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 논쟁’ 자욱한 프랑스
  • 류재화 통신원 ()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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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진영 등 “흡연=범죄 규정은 부당”…신체 유해성 놓고도 옥신각신

 

  프랑스 청소년들 사이에 카나비스(대마초)는 ‘머릿 속 지우개’로 통한다. 머리 속을 짓누르는 불안·걱정 따위를 지워주는 심리적 위안제라는 것이다. 시험 기간이 되면 대마초 흡연은 더 늘어난다. 주로 불량 청소년들이 대마초를 피우리라고운다는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한 공부벌레 여학생은 공부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시험 기간에만 ‘특별히’ 이 법적 금기물을 애용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문호 랭보와 보들레르를 들먹인다. 랭보는 ‘하시시(마리화나)’를 피운 뒤 ‘검은 달, 하얀 달’을 보았고, 색을 ‘듣고’ 소리를 ‘보는’ 천재 시인 랭보의 공감각적 시상(詩想)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해준 것이 마리화나였다는 것이다.

  카나비스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그 냄새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카나비스는 프랑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이트 클럽 화장실은 새벽 2시께면 카나비스 꽁초로 가득 찬다. 저녁 산책 삼아 공원에만 나가보아도 벤치에 홀로 앉아 묘한 냄새를 피워대는 고독한 몽상가를 만날 수 있다. 대마초 애용자들에게 대마초는 인체에 해로운 환각제가 아니라, 술·담배와 별다를 바 없는 행복한 디오니소스 주연의 기본 성찬일 뿐이다.

  프랑스는 대마초 흡연을 허용하는 국가가 아니다. 유럽 국가 중 영국에 이어 대마초 흡연율이 두 번째로 높으면서도 법률적 제재는 가장 엄격하다. 1970년 제정된 대마 관련법에 의하면, ‘대마초 흡연’은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며 3천 유로 상당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법과 현실간의 거리는 멀어도 한참 멀다. 프랑스의 한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인  중 적어도 한 번이라도 카나비스를 피워본 사람은 4백만명에 이른다. 한 달에 10 개비 이상 피우는 상습 흡연자는 85만명 정도다. 이에 비해 경찰에 적발당해 법적 처벌을 받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2003년 한해 12만5천 명이 적발당했다. 경찰은 적당히 봐주거나 심지어 거래자도 체포보다는 감시·추적하는 선에서 그친다.
  적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미 1991년부터 제기되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단순 흡연자들은 적발하지 말고, 치료 기관에 보내는 조처를 취해줄 것을 검사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1970년 법률안을 개정하고 대마초 흡연을 ‘범죄’의 굴레에서 해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녹색당 및 진보 진영에서 주로 나왔다. 그러나 큰 변화 없이 10여 년이 흐르는 사이, 카나비스 흡연율은 두 배 이상 늘었다. 더욱이 최근 그 연령층이 13~14세 중학생들에게까지 내려가자 프랑스 보건부·청소년부·내무부 등 관련 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스페인·이탈리아 등은 이미 규제법 폐지

유럽의 경우 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에 이어 2001년 포르투갈에서도 카나비스 흡연을 더 이상 범죄 행위로 규정하지 않는 법률을 제정했다. 프랑스도 이에 자극을 받아 최근 논쟁이 더 활기를 띠고 있다. 15~34세 성인을 대상으로 한 유럽연합 약물 및 마약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법적 규제를 가하고 있는 영국(12.4%)과 프랑스(11.9%)가 오히려 대마초 소비율이 가장 높다. 물론 비범죄화(depenalization)가 곧바로 흡연율 감소로 이어진다는 결론은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측은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를 들기에 바쁘다. 네덜란드는 이미 1976년부터 대마초를 다른 ‘강성 마약’과 구분했으며, 심지어 커피숍에서까지 카나비스를 판매하기도 한다(‘5g 이하’로 제한). 포르투갈 역시 최근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약 사용자들을 범죄자가 아닌 치료 대상자로 보는 식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르몽드,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 언론은 ‘위선을 벗고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며 대마초 비범죄화 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물론 대마초를 합법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미 카나비스가 대중화된 현실을 인정하고, 카나비스 흡연을 비범죄화함으로써 그동안 양산된 온갖 다른 범죄들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마초를 구하기 위해 어린 중·고등 학생들이 직·간접적으로 마약 밀매단과 연결되는 일이 허다하다. 불법 거래됨으로써 값은 더욱 더 올라가 청소년 절도범도 늘어난다. 음지에서 거래되다 보니 ‘질’도 보장할 수 없다. 오죽하면, 상습 흡연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들 가운데, 기왕이면 몸에 덜 해롭고 중독성이 약한 질 좋은 카나바스를 직접 사다주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겠는가.

  터부 없이 모든 것을 다 꺼내놓고 말한다는 프랑스인에게도 대마초 및 마약에 관한 한, 말을 꺼내놓는 것 자체가 금기의 대상이다.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섞어 피워서는 안될 마약 종류와 제대로 마약하는 법’ 등의 내용을 담은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이 향정신성 의약품 관련 법률 위반으로 10년 징역 및 75만 유로 상당의 벌금을 물 위기에 처했다. 예방을 위한 정확한 정보는 없고, 정부는 경찰에게 단속 업무만 떠넘기고, 경찰은 직무를 게을리하고, 정치권은 눈치만 보는 사이 대마초 소비율은 한없이 증가한 꼴이다.

 “마약 시작하는 관문” “중독성 약하다” 대립

그 사이 대마초를 둘러싼 논쟁도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다. ‘담배나 술보다 중독성과 독성이 덜한데 왜 대마초만 불법인가’ ‘대마초는 진짜 신체에 해롭고, 윤리적으로 건전하지 못한가’ ‘담배와 술도 줄이자는 마당에, 웬 대마초 옹호론인가’ ‘대마초를 피운 사람은 반드시 마리화나나 필로폰 등 독성이 더 강한 약물을 찾게 마련이다’ 등등….

  의학계 내부에서도 극단적인 입장 차가 존재한다. ‘의사국립아카데미’측의 대마초 위해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근거는 유명한 ‘관문 이론’이다. ‘카나비스 흡연자가 모두 헤로인 복용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강성 마약 복용자들의 대부분은 카나비스로 처음 시작했으니’ 카나비스부터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프랑스에서 관문 이론의 기수 격인 가브리엘 나하스는 ‘연한 마약은 없다’라는 그의 책에서, 카나비스는 중독성·의존성이 강하며 대마초에 들어 있는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이 뇌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일찌감치 펴왔다.

   그러나 ‘세계의사협회’측이 베르트랑 르보와 같은 인사는 이를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일축한다. 카나비스는 담배나 커피보다 중독성이 덜하며, 호기심으로 한두 번 피우고 그만두는 사람이 오히려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같은 공방은 법정으로 간 바 있다. 현 의학계에서는 나하스의 이론이 ‘극단적인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결과로, 의학적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나하스의 발언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치권 인사들이 그의 이론을 곧잘 인용하기 때문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지난 1980년대 파리 시장과 총리를 지냈던 시절, 나하스는 그의 비공식 고문이었다.

  일선에서 학생을 지도해야 할 위치에 있는 교사들도 난감하다. 어떤 교사는 ‘비범죄화’라는 용어는 너무 애매모호한 표현이라고 불평한다. ‘좋은 행동은 아니므로 해서는 안 되지만 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어떻게 학생을 설득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오늘날 청소년의 정체성 문제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금기 조항이 많았던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아동과 성인의 구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섹스와 욕망,  자유와 개인주의가 넘쳐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8~25세는 아동이자 청년이며 동시에 성인인 기괴한 정체성 속에 살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단속 제일주의와 처벌 일관주의는 이미 프랑스 사회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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