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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아르가 무엇인지 보여주다

[영화평] 달콤한 인생

김봉석 (영화평론가) ㅣ 승인 2005.04.01(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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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 김지운
출연 : 이병헌·김영철·황정민·김뢰하

김지운의 영화는 심플하다. <달콤한 인생>은 순간의 선택으로 지옥에 떨어진 남자의 복수극이다. 한 문장의 시놉시스만으로도 당장 눈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직접 극장에서 보면, 각자 상상했던 장면들이 더욱 유려하게, 스타일리시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등 김지운 감독의 영화가 모두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던 이유는, 보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인물과 이야기는 단순하면서 강렬하고, 웃음이건 슬픔이건 순간의 느낌을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야기보다는 스타일에 더욱 힘을 기울인 <장화, 홍련>의 경우에도, 많은 관객이 만족스러워했다. 충분히 무서웠고, 슬펐다. 가끔은 웃기도 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배우들의 열연 인상적

<달콤한 인생>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누아르’라고 선언했다. 빛과 어둠으로, 이 암울한 세계에서 방황하는 남자의 ‘실패’를 그린 영화. 이제는 하나의 스타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만, 누아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어떤 감이 온다. <달콤한 인생>은 ‘누아르’의 느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조직의 2인자인 선우의 인생은 완벽하고, 아직까지 그는 감정에 휘둘려본 적이 없다. 그런 선우가, 순간의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걸 실수라고 할 수도 없다. 배신도 아니다. 그저 불륜을 저지른 보스의 애인과 남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뿐이다.

선우의 ‘달콤한 인생’은 꿈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도 무너졌다. 이제 그가 아는 것은 단 하나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최소한 추해지지는 말자는 것. 아니 이왕 비굴한 인생이니 최소한의 폼이라도 잡아보자는 것. 그게 선우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지운은 진부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선우는,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그리고는 그냥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말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해설이나 증명 없이 스타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있다. 애초에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선우와 보스의 선택을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두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선우는 말한다.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라고 보스는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핑계일 뿐이다. 이성이나 논리로는 선택할 수 없었던 그 결정을, 그들은 그렇게 변호한다. 그래서 선우는, 보스는 묻는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고. <달콤한 인생>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일종의 판타지다. 찾아가는 과정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예술적으로 찍고, 상업적으로 편집한다’는 김지운의 말처럼, <달콤한 인생>은 과잉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스타일에 집착을 보인다. 인상적인 액션은 두 번이다. 불 붙은 각목을 휘두르며 좀비처럼 달려드는 조폭들과 싸우고, <쉬리> 이후 한국 영화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총격전까지 대규모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런 액션은 일종의 볼거리일 뿐이다. 정말로 <달콤한 인생>에서 주목할 것은 아주 작은 순간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찰랑이는 머리칼과 하얀 목덜미, 혹은 영화 후반부 석고처럼 굳은 듯한 이병헌의 표정 같은 조그만 것들이다. 그런 작고 사소한 순간들의 인상이, <달콤한 인생>의 느낌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배우들의 능력을 끌어내는 재능이 돋보였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병헌은 물론 적재적소에 배치된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달콤한 인생>은 의미가 아니라, 느낌에 빠져들어야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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