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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이 시켰다면 가능한 일”

김형욱 실종 당시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장 김관봉씨 인터뷰

정희상 전문기자 ㅣ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4.11(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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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포토
“김형욱이 암살되었다면 당시 중정 해외 라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김재규가 김형욱을 살해할 이유는 없었다.”...김관봉 전 해외정보국장
 
김형욱씨가 실종될 당시 현지 정보를 취합한 중앙정보부 간부는 김관봉 해외정보 국장이었다. 파리 주재 한국대사관에 파견된 중정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직접이든 간접이든 김형욱 실종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전국장에게 김형욱 실종 직후 중앙정보부 해외 라인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들어보았다.

김형욱 실종사건으로 당시 해외정보국이 의심을 받고 있는데...
그렇다면 김재규 부장, 윤일균 해외담당 차장, 나 그리고 밑에 있던 이종찬 부국장까지 의심받게 되는 입장이다. 우리가 김형욱을 제거했다면 10·26이 난 뒤 합수부에 불려가 조사받을 때 전두환 보안사에서 가만뒀을 리가 없다. 김재규 부장의 비위에 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지만 김형욱 실종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묻지 않았다. 김재규 부장 소행이었더라면 당시 합수부가 ‘옳거니’ 하고 최대한 이용했을 테지만 그런 일이 없다. 나는 지금도 그 점을 의심한다.

그래도 김재규 정보부장이 오랫동안 김형욱 회유 공작을 펴지 않았는가?
처음에는 회고록을 내지 못하게 하려고 사람도 보내면서 달랬다고 들었다. 그러나 1979년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이미 윤일균 중정 차장이 박대통령 지시를 받고 벌인 회고록 출판 저지 공작이 돈 50만 달러만 들이고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 창출판사에서 책이 나왔기 때문에 1979년 들어 중정은 더 할 일이 없어서 손을 놓고 있었다. 오히려 그 무렵 김재규 부장의 관심사는 유신체제 강화와 그로 인한 정국 경색, 민란 수준으로 확대되는 부마사태 등에 대응해 어떻게 하면 박대통령을 설득해 유혈 충돌을 막을까 골몰하는 데 있었다.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피를 말리는 나날이었다. 김재규 부장이 박대통령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김형욱을 상대로 무리한 암살 공작이나 벌이고 있을 그런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기자는 최근 김형욱씨를 파리에서 납치해 근교 양계장 분쇄기에 넣어 암살했다는 사람을 직접 만났다. 그는 현지 한국 정보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파리 현지 중정 라인은 누군가에게 철저히 유린당했다고 봐야 한다. 당시 현지 정보부 조직이 움직였다면 그럴 만한 의지와 힘이 있는 사람은 차지철 경호실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지 중정 조직 관계자 중 일부가 10·26 이후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김형욱 실종 과정에서 김재규-윤일균-김관봉-이종찬으로 이어지는 해보 정보라인 지휘 본부가 유린 당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점에서 당시 중정 파리 현지 책임자 이상열 공사가 이제는 입을 열어야 한다.

옆에서 보기에 차지철 실장과 김재규 부장의 갈등은 어느 정도였는가?
김형욱 실종 무렵 김재규 부장은 박대통령과 유신체제에 관해 포기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마 사태로 부분 계엄이 선포되었는데, 마산까지 경찰서가 습격당하고 심지어 계엄사령관 차량이 시위대에 불탔지만 보도 관제로 언론에는 나지 못했다. 김재규 부장이 현지에 내려가 현지 검찰·경찰·군부·기관장을 불러놓고 유혈 진압을 하지 말라고 연설했다. 부장 연설문은 그때그때 모든 국장급 이상에게 즉시 팩스로 들어온다. 당시 차지철 실장은 김재규 부장이 온건하게 대응해서 일을 망친다고 몰아붙였다. 부산에서 2만~3만 명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공수부대 투입도 차실장 힘으로 이뤄지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부장은 김형욱이 실종될 무렵 문을 걸어 잠근 채 보고도 받지 않고 뭔가에 골몰했다. 며칠 후에 자기가 벌일 10·26 사건을 예비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유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던 사람이 10·26을 앞두고 왜 유신체제의 명예를 위해 김형욱을 제거했겠는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 정보 조직인 이상열 공사, 황규웅 참사관, 최용찬 참사관 세 사람 모두 김형욱 실종 당시 파리를 비우고 해외 출장을 갔다고 주장하는데...
해외정보국장인 내 허락 없이 이들은 해외 출장을 가지 못한다. 당시 본부의 허락을 받고 정식으로 해외 출장 간 사람은 최용찬 참사관 뿐이었다. 나도 그들이 왜 그 무렵 무단으로 해외 출장을 갔다는 것인지, 기억 착오가 아닌지 의문이다.

당시 정보부에서 해외 정보기관과 인적 교류가 있었나
미국 CIA와 일본 내각조사처, 이스라엘 모사드 등과 교류가 있었다.

이스라엘 모사드에 암살 등 특수교육원을 파견했나?
정보부에서 모사드에 위탁 교육한 일은 없다. 경호실은 경호 훈련 차원에서 인력을 보냈다. 군부 쪽에서도 갔던 것으로 안다.

김형욱이 실종된 직후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파리 이상열 공사를 시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더니 프랑스 경찰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조사한다고 했다. 민병기 대사가 프랑스 수사기관에서 좀 만나자고 한다며 어떻게 처신할지 묻는 전문을 내게 보내왔는데 외무부는 방침이 없었다. 내가 민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우리도 경위를 알고 싶으니 협조는 충분히 하되 주권 국가 대사로서 혐의자로 조사에 응하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조건을 달라고 했다. 나중에 프랑스 경찰에서도 열심히 조사했지만 나오는 것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김형욱이 실종된 직후이자 10·26 사건이 나기 1주일 전쯤 김재규 부장이 주불 한국대사관 이상열 공사를 비밀리에 소환해 조사한 뒤 하루 만에 파리로 돌려보냈던데...
그런 일이 있었다. 10월18일 시청앞 플라자 호텔에서 이종찬 해외정보국 부국장과 김갑수 부장 비서실장을 보내 소환된 이상열 공사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것은 김재규 부장이 자기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 아니겠는가. 만에 하나 김재규 부장이 지시했다면 남의 눈에 안띄게 이상열 공사를 직접 만나 성공 여부를 확인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진실은 밝혀야 한다.

이종찬 해외정보국 부국장이 김형욱 실종 사건을 조사하는 총책이었나?
해외담당 부국장이 3명 있었다. 중동 진출 건설업체 사업을 심의하는 심의관, 정보 분석을 담당하는 부국장, 그리고 공작 및 수집 담당 부국장이다. 이종찬씨가 공작 및 수집 담당 부국장이어서 이상열을 조사한 것이다. 그는 나중에 ‘조사해도 별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형욱이 심각한 간첩 행위를 한 점이 발견돼 불가피하고 긴급하게 제거했다는 주장도 하던데...
말도 안된다. 김형욱은 망명해 있어도 적대 국가에 간첩 행위를 하면 미국 정보기관에 바로 체포된다. 우방국 정보기관 간에는 협조 체제가 잘 되어 있어서 24시간 그의 동향을 체크했다. 만일 김형욱이 심각한 간첩 행위를 했다면 우리가 곧바로 주재국 정보기관에 연락해 체포해 버리면 되는데 왜 그를 죽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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