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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윤색된 ‘서프라이즈’ 실화

[문화비평]

허문영(영화 평론가) ㅣ | 승인 2005.04.15(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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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문영(영화평론가)  
놀라운 실화를 소개하는 MBC <서프라이즈> 4월10일분을 보고 든 몇 가지 뜬금없는 생각들이다.

1화. 1998년, 말기 암을 앓는 태국의 7세 소년 아피차트를 데리고 가난한 부모는 최고의 의료진이 있는 독일행을 감행한다. 그러나 치료도 못한 채 추방당해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비행기가 추락한다. 아비규환의 사고 현장에서 멀쩡한 사람은 병으로 죽어가는 아피차트뿐. 아피차트는 사력을 다해 마을로 달려가 구조를 요청한다. 승객 수십 명이 소년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독일 의사들은 아피차트를 무료 시술해 완치시킨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 눈물이 난다. 그러다 심술이 난다. 제3 세계를 결핍의 세계로, 제1 세계를 충만의 세계로 그리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제3 세계의 결핍을 제1 세계의 풍요와 자비가 채우는 결말 때문이다. 이건 문제가 남김없이 해결된, 너무 편안한 결말이다. 다른 결말, 예컨대, 아피차트가 사고를 알리고 숨을 거두는 결말을 생각해보자. 이건 쓰라리며 불안한 결말이다. 살아있는 자들(특히 제1 세계)의 죄책감이 소년의 원혼을 상상하며 무의식 속으로 그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1 세계와 제3 세계의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세상에서라면 후자의 결말이 더 바르다고 생각한다. 실화를 두고 무슨 트집인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실화는 하나의 실화가 아니라, 더 많이 소비되는 실화다. 실제로 우리가 실화라고 믿는 많은 휴먼 스토리는 더 많이 애호되고 소비됨으로써 신화화한 실화다. 다르게 말하면, 그것이 신화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킬링 필드>와 <비욘드 랑군>처럼 선택된 뒤 윤색된 실화다. 그 실화들의 신화성에는 우리의 무의식적 소망이 담겨 있다. 제3 세계의 결핍을 제1 세계의 풍요와 자비가 채워줄 것이라는.

2화. 1897년 대한제국. 일본군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뒤, 열혈 청년 김창수는 일본군 장교를 칼로 죽이고 인천 감옥에 갇힌다. 고종황제는 일본의 강요로 사형을 명하고도 고민에 빠진다. 마침내 사형집행 중지 결정을 내리지만, 집행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김창수를 구한 것은 며칠 전에 설치된, 아직 시험 중인 전화. 한국사의 첫 통화가 애국 청년의 목숨을 구했다. 김창수는 후에 김구로 개명한다.

여기에는 피식민자의 딜레마가 담겨 있다. 민비를 살해한 것은 식민자지만, 김구의 목숨을 구한 것도 결국 근대의 기계 장치를 이식한 식민자다. 한승조의 견해는, 비유컨대, 이 이야기에서 전화의 비중을 더 존중하며, 국모로 상징되는 구질서의 도태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이건 위험하지만, 단칼에 벨 수 있는 견해가 아니며, 그 딜레마와 진검승부를 할 때 넘어설 수 있는 견해다. 제1화의 무의식에 갇혀 있는 한, 입으로 반일을 수없이 외쳐도 넘어설 수 없는 견해다. 이 이야기는 무시무시하다.

거짓인 3화는 생략하고, 4화. 1973년 오사카. 귀가길 강도에 시달리던 시장 상인들을 겨냥해, 돈을 입구에 넣으면 출구에서 입금 증명서가 나오는 무인 입금기가 시장에 설치되었다. 좋아하던 상인들은 며칠 뒤 그 기계에 넣은 돈이 은행에 입금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머리 좋은 도둑이 그 기계 앞에 기계의 모형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입구로 들어오는 돈을 챙긴 뒤 가짜 입금표를 내 준 것이다.

여기서 은행은 제1 세계, 시장 상인들은 제3 세계의 위치에 있다. 근대적 기계장치가 둘을 행복하게 결합시키는 듯했다. 그런데 도둑이 가짜 기계라는 제1 세계의 모조로, 은행과 시장 상인들을 모두 속였다. 상인들에게 미안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상하게 통쾌하다. 한때 한국에서 맹활약한 재미동포 사칭 사기꾼도 같은 수법을 썼던 바, 그들이 포착한 것은 제1 세계의 기호에 대한 제3 세계의 현혹이며, 그것을 물먹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제1 세계의 기호를 의심해야 한다. 그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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