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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골육상쟁 잔혹사

[이 주일의 책]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강철주 편집위원 ㅣ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5.04.29(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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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모크 지음/정성묵 옮김/산해 펴냄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를 읽다 보면 그녀가 관찰한 탄자니아 곰베 지역의 침팬지 일족이 처음에는 ‘야만의 얼굴을 한 천사’처럼 다가온다. 구달은 침팬지들 간의 애정과 유대감, 관대함·자신감·타고난 위엄 같은 품성에 반해 침팬지들이 자신에게 ‘존재의 내적 중심에 도달하는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품었던 ‘고상한 유인원’이라는 신화는 이내 깨지고 말았다. 침팬지 수컷들이 병든 어미로부터 강탈한 새끼 침팬지를 때려 죽여 그 시체를 먹고, 급기야는 두 패로 갈려 집단 살육을 저지르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인 구달은 ‘경악했다.’

미국의 동물학자 더글러스 모크의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를 읽으면 그같은 침팬지 무리의 집단 살육은 전혀 경악할 일이 못된다. 야생에서 동물들의 동족상잔은 다반사요, 골육상쟁 또한 예삿일이다. 특히 ‘가족’은 동물 세계에서 진화론적 이기주의의 극한을 보여주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치열한 사생 결단의 싸움터이다.

   
  새끼 사자들도 수컷 사자들의 살해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가장 흔한 경우가 ‘형제 전쟁’이다. 예컨대, 갈라파고스물개는 해변가 바위 위에서 느긋하게 햇볕을 쬐다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제 동생에게 느닷없이 덤벼들어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어미가 말리려고 실랑이를 벌이지만 그 와중에 더욱 난폭해진 형이 갓난 새끼를 몇 번씩이나 내동댕이치는 통에 새끼 물개는 이내 숨을 거둔다. 그러나 어미는 동생을 죽인 형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본다.
 
아프리카검은독수리는 부화하자마자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다. 둥지 주위에 먹을 것이 널려 있는데도 형 독수리가 동생의 연한 살을 콕콕 쪼아대며, 먹이 쪽으로는 눈도 못돌리게 겁을 준다. 동생은 형이 주는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루이틀 사이에 굶어죽는다. 로열펭귄은 동생을 잘 키우기 위해 형을 희생시키는데, 두 번째 알(동생)을 낳기 직전 아예 첫 번째 알(형)을 둥지 밖으로 차버린다. 버림받은 이 알은 남극의 강추위에 얼어죽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자궁 속에서부터 형제의 난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뱀상어 어미는 몸 속에 알을 낳는데, 알들이 부화하여 어미 몸 속의 어두운 자궁을 자유롭게 헤엄치며 서로를 잡아먹는다. 아직 부화하지 못한 동생 알들을 찾아 먹어치우고, 몸집이 커진 배아들은 작은 배아들을 뜯어먹는다. 이 과정은 한 마리만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되며, 어미는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알을 낳아 먹이로 제공한다.

자궁 속에서도 형제끼리 먹고 먹히는 전쟁


   
  교미하는 사마귀(오른쪽). 암컷이 수컷의 목을 베어버린다.  
 사마귀는 교미 중에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암컷이 교미 도중에 몸을 돌려 수컷의 목을 베어버리는데, 암컷에게 모가지가 잘리면서도 수컷은 더욱 교미에 열중한다. 목이 베이면 뇌 바로 밑 신경의 제어 기능이 사라지기 때문에 더더욱 열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암컷은 수컷을 처형함으로써 열정적인 교미와 먹이라는 두 가지 보상을 얻게 된다.

  가시고기는 순정한 부성애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새끼들을 먹어치우기도 한다. 수정된 알들을 지키느라 스스로 먹이를 구하러 다닐 수 없으므로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품고 있던 알들의 일부를 먹는 것이다. 가시고기에게 알은 보호해야 할 자식이면서, 동시에 영양 만점인 먹이이기도 하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싸우는 바다코끼리  
그렇다면 동물들은 왜 이처럼 공공연한 골육상쟁을 마다않는가? 먹잇감이 부족하다는 것이 피를 나눈 형제가 피 튀기게 싸우는 가장 큰 원인이지만, 먹거리가 넉넉해도 싸움이 계속되는 경우 또한 매우 흔하게 발견된다. 배가 부를수록 더 잔혹하게 혈족을 해치는 동물들도 드물지 않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을 ‘유전자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천적의 공격, 부족한 먹잇감, 자연 재해 같은 위협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종의 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까운 혈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개체 자신의 생존을 돕는 유전자를 퍼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혈연 선택(이타적 협력)을 앞지르는 이기적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만사를 인간사에 대입하고 싶다면, 생물학적 사실들을 보고하고 있는 이 책이 인간의 가족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우화’로 읽힐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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