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분출하는 신기술 요람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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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소기업2/질 우선’ 첨단 자동차 부품 개발…재무·고용 안정성도 뛰어나

공장 생산 라인에 생뚱맞게 웬 연못? 지난 4월6일 충남 천안시 제2 산업단지에 위치한 주식회사 인팩의 천안공장에 들어서자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연못이었다. 경강선을 가공해 각종 컨트롤 케이블을 생산하는 현장과  연못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물고기가 살 수 있을 만큼 작업장이 깨끗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팩은 자동차의 ‘핏줄’을 만드는 부품 업체다. 가속과 주차 같은 운전자의 조작 명령을 해당 기관에 전달해 작동하게 하는 열다섯 종 3천 가지 케이블을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용 케이블 시장 점유율이 40%를 넘는다. 30년간 케이블이라는 한 우물을 팠던 인팩은 2001년과 2004년 각각 (주)이톤과 GPS(주)로부터 밸브와 스위치, 자동차용 안테나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사업 다각화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이블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지만, 갈수록 밸브와 안테나 사업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회사 이름을 ‘삼영케불’에서 ‘인팩‘으로 바꾼 것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무한(infinite)과 정밀(accuracy)을 합성한 인팩(INFAC)이란 사명에는 지속적인 품질 혁신으로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연못이 상징하듯이 인팩은 케이블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흄(중금속을 가열할 때 발생하는 증기가 산소와 결합해 생성된 유독 물질) 등을 없애기 위해 환풍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작업장 환경을  개선해 왔지만, 이것은 이 회사의 품질 혁신 활동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인팩은 지난 10년 동안 강도 높은 품질 혁신 활동을 전사적으로 벌여 왔다. 혁신 활동에 불을 당긴 주인공은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인 최오길 회장이다. 최회장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범용 제품으로는 승산이 없다. 어떠한 환경 변화에도 기업을 생존하게 하는 것은 최고의 품질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사업을 관장하는 최창하 부사장은 “1994년 경영진이 주도해 혁신 운동을 시작했지만, 2000년 들어 시키지 않아도 공장(안산·천안·인천) 별로 직원들이 혁신 활동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정이나 물류 개선 활동을 통해 ‘작은 성공 사례’가 쌓이면서 인팩 직원들 사이에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축적되고 혁신 마인드가 체화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천안공장이 6개월간 한국생산성본부와 ‘리쯔(LIZ)-1520’이라는 품질혁신운동을 벌여 총 7억원의 원가 절감 효과를 거둔 것이 좋은 예다. 수작업 등 공정 과정과 과다한 재공(물류 지체 시간)·재고로 인한 낭비 요인을 개선하고, 자동화를 통해 작업자를 7명 줄이고 작업 시간을 크게 단축한 덕분이다. 인팩의 모태 공장인 안산공장이 지난해 ‘싱글(한 자릿수) PPM’에 도달한 것도 지속적인 품질 혁신의 결과였다. 생산 제품 100만개 가운데 불량품이 9개 이하로 떨어진 것인데, 이 공장의 최종 목표는 2007년께 ‘고객 품질 제로 PPM’(불량률 0)을 도달하는 것이다.

인팩이 전사적으로 혁신 활동을 펼치는 까닭은 생산 제품이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자동차 부품이기도 하지만, 납품 업체가 최고 품질·최저 가격·적기 납품이라는 하나같이 어려운 세 가지 요건, ‘QCD'를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팩에게 끊임없는 혁신은 회사의 생존 조건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에도 부품 공급

인팩이 생산하는 각종 케이블과 밸브, 안테나의 품질이 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은 현대·기아·GM대우 등 국내 완성차 업체에 제품을 납품하는 것은 물론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혼다·이쓰쯔, 마쓰다·미쓰비시에 공급하고 있는 것에도 잘 나타난다. 또 인팩은 어빈 메리토·델파이·TRW 같은 글로벌 부품 업체에도 제품을 팔고 있다.

 최회장은 지난해 말과 올 3월 푸조와 폴크스바겐 관계자가 인팩을 방문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에게 공급하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인팩의 기술력을 인정한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인 야자키 사에 기술을 귀동냥하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변화인 것이 틀림없다.

 
미래 자동차 기술 개발에 인팩 같은 작은 회사가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 회사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2003년부터 현대모비스가 주관하는 ‘지능형 e-카 시스템온칩(SoC)’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다. TPMS 개발, 즉 타이어 공기압이 빠졌을 때 센서가 인지해 즉각 운전자에 알려주는 모니터링 체계를 만드는 것이 인팩의 임무다. 지난해 고압제어 공기현가장치(ECS) 개발 및 부품 국산화 사업에도 참여해 솔레노이드 밸브 블록을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부품연구원과 연세대를 참여시켜 인팩이 주관하는 복합형 안테나 개발 사업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AM·FM 수신은 물론 GPS와 DMB도 가능한 복합형 안테나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인팩 신기술 개발의 전초기지는 1992년 설립한 천안공장 소재 기술연구소. 인팩 경영진이 무슨 일이 있어도 매년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며 키워온 이 연구소는 케이블·밸브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실험이 기본 임무이지만,  갈수록 선행 연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자동차의 전자화·전장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연구소 권태성 소장은 “더 안전하고 편리한 차를 원하는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전자화·전장화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위협 요인인 이런 추세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오길 회장은 아예 케이블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을 드러냈다. 그가 지난해 11월 일본 부품 업체인 요코오 사와 합작해 인팩요코오를 출범시킨 것은 이런 변화에 대비한 포석이다. 우선 정보 통신 기기 사업을 확대· 강화해 돌파하려는 것이다.  

인팩은 드라마틱하게 성장해온 기업도, 인지도가 높은 기업도 아니지만, 재무 건전성과 고용 안정성이 뛰어난 기업이다. 지난해 4월 한국신용평가정보와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각각 ‘A’ ‘A+’ 신용등급을 받았으며, 종업원 평균 근속 기간이 20년 가까운 것이 이를 증명한다. 중소기업 치고는 글로벌화에 일찍 눈뜬 것도 흥미롭다. 1998년 인도 첸나이에 현대자동차와 동반 진출했지만, 중국 진출은 인팩의 자체 결정이었다. 그것도 수교하기 전이어서 대기업도 별로 진출하지 않았던 1991년과 1994년 선양과 베이징에 현지법인설립을 감행한 것이다.   

한국 자동차 부품 업계 판도를 보아도 인팩 같은 독자 기업의 존재는 값지다. 부품 업계가 현대모비스·현대파워텍·위아·본텍 같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이거나 글로벌 부품 업체로 양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라공조·성우·풍성·만도 같은 국내 부품 업체들은 미국 비스티온이나 델파이, 독일 지멘스나 보쉬, 일본 덴소 같은 다국적 부품 업체에 줄줄이 넘어갔다. 이런 절대 강자들의 각축전 속에서 인팩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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