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존 볼턴 좀 말려줘요!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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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대사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과거사 속속 드러나…“부적격 인물” 이구동성

 
에피소드 1 2001년 하순 당시 존 볼턴 미국무부 군축안보 담당 차관은 북한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정권 교체’를 공공연히 들먹였다. 부시 대통령조차 쓰지 않는 표현을 국무 차관이 거론한 데 대해 당시 찰스 프리처드 대북교섭 담당 대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볼턴은 프리처드에게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킨 사실을 상기시키며 “지금 정확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정권 교체요”라고 쏘아댔다. 

에피소드 2 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을 코앞에 둔 시점에 서울을 방문한 볼턴은 당시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에게 벌컥 화를 냈다. 자신과 노 당선자와의 면담을 주선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허바드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이미 1주일 전 서울을 방문해 노 당선자에게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데다, 노 당선자의 일정이 빡빡해 면담을 주선하기가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허바드는 단단히 토라진 볼턴을 위해 한국의 고관 명사들이 참석하는 파티를 주선했으나, 정작 주인공인 볼턴은 파티에 나타나지 않았다.

에피소드 3 2002년 초 볼턴은 쿠바가 비밀리에 생물화학 무기 계획을 갖고 있다는 요지의 연설을 유력 보수 단체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무부 생물화학 무기 분석 책임자인 크리스티안 웨스터맨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연설 내용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볼턴은 그를 자기 집무실로 불러 호되게 나무란 뒤, 파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웨스터맨의 직속 상관인 칼 포드 정보분석국장이 이의를 제기하자 잔뜩 화가 난 볼턴은 포드와는 재임 기간 내내 말 한마디 않고 지냈다.  

 
각기 시점과 정황은 다르지만, 최근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존 볼턴(56) 미국 유엔대사 지명자의 좌충우돌적이고 안하무인 격인 성격을 보여준 실례들이다. 고도의 균형 감각과 평정심이 요구되는 대사, 그것도 유엔에서 미국을 대표할 유엔대사 자리에 볼턴을 지명한 데 대해, 백악관과 공화당은 유엔 개혁을 위해서는 그만한 인물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야당인 민주당은 오랫동안 유엔을 폄하해온 데다 성격적 결함마저 있는 볼턴이야말로 시대 역행적 인물이라며 인준을 반대해왔다.

이처럼 양측이 한 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지난 4월 초 시작된 상원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 볼턴의 볼썽사나운 과거사가 연일 터져 나오면서, 미국 의회 상원 외교위 소속의 일부 공화당 의원들마저 반기를 드는 바람에 급기야 인준 청문회가 연기되는 이변까지 벌어졌다. 유엔 개혁을 명분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볼턴 카드’가 인준 여부를 떠나 오히려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메랑이 된 판국이다.

 북한에 대한 초강경 발언으로 한국인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볼턴은 부시 1기 행정부 출범 때부터 ‘국익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끊임없이 논란거리를 제공해온 인물이다. 실례로 그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맺은 군축 조약이 미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며 일방적인 폐기를 주장해 왔다. 볼턴은 실제로 미국이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위해 옛 소련과 맺은 탄도요격미사일 금지조약 폐기에 관한 협상에서 주역을 맡았다.

그는 또한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음은 물론, 열렬한 핵실험금지조약 폐지론자이기도 했다. 근래에는 북한·이란 등 이른바 불량국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방지 구상(PSI)을 입안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부시 1기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대외 정책을 상징해온 인물이 볼턴이다.

부시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메랑 되나

 볼턴은 2001년 봄 자신의 국무 차관 인준 청문회 때도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인준을 통과했다. 당시에는 극우파인 제시 헬름스가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있어 그나마 지원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상원 외교위 공화당 의원 10명 중 그에게 부정적인 의원이 3명에 달했고, 민주당 의원 8명은 전원 결사 반대였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4월 인준 청문회 개최 직전까지 유엔에 대한 볼턴의 경멸적 태도를 집중 부각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청문회 과정에서 그의 성격적 결함이 속속 드러나자, 아예 그의 불미스런 과오를 파헤치는 데 총력을 기울이면서 톡톡한 ‘전과’를 올렸다.

 
청문회가 진행될수록 볼턴에게 불리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그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무부의 유능한 정보분석관 2명에 대해 파면 위협을 가했는가 하면,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전도가 창창한 렉슨 류라는 젊은 외교관을 한직으로 전보시켰다. 

엘리자베스 존스 전 유럽 담당 차관보, 로런스 윌커슨 전 국무장관 비서실장, 존 울프 비확산 담당 차관보,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 등 전직 고위 관리들도 고집불통인 볼턴의 성격을 이구동성으로 질타했다.

 볼턴의 유엔행 길목을 가로막은 최대의 거물은 다름아닌 볼턴의 상관이었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다. 퇴임 후에도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에게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파월의 볼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파장이 컸다.

그는 볼턴의 자질과 관련해 상원 외교위 공화당 중진인 헤이글 의원과 링컨 차피 의원이 자문하자 ‘개인적으로는 물론 정책 사안에서도 같이 일하기 벅찬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파월 장관은 재임 때 지휘 계통을 무시한 채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딕 체니 부통령 등 실력자와의 끈끈한 유대를 무기 삼아 독선적 행동을 일삼았던 볼턴을 괘씸하게 여겨 수석 참모회의에서 일절 배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찰스 프리처드 전 대사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볼턴은 무슨 사안이 있으면 이를 관철하기 위해 국무부 지휘 계통을 통하지 않고 다른 부처를 통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직책상 국무부 소속인 볼턴이 무슨 배경을 믿고 그렇게 처신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점을 풀려면, 볼턴과 부시 대통령과의 인연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공화당 레이건 행정부 시절 공직 생활을 시작한 볼턴은 한때 법무 차관을 거쳐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친인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 치하에서 국무부 국제기구 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그러다가 2000년 하순 대선 때 플로리다 주에서 개표 논란이 벌어지자 변호사 출신인 볼턴은 부시 법률지원단에 합류해 맹활약했다. 그런 볼턴을 두고 딕 체니는 “행정부 내 어떤 자리라도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칭찬했는데, 결국 그는 부시 1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국무 차관을 맡았다. 따라서 볼턴이 재임중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부시와의 이런 돈독한 유대가 아니고선 상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1기 때 독선적인 대외 정책으로 소원해진 유럽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최근 자신은 물론 라이스 국무장관까지 유럽을 순방케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볼턴을 무조건 감싸고 도는 이상 결국 부시 2기의 대외 정책도 1기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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