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마당에 오른 한류의 현재와 미래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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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국제 세미나 등 잇달아 열려

 
지난해 일본 중년 여성을 강타한 <겨울연가> 열풍은 일본의 대중 문화 지형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겨울연가> 열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중 문화 선진국으로 여기던 일본까지 한류 열풍이 덮치면서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고전적인 문화 이론을 비롯해, 각종 문화 이론이 다시 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스포츠 신문의 감각적인 뉴스 주제로 다루어지던 한류는 이제 문예지에서 고담준론의 화두로 격상되어 다루어지고 있다. <문화과학> 2004년 겨울호 ‘일본의 한류 바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송연옥)에 한류 열풍이 소개된 것을 비롯해 2005년 봄호 계간지들이 한류 담론을 쏟아냈다. <황해문화>는 ‘한류와 인터-아시아’(이재현)와 ‘한류:팝 민족주의에서 팝 아시아주의로?’(신현준)를, <문학동네>는 ‘Forgetting 한류’(김항)를, <창작과비평>은 ‘일본의 한류열풍’(황성빈)을 특집 내지 칼럼으로 다루었다.

<겨울연가>로 일본에 한류 열풍이 불기 전까지 전문가들의 한류 담론은 전무하다 싶을 만큼 드물었다. 연세대학교 조한혜정 교수가 일본의 이와부치 고이치 교수와 함께 한류 관련 심포지엄을 연 것을 제외하고는 국내 학계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2월22일, 중앙대학교 한류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한·중·일 국제 한류 세미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한류 담론이 학술적으로 다루어질 만큼 격상되었지만 국내 연구자들이 한류를 바라보는 시각은 차가운 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지 연구자들이 한류를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것에 반해 국내 연구자들은 한류 열풍을 바라보는 데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지 연구자들은 한류에 대해서 한국이 과소 평가하고 있다며 한류를 통해 아시아가 문화적으로 소통할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리즈메이칸 대학 황성빈 교수(산업사회학)는 <창작과비평>에서 “<겨울연가>는 일본 사회에 두 가지 해방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나는 중년 여성 해방이고, 다른 하나는 ‘아시아 콤플렉스’로부터의 해방이다”라고 지적했다.

일본 문화는 대형 마트, 한류는 재래시장?

 
반면 국내 연구자들은 한류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수선을 피우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한류가 국수주의적인 의식을 조장하고 문화제국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계한다. 문화 평론가 이재현씨는 <황해문화>에서 ‘한국에서 한류에 대한 열광은 상당히 자국 중심주의적이고 문화적 패권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에 대한 평가에서도 대체로 현지 연구자들은 후한 반면 국내 연구자들은 박한 편이다. 일본 아오야마 대학 송연옥 교수는 <문화과학>에서 ‘일본 드라마에 비하면 한국 드라마는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에서 볼 수 있듯이 역동적인 역사가 배경에 깔려 있다. 드라마 줄거리나 대사도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일본 드라마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문화 평론가 신현준씨는 <황해문화>에서 ‘일본 문화 산업이 여러 곳에 체인을 거느리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현대식 대형 매장이라면 한국의 문화 산업은 그 옆에 있는 재래 시장의 점포다. 이 재래 시장에서 파는 품종은 대형 할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물품을 정교하게 복제한 뒤 다소 변형을 가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문예지뿐만 아니라 각종 세미나 자리에서도 한류에 대한 갑론을박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지난 2월23~25일 광주에서 열린 ‘아시아 문화 심포지엄’에서도 한류가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광주 문화중심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5·18기념재단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아시아 문화교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한류 열풍이 아시아의 문화적 가치를 논하는 화두가 되었다.

수년 동안 일본 대중 문화의 아시아 진출에 관해 연구한 아시아 문화 교류의 권위자인 와세다 대학 이와부치 고이치 교수(국제교양학부)는 일본 드라마를 모방했던 한국 드라마가 빠르게 성장해 일본 드라마 이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며 “일본 드라마가 젊은이들의 사랑과 일상 생활을 통해 ‘소우주’를 그린다면 한국 드라마는 가족을 중심으로 ‘지금 여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폭넓은 공감을 얻어냈다”라고 분석했다.
백원담 교수(성공회대·중국학)는 한류가 아시아 각국에 각자 처한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으로 소비되는 것에 주목했다. 백교수는 “한류를 통해 문화적 패권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다원성이 공존하고 문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동아시아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 역시 “한류를 ‘아시아 민중의 일상적 삶’과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 아시아 문화운동의 연대로 승화시켜야 한다”라고 거들었다.

‘아시아 문화 심포지엄’에서 주로 소장파 문화연구자들에 의해 한류 담론이 오간 반면, 중앙대 한류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한·중·일 한류 국제 세미나’에서는 국악 작곡가 출신으로서 최초의 문화예술인 출신 대학 총장이 된 박범훈 총장을 비롯해 이어령·서연호·곽수일 등 많은 원로 학자들이 참석했다.

 
한류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취재하고 있는 서연호 교수(고려대·국문학)는 학계나 관계가 한류를 빌미로 새로운 문화 권력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벌써 일본의 연예인들이 이매방 선생의 살풀이춤과 김덕수 선생의 사물놀이를 배워가고 있다. 우리 연예인들도 우리 문화의 진수로 승부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본 대중 문화 입맛 추종하지 말아야”

최근 디지털 경제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곽수일 교수(서울대·경영학)는 한류와 디지털 경제를 결합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디지털 산업과 문화 산업의 윈윈 결합이 필요하다. 디지털 미디어의 흐름이 1인 미디어인 블로그에서 1인 방송국인 팟 캐스트(pod cast)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할 수 있다면 한류도 새로운 탄력을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류를 지속하려면 ‘대중 문화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연옥 교수는 “역사를 외면하는 일본 대중이나 경박한 노선을 걸어온 일본 방송국의 입맛에 맞게 드라마를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도쿄 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박사 과정인 김항씨는 <문학동네>에서 ‘잔치는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이다. 한류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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