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사랑의 2차 방정식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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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키워드] 사랑의 뒷감당/<연애술사> <연애의 목적>

 
연정훈·박진희 주연의 <연애술사>(5월20일 개봉)와 박해일·강혜정 주연의 <연애의 목적>(6월10일 개봉)은 신세대들의 ‘연애 방정식’을 풀어가는 영화다. 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이전의 연애 영화들이 그렇듯, 두 영화도 반 발짝 정도 앞선 감성으로 관객과 만난다.

‘기다려지는 유혹, 이 남자 기술이 다르다’라고 관객을 유혹하는 <연애술사>와 ‘앙큼하게 버티고 뻔뻔하게 찝적대고, 넌 맨날 그 생각만 하니’라며 관객을 호객하는 <연애의 기술>은 선전 문구를 통해 영화 속에 많은 ‘연애의 기술’이 담겨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두 영화를 보고 최신 버전의 연애 방정식을 익혀 보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전 문구는 카피일 뿐이다. 걸면 걸리는 ‘작업의 기술’ 따위는 없다. 두 영화에서 남녀가 만나 호감을 형성하고 사랑으로 발전시켜 섹스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은 ‘젊은 남녀가 만났다’는 지문 한 줄로 압축된 듯 보인다. 영화의 대부분은 섹스 이후의 뒷감당에 할애되어 있다.

두 영화의 주인공이 교사인 까닭

<연애술사>의 출발점은 사랑이 아니라 섹스다. 김선아 주연의 <S 다이어리>와 마찬가지로 <연애술사> 역시 화려한 섹스가 지나간 뒤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 <S 다이어리>의 나지니(김선아)가 섹스의 추억으로만 남은 황량한 일기장을 들고 옛 남자들을 찾아 나서듯 <연애술사>의 지훈(연정훈)도 몰래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찾아 추억 여행을 떠난다.

쉽게 만나고 쉽게 섹스하고 쉽게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지훈이 과거의 여자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은 몰래 카메라 때문이었다. 우연히 후배가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에서 지훈의 정사 장면이 담긴 몰래 카메라를 발견하고 이를 지훈에게 알려주자, 지훈은 화면 속 파트너를 찾아 나선다. 

힘들게 기억해낸 화면 속 파트너는 고등학교 미술교사였다. 그는 마술 공연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눈이 맞아 곧바로 러브호텔로 향했던 미술교사 희원(박진희)을 찾아간다. 이름조차 헷갈리는 지훈과 달리 희원은 그들이 관계한 열일곱 번의 정사 횟수까지 정확히 기억해낸다. 수첩에는 정사를 맺었던 장소까지 꼼꼼하게 메모되어 있다.

 
둘은 열일곱 번의 정사를 되새김질하며 러브 호텔을 차례로 확인하러 간다. 이들의 러브 호텔 순례는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고급 호텔을 압도하는 러브 호텔의 화려한 인테리어 때문이다. 관객이 러브 호텔의 화려함에 취해 있는 사이, 영화의 시선은 섹스를 가볍게 생각했던 남자의 시선에서 섹스에 의미를 부여했던 여자의 시선으로 옮겨진다. 둘은 사랑을 복원함으로써 뒷감당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연애술사>에서처럼 우발적인 섹스에 대한 뒷감당은 최근 대중 문화의 중요한 코드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철부지 대학생과의 하룻밤 불장난으로 모진 시집살이를 시작하는 <굳세어라 금순아>(MBC)와 해외 여행 도중 벌인 충동적인 섹스로 생긴 아이를 키우는 젊은 남녀 이야기를 그린 <원더플 라이프>(MBC)에 이어 전생의 연인을 만나 하룻밤 정사를 치르게 되는 <환생>(MBC)이 방영 중이다.  

우발적인 섹스에 대한 뒷감당은 할리우드에서도 중요한 소재다. 섹스가 지천인 세상에서 할리우드가 고민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 찾기다. 할리우드는 우발적인 섹스로 사랑이 남았을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할지를 놓고 고민한다. <우리, 사랑일까요?>는 마음보다 먼저 몸을 회복해 서로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애의 목적> 역시 <연애술사>와 마찬가지로 뒷감당에 대한 영화지만 여기에서의 고민은 조금 다르다. <연애술사>가 사랑과 이별의 순환이 너무 빠른 가벼운 사랑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면, <연애의 목적>은 몇 개의 사랑이 중첩되는 신세대들의 탐욕적인 사랑을 고발한다. <연애의 목적>의 남자 주인공 유림(박해일)과 여자 주인공 홍(강혜정)은 둘 다 애인이 있는 채로 만난다. 영화는 이들이 잉여적인 사랑을 어떻게 소화하고 풀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섹스가 흔해진 시대의 방향 찾기

<연애술사>와 <연애의 목적>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주인공의 직업이 교사라는 사실이다. <연애술사>에서는 희원이 미술교사로, <연애의 목적>에서는 유림이 영어교사로, 그리고 홍은 교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주인공을 교사로 설정하는 것은 근대의 제도와 탈근대의 욕망 사이에 서 있는 주인공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랑 이야기에서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의 대립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을 교사로 설정하는 방식은 브라운관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건빵선생과 별사탕>(SBS) <러브 홀릭>(KBS)에서 공효진과 김민선은 관습의 굴레를 뚫고 남학생과 위태로운 사랑을 키워가는 여선생 역을 맡고 있다.  

<연애술사>와 <연애의 목적>이 우발적인 섹스를 뒷감당하는 방식은 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다시 사랑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연애술사>의 희원과 <연애의 목적>의 유림은 근대적인 율법에 따라 교단을 떠난다. 그러나 부채 의식 때문에 되돌아온 공범과 다시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결말을 맞는다. 그러나 그 결합은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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