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요트가 없다면 부자 축에도 못 끼지
  • 정문호(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0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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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억만장자들, 유람선급 요트 구입 열풍

 
45만 달러짜리 초호화 벤츠 승용차에 20만 달러짜리 로렉스 시계, 그리고 수천만 달러짜리 호화 별장. 이 정도 재산을 소유한다면 미국에서 갑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정작 ‘진짜’ 갑부 소리를 들으려면 한 가지 더 필요하다. 값비싼 미술품이나 호화 전세기? 그도 아니면 억대 보석류? 언뜻 정답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보통 부자’와 차별화 위해 매입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억만장자 폴 앨런에게서 찾아보자. 앨런은 빌 게이츠와 함께 1983년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뒤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호사스런 인생을 즐기고 있는 갑부 중의 갑부다. 현재 최소 2백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보유한 그는 미국의 유명한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최고 부자 명단 3위에 올라 있다.

그는 지난해 민간 차원의 유인 우주선 스페이스십원(Space Ship One) 계획에 2천만 달러를 쾌척했다. 또 196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지미 헨드릭스를 흠모해, 미국 시애틀에 있는 자기 고향에 2억4천만 달러짜리 기념관을 세워주었으며, 보잉 757기 2대를 포함해 값비싼 비행기를 수집하는 색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호사스런 취미 생활을 즐기는 앨런이 진짜 갑부 소리를 듣는 까닭은 다른 데 있다. 그가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초호화 요트인 옥토푸스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수두룩한 미국에서 제아무리 부자라도 앨런처럼 호화 요트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부자 대접을 받지 못한다.

 
 
호사스런 사치품이란 사치품은 다 가진 갑부들이 하필 호화 요트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이 꼽는 이유는 다소 황당하다. 진짜 알부자들은 ‘보통 부자들’과 구별되고 싶은 마음에서 호화 요트를 구입한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백만장자가 2백만명을 넘는다. 단순히 부자 차원을 넘어선 ‘슈퍼 부자’들은 그렇지 않은 보통 부자들에 대해 일종의 배타적 차별성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부자에도 등급이 있고, 자기들이 최상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현시적인 소비를 한다.

세계적인 호화 요트 제조 업체인 페라티그룹의 노베르토 페라티 회장은 최근 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회견에서 ‘요트가 주는 독특한 즐거움은 사생활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호화 요트가 진짜 부자와 졸부를 구별하는 잣대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미국의 진짜 알부자들은 너나없이 호화 요트를 사느라 경쟁이 치열하며, 그 덕에 미국 요트 업계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모처럼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여기서 요트란 유람선급이다. 요트 전문 잡지인 <요트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현재 길이 60m 이상의 초호화 대형 요트가 35척이나 건조 중이며, 그 가운데는 90m짜리 요트도 5척이나 포함되어 있다. 또한 척당 수백만 달러씩 하는 초보자용 24~30m짜리 요트의 올해 주문량도 지난해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2백57척이다.

농구장·수영장·잠수정 구비
요즘 슈퍼 부자들이 좋아하는 요트는 값도 값이지만, 갈수록 대형화하고 있다. 실제로 1997년 이래 호화 요트의 가격은 부르는 것이 값이어서, 싼 축에 든다는 요트도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고, 비싼 것은 2억 달러까지 나간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자들이 찾는 요트 길이는 기껏해야 24~33m짜리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최소 45m는 되어야 ‘요트’ 소리를 듣는다. 폴 앨런이 소유한 옥토푸스는 길이가 120m를 넘는데, 실제 크기와 똑같은 농구장과 음악 스튜디오, 개인용 잠수정까지 갖추고 있다.

 
호화 요트는 기본적으로 널찍한 수영장과 5인용 이상의 침대 칸이 있어야 한다. 대형 벽걸이 TV, 쌍발 제트 스키는 기본이다. 옥토푸스처럼 규모가 큰 것은 실내 체육관과 헬기 착륙장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이 모든 품목 외에 인터넷 접속과 화상 전화 서비스가 가능한 5만 달러짜리 위성 접시 안테나가 설치된 것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호화 요트를 가진 사람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체인 오라클 사의 래리 엘리슨 회장이다. 그가 보유한 ‘떠오르는 해(Rising Sun)’는 길이가 무려 138m에 달해 옥토푸스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하다.

“더 크고 호사스런 요트로 바꾸겠다”
그러나 엘리슨의 기록은 한 사우디 갑부에 의해 곧 깨질 것 같다. 이 갑부가 주문한 요트 길이는 150m에 달하는데,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건조되고 있다.
사실 그 많은 사치품 가운데 요트처럼 불필요한 사치품도 없다. 1년 중 기껏해야 한두 달 사용하는 것 치고는 유지비나 수리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이 든다. 요트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아무리 값비싼 초호화 요트라도 구입한 지 3~4년이 흐르면 값이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승무원 봉급에 기름값과 입항료, 각종 유지비가 통상 요트 가격의 10% 선이다. 또 페인트 덧칠을 새로 하는 데에만 평균 10만 달러가 든다.

그런데도 진짜 갑부들은 유지비를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자기 요트보다 더 크고 호사스런 요트를 볼 때 강한 질투심과 경쟁심을 느낄 뿐이다. 때문에 요트에 맛들인 갑부 10명 중 7명은 몇년 안에 지금 가진 요트를 팔고 더 크고 더 호사스런 요트를 찾는다고 한다. 진짜 갑부가 아닌 일반 부자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 미국에서는 흔하게 일어난다. 

순풍에 돛 단 ‘명품 요트’

롤스로이스가 세계적인 명차의 대명사라면 파머 존슨(Palmer Johnson)은 호화 요트의 ‘얼굴’이다. 몇년 전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낼 정도로 사세가 위축되었던 이 회사가 요즘 새 주인을 만나 힘차게 항해할 꿈에 부풀어 있다.
1987년 창업한 뒤 불경기를 모르던 파머 존슨에 일대 위기가 찾아든 것은 1990년대 초 미국 의회가 초호화 사치품에 대해 소비세 10%를 부과하기로 한 법안을 통과시킨 뒤부터였다. 요트 고객들이 엄청난 세금 부담 때문에 요트 구입을 기피하면서, 불과 수년 만에 요트 제조사 100개 이상이 문을 닫았다. 호화 요트의 대명사인 파머 존슨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머 존슨은 2000년 인터넷 일자리 검색 업체인 몬스터의 창업주에게 매각되었다.

그러나 몬스터가 인수한 뒤에도 법정 관리를 신청하는 등 어려움을 겪던 이 회사는 남미의 영국령 가이아나 출신 사업가인 티무르 모하메드(47)가 지난해 초 재인수한 직후 활기에 차 있다. 모하메드는 인수 후 전문 경영인 마이크 케슬리를 영입해 찬란했던 파머 존슨의 옛 영화를 되살린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파머 존슨은 2차 세계대전 때 군수업체로 탈바꿈해 군함 2백58척을 건조하기도 했다.
현재 파머 존슨이 제작하는 소형 호화 요트를 구입하려면, 1천2백만~2천만 달러를 주어야 한다. 파머 존슨은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요트 강국인 미국에서 유일하게 유럽풍 디자인으로 억만장자 고객을 유혹한다. 물론 아무 때나 구입할 수 없고, 특별 주문하므로 값은 엄청나게 비싸다. 하지만 미국 갑부들 사이에 ‘요트 바람’이 계속 불어주는 한 파머 존슨의 앞날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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