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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늘 실험이었죠”

[서명숙이 만난 사람]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서명숙 ㅣ 승인 2005.04.19(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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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윤무영
1964년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월간 <말> 기자·취재부장·워싱턴 특파원. 저서 <식민지의 아들에게>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등.
 
“이게 뭐야? 신문 맞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이랬다. 그도 그럴 것이 제호도, 형식도, 내용도, 뉴스를 생산하는 방식도 기존 언론과 너무나 달랐다. ‘뉴스 게릴라’(시민 기자)가 쓴, 신변잡기 같은 글까지 기사라니? 직업 훈련을 받은 기자가 쓰고 독자는 읽는 언론의 관습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도발이자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오래 못 버틸 걸, 언론계에서는 회의의 시선을 보냈다.
그로부터 5년 세월이 흘렀다. 언론의 기존 문법을 철저히 파괴한 이 매체는 살아 남았다. 생존을 넘어서서 종이 매체가 지배하던 언론 지형을 바꾸어놓았다. 지난 2월22일 서울 세종홀에서 열린 창간 5주년 기념식은 매체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외국 언론도 한국에 뿌리를 둔 인터넷 신문의 실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CNN 방송은 불황에 허덕이는 가게 형편을 기사로 올려 네티즌의 호응을 얻은 시민 기자 ‘속옷가게 아줌마’를 취재해 갔다.
<오마이뉴스> 창간을 주도한 오연호 대표는 진보 매체인 월간 <말>에서 미군 범죄와 미군 기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던 기자 출신이다. 아니, 지금도 자기가 쓴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는 사장 겸업 현역 기자다.

원래부터 기자가 꿈이었나요?
소설을 쓰려고 국문과에 들어갔어요. 대학에 가보니 선배들이 시위를 하다 눈앞에서 잡혀갔는데도 신문에 한 줄도 안 나와요. 현실 이야기도 다 못쓰는 판인데 한가하게 허구적인 이야기나 쓰자니 참 한심하더군요. 당장 급한 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쓰는 거다, 즉각 대자보와 유인물을 쓰는 ‘보도 행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옥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나가면 다른 직장에 취직하기도 힘들 테니 <말>지 기자가 돼서 언론운동을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죠. 입사해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어요. 미국 특파원 시절 학위 논문을 쓰면서도 기사를 한 번도 안 거른 ‘개근 기자’였어요, 제가.

‘반미 기자’라는 레테르가 붙을 정도로 미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양산하던 기자를 미국 특파원으로 일부러 보낸 건가요? 본인이 자원했나요? 
제 뜻이었지요. 주로 탐사 보도를 하는 동안 다른 국내 취재에서는 조·중·동 기사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지만, 해외 취재 능력에서는 자신이 없었어요. 반미 기자라는 레테르가 제겐 영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고요. ‘한국 속의 미국’만 알지 정작 미국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어요.

본인의 성향과는 정반대로 보수적인 대학에서 공부했다면서요?
본디 대학에서 공부할 생각은 없고 그냥 미국 사회를 둘러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언론계 대선배가 미국 사회를 제대로 알려면 대학에서, 그것도 가급적 보수 우익 크리스천이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가는 게 좋다고 조언하더군요. 그렇게 골라 들어간 리젠트 대학이 저널리즘 쪽으로 특화한 대학이었어요. 보수 세력이 진보 세력에 장악되다시피 한 미국의 언론 권력을 어떻게 교체할 것인가, 방법론을 놓고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는데,  제 문제의식하고 딱 맞아떨어졌어요. ‘매체 창간’ 과정을 공부하는데 제게 떨어진 과제가 바로 ‘당신이 매체를 창간한다면 어떤 매체를 만들고 싶은가?’였고, 그때 발제한 게 바로 지금의 <오마이뉴스>지요.

젊은 날 혼신의 열정을 바쳤던 직장을 떠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새 매체를 창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말>지를 떠난다는 건 제겐 정말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죠. 하지만 매체 환경은 급변하고 사회 변화도 가팔라지는데 세상을 향해 한 달에 한 번씩만 발언하려니 갑갑하고 성에 안 찼어요. 보수와 진보가 8 대 2 비율로 불균형하게 기운 언론 구도로는 민주주의도, 올바른 의제 설정도 불가능합니다. 여론이 원천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요? 적어도 5 대 5 정도로는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간 <말>지를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새 천년에는 새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열망도 있었고요. (실제로 그는 1999년 12월31일 12년 동안 다니던 <말>지에 사표를 던지고, 이듬해 2월22일 2시22분에 새 매체를 창간했다. 20세기 저널리즘과는 완전히 결별하겠다는 뜻에서 2자가 들어간 날짜와 시간을 택했다. 고향에서 사주를 보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택일을 고심했다니, 19세기 방식으로 20세기와 결별한 셈이다.)

이만큼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발기인대회는 사무실 근처 호프집에서, 1주년 기념 ‘뉴스게릴라’의 밤은 사무실이 세든 빌딩 지하 다방에서 가졌어요. 확신? 가진 게 있었다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과 열정뿐이었죠. 제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실험의 연속이었어요. 첫 6개월은 주간으로 운영하다가 일간으로 전환할 계획이었는데 창간 준비호를 내보낸 뒤 시민 기자들이 기사를 많이 올리는 바람에 창간호부터 자동으로 일간지가 되고 말았어요. 몸은 힘들어도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는 언론의 기존 틀을 완전히 흔드는 발상인데, 기자 출신이 그렇게 기자를 배반해도 되나요?
다들 2000년에 창간하면서 이 슬로건을 내세운 걸로 생각하는데, 1988년 민언련이 주최하는 대학생 기자교육 때 제가 한 강의 제목이 ‘모든 시민은 기자다’였습니다. <말>지 기자로 현장에 가면 기자 대접을 못 받아요. 검찰 기자실에 들어가려고 해도 ‘당신은 안됩니다’ 제지당하고, 공동 기자회견장에서도 질문 한번 못하고 받아적기나 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기사 내용보다는 어느 매체 소속이냐 하는 간판을 중시하잖아요. ‘노근리 사건’만 하더라도 제가 보도할 때는 모든 언론사가 침묵하다가 정작 몇년 뒤 미국의 유수한 언론사(AP통신) 기자가 추가 자료를 발굴해 보도하자 우리 언론사들이 마치 처음으로 알려진 사실인 것마냥 요란스레 보도했잖습니까.

상근 기자만 해도 4명에서 40여명이나 되는 대식구로 불어났는데 월급은 제때 주는 건가요?
창간 2년째에 편집국장을 영입해 역할 분담을 했어요. 저는 수입 구조 면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 언론으로 만드는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서였어요. 생활 광고를 낼 수 있는 소액 광고주 3만명을 모은다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이 발상은 참여가 저조해 결국 실패했어요. 대기업 광고주를 찾아나섰는데 처음에는 과장도 상대를 안해 주더니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독자 수와 영향력이 크게 늘어나자 부사장이 전화를 걸어오더군요. 지금은 광고 수입, 뉴스 콘텐츠 판매, 이벤트 기획으로 상근 기자의 월급과 시민 기자의 원고료는 밀리지 않고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월급과 원고료를 밀려본 적은 다행히 한 번도 없어요(지난해 말 <오마이뉴스>는 2년째 흑자를 올렸다고 공개했다).

전체 매출에서 광고 수입 비중이 70%나 되는데, 기업 눈치를 보거나 기사에 영향을 받게 되는 건 아닙니까?
인터넷 광고료가 얼마 안돼요. 저희가 한 달 올리는 광고 매출이 조선일보 하루치 정도랑 맞먹을지도 몰라요. 또 뉴스 생산 구조상 기업의 눈치를 볼래야 볼 수가 없게 돼 있어요. 시민 기자가 올린 기사는 검증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한 올려야 하니까.

그러나 ‘천대받던’ 월간지 기자가 자신에게 교육받은 기자 지망생과 시민 기자인 뉴스게릴라 7백27명과 함께 시작한 <오마이뉴스>는 이제 한국에서 가장 힘센 매체 중 하나가 되었다. YS 고대앞 농성사건, 광화문의 반미 촛불집회,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노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집회를 생중계해 여론의 물줄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면서 자연스럽게 키워진 매체 파워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 그늘도 짙은 법. 이제는 언론 권력이므로 견제해야 한다는 경계론, 대중 독재를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된다.

편향 보도를 한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조선’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상근 기자 숫자가 적어 사안에 따라 ‘집중과 선택’을 하다 보니,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죠. 그러나 (조선일보처럼)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는가? 적어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자부해요. 시민들이 펼쳐놓은 장이 의미가 있다면 그만큼의 비중으로 보도했을 뿐입니다. 광화문에 대통령 탄핵을 규탄하는 인파 20만명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면 동영상으로 생중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거지요. 대선 당시 ‘노무현 현상’이 보도할 가치가 100이라면 우리가 95 정도, 조·중·동은 30 정도의 가치만 부여했다고 생각해요.

   
 
ⓒ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 첫 인터뷰를 <오마이뉴스>와 가졌다. 왼쪽이 오연호 대표.
 
‘친노 매체’라는 규정이 잘못됐다는 건가요?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하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는 단 한번도 오마이의 ‘시민 참여’를 조명해본 적이 없어요. 창간할 때 (손가락으로 작은 네모칸을 그리면서) 조그만 상자 기사로 다룬 게 유일한 보도였죠. 대신 우리에게 ‘친노 매체’라는 딱지를 붙여 정치적 프리즘 속에 가둬놓으려는 거죠. 뉴스 가치만큼 보도했는데도 그런 딱지를 붙인다면 어쩔 수 없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말을 마치려다가 갑자기) 이라크 파병, 우리만큼 반대한 매체가 있나요? 이라크 파병 때 노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한 ‘친노 매체’는 조선일보 아닙니까? 이기준 교육 부총리 임명 때도 똑같은 상황이 재연됐고요. 과연 3만7천명이나 되는 뉴스게릴라가 친노여서 기사를 올리겠습니까?

노무현 정권이 포퓰리즘(대중 선동)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오마이뉴스>를 대중 정치를 선동하는 선전대로 여기는데.
탄핵 정국만 하더라도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회의를 몇 차례에 걸쳐 열었어요. 그런 시민단체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 갔을 뿐, 우리가 앞장선 적은 별로 없어요.
최근 ‘정형근 의원 호텔방 소동’만 하더라도 종이 언론은 과잉 보도를 문제 삼거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아예 다루지 않았는데,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들은 비중 있게 취급했거든요.
YTN이 보도하면서 이미 사안이 저질러져 버렸어요. 국민들이 이 사안을 궁금해 하는 상황이 조성된 거죠. ‘정형근’이라는 이름 자체가 뉴스메이커로서 가치가 있잖아요? 인터넷 신문의 특성상 모바일 세계에서 다 알려진 일을 모르는 척하는 건 솔직하지 못한 태도지요.

정형근 보도야 이미 알려진 일이어서 따라간 거라지만, <오마이뉴스>는 공개해서는 안되는 국정원 간부의 얼굴 사진을 유일하게 보도한 적도 있죠.
그건 참 안타까운 실수였고, 지금 생각하더라도 성급한 보도였습니다. 몇 가지 확인되지 않은 채 나간 것도 있고. 그래서 즉각 사과하고 해당 기자를 징계했던 거지요.
“외국 언론들, 블로그들의 연대에 놀라워한다”

그는 50호 남짓이 모여 사는 지리산 자락에서 자라, 대학 입학 후에야 처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봤다는 ‘산골 촌놈’이다. 그런 그가, 미국 대학에서 신매체 창간의 꿈을 처음 키운 그가 미국 유수의 언론사 사장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미국에서도 이런 실험이 가능한가’라는 질문 공세를 받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봄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 인터넷 신문 사상 처음으로 성공 사례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세계의 언론학자와 언론인 들이 모인 ‘인터넷과 언론’ 포럼의 주요 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해외에서 부쩍 <오마이뉴스>를 주목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런 건가요?
미국의 한 시사 주간지가 블로그를 ‘2004년 최고의 용어’로 선정할 만큼 전세계적으로 블로그 현상이 주목되었잖아요? 외국의 블로거들은 전문적인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매우 개인적이예요. 한국의 <오마이뉴스>는 시민 기자 개개인이 자기 글을 쓰는 일종의 블로그인 셈인데, 연대를 하고 있단 말이예요. 우리는 아예 처음부터 ‘뉴스게릴라들의 뉴스 연대’를 표방하고 나선 매체니까. 자기네와 다르니까 더 주목하는 것 같아요.

청와대에서부터 언론까지 장악한 386의 급진성과 경험 부족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보수층은 386의 급진성보다는 타협을 오히려 걱정해야 한다고 봐요. 학생회장 같은 이들말고 평범한 386세대가 젊은 날 추구한 핵심적인 가치가 뭡니까? 민주화에 대한 기여와 좀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자기 희생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젠 아이들도 자라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 있다 보니 자기가 몸 담은 조직에서 소금 역할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게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라고 충고할 게 아니라 계속 핵심 가치를 추구하라고 주문해야지요. 급진적이려야 급진적일 수도 없어요. 다들 가정을 꾸리고 있고, 사회에서 핵심 동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뭐.

오연호를 북한 주장에 무분별하게 동조하는 ‘좌익 용공’으로 분류하려는 유혹을 느낀다면, 좀 헷갈릴 만한 정보가 있다. 본인이 손사래를 치지만 그는 후배 기자가 ‘너무 경건한 게 유일한 흠’이라고 뒷담화를 할 만큼 열심인 기독교인이다. 신자가 3백명쯤 되는 작은 교회를 다니는 그는 일요일에는 반드시 오전 9시40분에서 오후 3시까지 교회에서 ‘산다’. 성가대 연습이 있는 날에는 오후 6시까지. 그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이유도 ‘기자’라는 직업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오연호, 그는 천생 기자다.
“기자는 지면에서는 도덕적으로 옳은 이야기만 하지만, 사람인 이상 어떻게 옳은 일만 하겠어요? 아무리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해도 숙명적으로 ‘이중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예요. 기독교적 용어로는 ‘회개’, 일반적인 용어로는 ‘반성’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제대로 된 칼을 들이댔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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