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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가정에서 직장까지 ‘원스톱 웰빙’

제주도 이전 기업들의 ‘탈서울 그 이후’

신호철 기자 ㅣ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4.11(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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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안희태
제주도 애월읍에 자리 잡은 다음커뮤니케이션 인터넷지능화연구소 직원들이 펜션을 개조한 사무실 앞에서 토론하고 있다.
 
“서울에 살 때는 내가 얼마나 탁한 곳에서 살았는지 몰랐다. 하늘 색깔이 땅마다 다르다는 것을 제주에 와서 알았다.” 제주시에서 차로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30분 정도 올라가야 찾을 수 있는 제주도 조천읍 와산리. 자연 석상이 잔디 정원을 채우고 있는 전원 주택이 다음커뮤니케이션 미디어사업팀 정환석씨(33)가 사는 집이다.

회사의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지난해 서울을 떠난 정씨는 한달 전 이 집으로 이사했다. 혼자 살기에는 큰 16평형 주택이지만 임차료는 1년 2백50만원에 불과하다. 정씨는 ”이사 온 지 1주일도 안 돼 머리가 환하게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해 3월 코스닥 대표 기업인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은 본사의 제주도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 유력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사장의 발표는 눈길을 끌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금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미디어본부 50여명과 미래전략본부 10여명, 인터넷지능화연구소(NIL) 20명 등 80명이 제주에서 근무하고 있다.

3월7일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다음NIL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는 넓은 잔디밭을 끼고 별장처럼 서 있었고 뒤쪽 숲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였다. 이곳은 원래 펜션이었는데 회사가 사들여 사무실로 개조했다고 한다. 연구원들은 마침 회의 중이었다. 거실에 둥글게 모여 앉은 그들은 여행 온 대학생처럼 보였다. 연구원들은 ‘요즘 눈이 많이 와서 업무상 로스(손실)가 있었던 것 같다’ ‘출퇴근 시각을 10시에서 9시30분으로 당기자’는 등의 의견을 나누었다. 거실 옆에는 골프채 다발이 보였다.

쾌적한 삶은 기본, 법인세 혜택 ‘덤’

지난해 4월 이곳으로 이전한 연구소 직원들은 18명. 주로 30대 초반 젊은이들이다. 손경완 팀장은 “우리 팀원 가운데 적응하지 못해 돌아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라고 말했다. 김경달 미래전략본부 본부장은 “앞으로 다음 직원 6백여명 가운데 60~70%가 제주로 올 것이다. 정확한 이전 시기와 규모는 내년 초에 정해진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안희태
제주도로 발령된 정환석씨(위)는 인적 드문 북제주군 와산리 전원 주택에 살며 출퇴근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외에도 제주도로 이전한 코스닥 기업이 또 있다. 반도체 설계·무역 회사인 EMLSI는 원래 서울 가락동에 본사가 있었으나 지난해 12월 직원 32명 전원이 제주도로 옮겼다. 이 회사 김상순 과장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아직 이것저것을 재느라 본사 이전을 미루고 있지만 우리는 단 6개월 만에 본사 이전을 완료했다. 제주도로 본사를 옮긴 수도권 기업은 우리가 유일하다”라고 말했다. EMLSI 류춘우 이사는 “제주도 이전 계획은 지난해 6월 사장과 점심을 먹다가 처음 들었다. 쇼킹했다. 차라리 외국으로 이전한다면 덜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방향이 서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라고 말했다.

이들 코스닥 기업이 지방 이전을 결정한 이유는 1차로는 각종 지원 혜택 때문이다. EMLSI 박성식 대표이사는 ”법인세 감면 이익과 해외 출장의 편이성 때문에 이전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 김상순 과장은 “제주 이전으로 올해부터 5년간 법인세 납부가 100% 면제되고 그 후 2년은 50%만 내기로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방 정부의 지원도 있다. 제주도청 투자유치과 현학수 주사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토지를 매입하는 데 제주도가 12억원을 지원했다”라고 말했다.

무역회사인 EMLSI의 경우에는 공항 인프라가 서울보다 제주가 더 좋다는 점을 높이 샀다. 류찬우 이사는 “반도체 생산 공장이 타이완에 있어서 자주 출장 가야 하는데 서울에 있을 때보다 3시간 가까이 이동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MLSI는 제주도에 자체 공장도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세제 해택이 EMLSI처럼 크지는 않다. 법인세 면제 비율은 지방 이전 직원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다음처럼 단계적으로 이전하는 기업에는 적용하기가 여의치 않아 기업이전촉진법의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음 미래전략본부 김경달 본부장은 “세제 혜택 문제는 정부와 논의하고 있는데 정부도 현 제도의 불합리함을 공감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는 꼭 세금을 줄이려는 목적보다도 글로벌 기업으로서 근무 환경을 개선한다는 의미가 더 컸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인터넷 기업으로서 노마딕(유목)한 미래 기업 환경을 실험해보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집값·물가 싸고 출퇴근 시간 10분 안팎

환경 측면에서 보면 제주 생활은 쾌적하고 여유로운 ‘웰빙 라이프’ 그 자체다. 지난 1월 제주도에 온 다음미디어본부 이성문씨(30)는 다시는 서울의 지하철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다며 제주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은 10분 안팎이 대부분이다. 이성문씨는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헬스클럽에 다니기로 했다. 다음 미디어본부 석종훈 본부장은 “오늘 아침에도 오름(제주도의 기생 화산) 등산을 하고 출근했다”라고 말했다. 천연의 섬 제주도에서 즐길 거리는 많다. 석본부장은 걸어서 제주도를 일주한 적이 있다. NIL연구소 김동욱씨(30)는 윈드서핑이 취미다. EMLSI 전직원은 업무가 끝나면 골프를 단체로 한다.

물가도 싸다. EMLSI 류찬우 이사는 지난해까지 분당에서 31평 전세 아파트에 살았다. 지금은 39평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가격은 2억5천만 원으로 분당 전세금보다 조금 비싸지만 내 집이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하지만 제주에서 만난 서울 출신 직원들은 아직 제주를 임시 거주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다음 직원은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내려왔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NIL연구소의 경우 전직원의 3분의 1 정도가 주말이면 서울로 떠난다. 비행기값은 회사가 지원해 준다. EMLSI는 한 달에 한 번, 다음은 한 달 4회까지 항공료를 대준다. 하지만 다음 관계자는 “앞으로 제주 이전 직원이 수백 명으로 늘어나면 지원액을 재조정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 제주도 이전 기업의 직원은 “제주도 사람들이 다소 텃세가 있어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제주도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영어 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직원도 있었다. 그 밖에 골프연습장이나 운동·종교 단체 등이 지역민들과 접촉하는 통로다. NIL연구소의 한 남자 연구원은 제주시의 유치원 교사와 사귀고 있다. ‘북남남녀’ 커플인 셈이다.

지방으로 기업을 이전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교육 문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처럼 젊은 직원이 많은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반 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EMLSI 류찬우 이사는 “자녀가 초등학생이냐 중학생 이상이냐에 따라 본사 이전에 대한 저항감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EMLSI 직원 가운데 절반 가량은 배우자와 자녀가 수도권에 남아 있다. 서울의 인적 정보망에서 멀어진다는 것도 단점이다. 다음의 손경완 팀장은 “이른바 ‘복도 비즈니스’라는 것이 여기서는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메신저·e메일·화상 회의 시스템이 제주도 사무실을 유지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제주도청 투자유치과 관계자는 “아마도 제주도로 본사를 이전하려면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IT 기업이 유리할 것이다. 아직까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EMLSI 외에는 제주도 기업 이전을 계획하고 있는 회사가 없다”라고 말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4월 중 제주도에 미디어 연구소를 착공할 계획이다. 

“제주도는 거대한 창작실”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특히 인기…자유 만끽하며 건강도 챙겨

   
  제주도 저지 문화예술인마을에 있는 시사만화가 김경수씨의 집(왼쪽). 오른쪽 사진 왼쪽은 전재현씨.  
“제주도에 사는 육지인 중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주도에 온 30~40대 샐러리맨들은 서울처럼 다람쥐 생활을 한다. 하지만 직장도 연고도 없이 그냥 제주도가 좋아 온 사람도 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힘들어도 이런 분들의 삶이 가장 매력적이다.” 지난해 5월 서울을 떠나 제주도 서귀포에 정착한 전재현씨(43)의 말이다. 그는 15년 동안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잡지 편집장까지 지냈지만 어느 날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껴’ 도시를 떠났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과 자신은 서귀포에 살고, 아내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서울에 남아 있다.
전씨는 “원래 어깨·목·허리 통증에다 만성 위궤양·아토피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기로 이사한 후 병이 싹 나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지 건강 문제 때문에 제주도로 온 것은 아니다. 꽉 짜인 틀이 싫어서, 느리게 살고 싶어서 여기로 왔다”라고 말했다.
전씨의 수입원은 다양하다. 제주도 중문 근처에 펜션을 짓고 있는데 4월 말에 문을 연다. 야후·다음 등 인터넷 사이트와 대기업 사보에 ‘제주 사는 이야기’를 연재하며 원고료를 받고 있다. 올해부터는 감귤 농사도 시작한다. 전씨는 “제주도에 정착하려면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꿀 준비가 되어야 한다. 제주시 안에서 도시인으로 살 것 같으면 굳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있나?”라고 말했다.
시사만화가 김경수 화백(38)도 전씨와 비슷한 ‘프리랜서 제주인’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살던 그는 2004년 1월부터 제주도청이 문화인력 양성을 위해 분양한 ‘저지 문화예술인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김화백은 수도권을 떠나고 나서도 <시사저널> <매일신문> <내일신문> 등 주요 언론사 만화 연재를 멈추지 않았다. 인터넷 웹하드를 통해 작품을 전송하기 때문에 서울에 있든 제주도에 있든 일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그가 살고 있는 주택은 작업실을 겸하고 있는데, 제주로 내려오기 1년 전인 2003년 초부터 자기 감각에 맞게 새로 지은 것이다. 땅을 2백 평 구입하고 30평짜리 집을 새로 짓는 데 든 비용은 1억원 안팎. 김화백은 “서울에서는 실타래가 엉켜버린 것처럼 머리 속이 복잡했는데 제주로 온 이후 작품에 집중할 수 있어 크게 만족한다. 그동안 뭐하러 서울에서 살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 자생 식물 연구회’ ‘한림 배드민턴 클럽’ 모임에 참여해 주민들과 어울리고 있다. 김화백의 가족은 아직 일산에 남아 있다.
김화백은 “관광지에 산다는 기분으로 제주에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친구들은 내가 제주도에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이 기사를 읽고 손님이 몰려올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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