류에 편승해 남발하는 사업 계획이라고 에너지기술연구원 경남호 박사는 지적했다. 최근 강원도·경북·전남북 일대에 풍력 발전기를 세우겠다는 회사가 속출하고 있지만, 이들 지역은 제주도에 비해 풍력 발전의 경제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민간 법인인 (주)삼무(대표이사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요즘 떠들썩하게 추진하는 국내 최초의 해상 풍력발전소 설립 계획에 대해서도 일부 전문가는 부정적이다. 유럽에서는 최근 환경 훼손 최소화 등을 이유로 풍력 단지를 육지가 아닌 해상에 건설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육지보다 초기 투자비가 훨씬 많이 드는 해상 단지의 특성상 이에 대한 차별적인 지원책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무모한 행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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