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규제 풀면 균형발전위에서 사퇴”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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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단체장 연대 주도하는 김진선 지사 인터뷰

 
수도권 규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5월7일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요구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고,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충돌할 기세다. 또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 등이 대표적인 수도권 기업 규제 정책인 공장총량제를 폐지하고 개발 조항을 완화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비수도권 자치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5월16일에는 강원도 등 전국 13개 시장·도지사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전국 시·도 의회가 연대해 공동 투쟁을 벌일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오는 6월 공공기관 지방 이전계획안이 발표되면 균형 발전 논란이 한바탕 뜨겁게 달아오를 듯하다(한 차례 연기되어 5월 말에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정부가 다시 발표를 연기했다).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시장·도지사들의 공동 성명을 주도하는 등 비수도권 광역단체장의 중심에 서 있다. 시장·도지사로는 유일하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같은 당 손학규 지사의 수도권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김지사를 5월19일에 만났다. 

13개 시장·도지사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도권 문제는 한 지역의 현안이나 숙원 사업을 푸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국가 장래를 결정하는 근간에 관한 문제다. 앞으로  국토 공간 전략을 어떻게 할지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수도권 과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행정복합도시나 공공기관 이전도 수도권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 것인데, 지금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버리면 효과가 없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오히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상당히 염려스럽다. 수도권을 풀고, 거기서 나온 과실을 지방에 나누어주는 방식은 말이 안 된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국가 경쟁력을 근거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중앙의 메이저 신문과 방송은 지방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언로를 막고 수도권 논리만 전하고 있다. 동북아 경제 시대이고, 세계화 시대이다. 수도권에만 집중해 경쟁할 것이 아니고, 한반도 전체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또 경쟁력에는 단기 경쟁력과 장기 경쟁력이 있는데, 계속 단기 경쟁력 얘기만 하고 있다. 수도권에 있지 않으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법칙이라도 있나.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베를린에 있나?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공장을 뉴욕이나 LA에 지었나? 앨라배마에  지었다.

수도권 규제가 시장 경제 원리와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나도 시장주의자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라. 수도권은 포화 상태인데 지방은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그 차이가 너무 엄청나 거의 독과점 상태이다. 독과점이 과대하면 이미 시장이 아니다. 상대적 불균형이 어느 정도여야 경쟁을 하지, 지금 상태에서 시장에 맡겨서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선택과 집중은 필요한 것을 한 군데 모으자는 것이지 모든 것을 한 군데 집중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것은 수도권에 모든 것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면적은 전체의 12%도 안 되는데, 인구 집중도는 48%이다. 지역내 총생산을 따지면 48%가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100대 기업의 91%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4년제 대학 40%가 수도권에 있다. 게다가 매년 수도권 인구가 30만명씩 늘고 있다. 매년 중소 규모 도시 한 개가 수도권에 생기는 것과 같다. 
이런 문제를 얘기하면 수도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공감하다가도 막상 경쟁력을 얘기하면서 규제를 다 풀어주자고 한다. 당장 코앞에 공장을 유치해 경쟁력을 키우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 장래가 걸린 문제다. 참여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원칙을 갖고 상당히 애를 쓰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경기도와 정치권이 하도 반발하니까 힘이 부치는가 보다. 비탄을 금치 못하겠다.

 
수도권이나 수도권 소재 기업이 역차별당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수도권이 이미 블랙홀처럼 인재와 자본을 다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역차별을 당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수도권 북부가 낙후했다고 하는데 지방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외국인 기업은 허용하면서 국내 기업은 왜 규제하느냐고 하는데, 이런 얘기는 내가 보기에 배불러서 하는 소리다. 국내 경제가 어려우니까 외국인 투자 기업은 인정하더라도 11년 동안 유지해온 대기업 수도권 공장 규제를 푸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강원도는 어떤 영향을 받는가?
5년 사이에 6백여 기업이 강원도로 이전했다. 최근 2~3년내 지방으로 이전한 수도권 기업 가운데 3분의 1이 강원도로 이전했다. 대기업의 수도권 신·증설이 허용되면 원주 기업도시 같은 경우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는다. 대기업이 들어오지 않으면 중소기업만으로 기업단지를 만드는 것은 효과가 없다. 지난번에 수도권 규제 완화가 풀린다는 말이 나오면서 이전 협상을 해오던 기업들의 분위기가 소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 부분에 대한 논의가 없었나?
먼저 지방을 육성하고 나서 수도권 관리 대책을 수립하자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먼저 수도권을 풀자는 것처럼 보인다. 지방은 이제 초입 단계여서 아직 가시화된 것이 없는데 수도권을 먼저 푸는 결과가 된다. 비유하자면  지방에는 어음을 발행하고, 수도권에는 현금을 바로 지급하는 꼴이다. 이렇게 가면 곤란하다. 공장총량제를 완화하면 수도권 규제는 다 무너질 것이다. 대기업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면 중소기업에도 허용할 것이고, 결국 대학, 관광·레저시설도 연쇄적으로 허용될 것이다.

이번 수도권 규제 완화는 같은 당 소속인 손학규 지사가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손지사와 개인적으로 친하고, 경기도와 강원도는 인접해 있다. 하지만 나는 강원도의 이익과 관련한 지역주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수도권 문제를 어쩌려고 그러는가.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사람에게 묻고 싶다. 수도권 이기주의라고 본다.

한나라당 소속인데, 당의 대응은 어떤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가 장래와 미래를 위해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표만 생각한다. 한나라당도 공공기관 이전이나 지방 분권과 관련해서 참여할 것이 있으면 참여해야 한다. 표만 계산하지 말고 수도권 문제나 지방 균형 발전 문제에 대해 당 정책이 있어야 한다.  당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수도권 이기주의 논리로 국가 균형 논리를 덮으려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공공기관 이전 계획안을 6월에 발표한다는데.
공공기관 이전과 행정복합도시는 국가 균형 정책의 수단이다. 지방에서는 좀더 이전 효과가 큰 기관이 왔으면 좋겠지만 큰 틀에서 수용해야 한다. 강원도에 어떤 기관이 와도 공공기관 이전 계획을 수용하겠다.

공공기관 이전계획에 지역민이 실망해 반발할 수 있는데.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기준을 명확히 고려해 배분하려고 노력한다고 본다. 전남이나 강원도처럼 낙후도가 높은 지역은 배려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합리적 결정을 할 것이라 고 믿고 수용할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하나 하나 반발하면 큰 틀이 흔들려 버린다. 정부나 균형발전위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반발이 있더라도 내가 지역민을 설득하겠다.

공공기관 이전보다는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맞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효과가 없다. 그럴 경우 행정복합도시가 무슨 소용인가? 나뿐만 아니라 수도권 규제 완화 얘기가 나오면서 다른 시장·도지자들도 분위기가 강경해졌다.

김지사의 생각과 달리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숨을 쉬며) 지방에서 무슨 수단이 있나. 솔직히 답답하다. 마이동풍인데. 삭발하거나 할복할 수도 없고. 비수도권 시·도와 연대해 싸우겠다. 정부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본다. 정부의 기본 인식에 성원을 보내고 싶은데, 결과적으로 규제를 푼다면 최종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경기도지사와 싸워 결론을 낼 일이 아니다. 추이를 지켜보다가 더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확실해지면 시장·도지사 대표로 균형발전위원회에 들어가 있는데 사퇴할 생각이다.


김진선 강원도지사 약력
1946년 강원도 동해 출생. 동국대 행정학과. 행정고시 15회. 강원도 영월군수·강릉시장. 경기도 부천시장. 강원도 행정부지사. 32대·33대 민선 강원도지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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