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는 혼자 하는 것일까?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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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역사문화연구소 학술대회/‘대중독재론’, 정식 논제로 자리매김

 
스물두 살인 젊은 독일 처녀 조피 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반나치 조직 ‘백장미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나치 비밀경찰에 붙잡혀 처형된다. 그녀의 삶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자, 이제 문제. 그녀의 저항은 독일을 위한 애국심에서 출발했다. 그럼 똑같이 애국심을 명분 삼았던 나치주의자들과 그녀의 ‘코드’는 같을까, 다를까?

같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대중독재론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적을 것이다. 지난 6월19일, 강원도 평창의 한 펜션에서 열린 대중독재 국제 학술대회의 종합 토론에서 한 외국인 패널은 실제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담처럼 꺼냈지만, 대중독재 가설의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임지현 교수(한양대)가 수년 전부터 제기한 대중독재 가설은 저항과 협력이라는 독재 체제를 향한 기존 이분법을 해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국민국가를 향한 대중의 열정은 20세기 내내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했고, 민주주의나 독재의 모습으로 외화되었다. 따라서 대중의 동의는 민주주의뿐 아니라 독재 체제를 유지시킨 동력으로도 똑같이 작용했다는 것이 대중독재론의 핵심이다. 미하일 빌트 씨(독일·함부르크사회연구소)는 대중독재론이 정치사상사적으로 의미 있는 가설임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독재 체제가 대중의 동의에 입각해 있다면 그 체제는 민주주의일까, 독재일까? 대중독재의 틀에서 보면 민주주의와 독재, 근대와 전근대를 가르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대중독재론은 제기되자마자 국내외의 격렬한 반론을 불렀다. 비판의 내용도 독재를 정당화하는 논리라는 비난부터 ‘모두 다 책임이 있다는 임지현식 과거 청산은 나르시시즘적 자기 반성에 갇힐 소지가 있다’는 지적까지 다양하다. 그러는 사이 임교수의 가설은 몇 차례 학술대회와, 반론과 재반론을 통한 정제 과정을 거치면서 학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모습이다. 지난 6월17~19일, ‘대중독재, 욕망과 미망 사이’를 주제로 열린 국제 학술대회는 대중독재 가설이 학계에 정식 논제로서 ‘주민등록’을 부여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북한·중국 사례 연구 ‘눈길’

2003년, 2004년 열린 두 차례 국제 학술대회가 대중독재의 위로부터의 동의 창출 메커니즘에 집중했다면, 올해 대회의 목표는 대중독재의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파헤치는 것이었다. 20세기 독재 체제를 욕망의 생산자로서의 독재 체제와 욕망의 소비자로서의 대중 사이의 일종의 시소게임으로 파악한 알프 뤼트케 교수(독일·에어푸르트 대학)의 논문이 대표적이다. 또한 찰스 암스트롱 교수(미국·컬럼비아 대학)와 미하엘 쉔할스 교수(스웨덴·룬트 대학)는 북한의 정권 수립과 중국 문화혁명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젊은 세대의 욕망이 독재 체제를 떠받치는 이념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임지현 교수는 대회 마지막 날 <대중독재 연구에 대한 회고적 전망>이라는 글을 발표하고, ‘얽혀있는 역사(entangled history)’라는 맥락에서 20세기 독재를 비교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박정희 체제와 김일성 체제는 일본의 총력전 체제에서 배운 것이며, 일본의 총력전 체제는 나치즘에 토대를 두고 있고, 나치즘 또한 볼셰비즘의 존재 없이 생각할 수 없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번 학술대회 성과물은 곧 영국의 학술지 <전체주의 운동과 정치종교>에 특집으로 실린다. 국내에는 내년 2월쯤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는 국내 학자들을 초청해 학술대회를 열 계획도 세우고 있다. 9, 10월쯤 있을 대회에는 조희연·이병천 교수 등 대중독재론을 비판한 학자들이 대거 초빙될 계획이어서 불꽃 튀는 논전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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