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동연 쇼크’는 정계개편 신호탄?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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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중앙위원직 사퇴→호남 세력 규합→새 판 짜기 가능성
 
계획대로라면 지난 6월8일은 열린우리당에게 ‘뉴 스타트 운동의 날’이어야 했다. 문희상 의장은 이 날 오전 8시30분 확대간부회의에서 24시간 의원 당직실을 만들고, 현판식을 시작으로 분위기를 일신하자고 했다. 덕유산에서 있었던 의원 워크숍을 끝으로 ‘아무 짝에도 소용 없는 개혁-실용 논쟁’도 끝내자고 말했다. 그런데 현판식이 끝나자마자 상황은 돌변했다. 염동연 의원이 돌연 상임중앙위원 직에서 물러난다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당 지도부의 결의는 지도부의 일원이던 염 의원의 사퇴로 무안하게 되었고, 당 내분이 새로운 국면으로 ‘뉴 스타트’한 꼴이 되었다.

염의원이 당직 사퇴를 한 것은 ‘염동연 쇼크’라고 할 만했다. 기자회견 이후 당 안팎은 어수선했다. 만나는 이마다 ‘왜 그랬대요?’라고 서로 물었지만, 두 달 전에 2등으로 상임중앙위원에 당선한 염의원이 갑작스레 사퇴한 이유에 대해 누구 하나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돌았던 검찰 내사설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한 의원은 “검찰 관계자를 최근 만났는데, 별로 특별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한 여권 인사는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사퇴 이유가 뭐냐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청와대도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당의 한 관계자는 “개혁파든 소장파든 지지도가 추락하는 상태에서 더 이상 당 내분을 확대하지 말고 당을 추스르자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염의원이 사퇴한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오리무중 상황에서 당 지도부는 단합할 수 있는 계기로 삼자고 했지만 파장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염동연 의원이 사퇴한 다음날 언론 인터뷰에서 “문희상 의장의 리더십 부재 때문에 상임중앙위원 직을 사퇴하게 됐다”라고 문의장과 개혁파 양쪽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다.

“상임중앙위원으로서 할일이 거의 없었다”

염의원이 주장하는 사퇴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개혁파에게 당이 끌려 다닌다며 문희상 의장의 리더십을 문제 삼은 것이다. 염의원은 그동안 민주당 합당론, 기간당원제 문제를 두고 개혁파와 갈등해왔다. 그는 4·30 재·보선 패배 이후 구성된 혁신위 인선을 예로 들었다. 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혁신위 구성 과정에서 염의원과 개혁파 사이에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 염의원이 선거법 문제가 남아 있는 한 의원을 혁신위원으로 추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논의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다. 당의장 경선에서 2등으로 상임중앙위원에 당선한 것에 비해 당 지도부 안에서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염의원은 “상임중앙위에서 혁신위 구성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 자리에서 혁신위원장에 한명숙 위원, 부위원장에 유시민 의원을 지명하더라. 나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퇴 기자회견이 있고 나서 한 당직자가 염의원 보좌진에게 전화를 했는데 ‘상임중앙위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느냐’는 항변만 들었다는 후문이다. 이런 무력감에 ‘난닝구-빽바지’ 논쟁에서 난닝구의 대표선수 격으로 집중 공격을 받은 것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염의원이 사퇴를 결심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호남권 소외’에 대한 불만이다. 염의원은 “청와대의 정무직을 제외한 비서관 49명 가운데 광주 전남 출신은 2명에 불과하다. 지역에서 도대체 이럴 수 있느냐고 분개한다”라고 말했다. 이해찬 총리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도 호남고속철 발언 등 호남권의 팽배한 불만을 표출한 측면이 있다.

염동연 의원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검찰 내사 관련설’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보다는 호남발 정계개편설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우선 염의원을 자극한 호남의 민심 이반도 심상치 않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6월2일 실시해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17.4%를 기록해 33.3%를 기록한 한나라당보다 15.9%포인트 뒤졌다. 지난 5월 조사 때와 비교하면 8.3%포인트가 하락했는데, 호남권과 20,30대 등 지지층이 이탈하는 흐름이 뚜렷했다.

 
여기에 다른 호남권 의원들의 흐름이 주목된다. 호남권 의원들이 탈당은 없다고 공동 성명을 낼 정도로 ‘호남권 의원 탈당설’이 돌았다. 김두관 정무특보가 호남권 의원들과 연쇄적으로 면담하기도 했다. 특히 신중식 의원은 ‘40년 지기’인 고 건 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론을 주장하면서 내분이 호남발 정계개편론으로 확산되는 실정이다. 신의원은 염동연 의원의 상임중앙위원직 사퇴에 대해 “대통령 측근으로서 자책의 의미도 있겠지만 민주당과의 통합 문제를 호소하려는 경고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사표를 낸 건 잘했다고 생각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당내에 꽤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염동연 의원의 당직 사퇴로 타격을 입은 문희상 의장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문의장은 지난 6월9일 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에게는 엄청난 잠재능력이 있는데 100분의 1도 쓰지 못하고 있다. 의원들의 역량을 모으고 증폭시키는 볼록렌즈가 되겠다’라고 말했다.

지도부가 단결을 호소하지만 아직은 봉합에 가깝다. 염의원의 사퇴로 개혁-실용 논쟁에 ‘지역’ 변수까지 끼어든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직을 던진 염동연 의원이 다음 행보로 호남권을 규합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염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처마에 붙은 불이 꺼지든 아니면 집을 완전히 태우든, 당분간 열린우리당이 화마에 휩싸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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