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이 보물단지 되나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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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7~8곳, 공무원·주민 똘똘 뭉쳐 방폐장 유치 나서
 

역시 돈의 힘은 강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죽어도 우리 지역에는 핵 폐기장을 건립할 수 없다’고 반대하던 지자체와 주민들이 최근에는 중·저 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을 유치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방폐장을 유치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방폐장 유치 경쟁에 뛰어든 지자체는 군산·경주 등 7~8곳. 이들 지역에서는 공무원뿐 아니라 해당 지역 대학교수, 시민단체, 주민들까지 유치 경쟁에 나섰다.

님비 누른 ‘돈’의 위력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는 전라북도이다. 전북도청 공무원들은 방폐장 유치를 위해 휴대전화 컬러링을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안전하고 깨끗한 중저준위 원전센터 유치! 전북 발전의 꿈은 이뤄집니다. 도민 여러분의 소중한 뜻을 모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휴대전화 컬러링에 담았다. 전북도청 전체 직원 1천6백여 명 가운데 1천4백여 명이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라북도 지자체 가운데서는 군산시가 가장 열성이다. 군산시는 방폐장을 유치하기 위한 ‘국책사업추진팀’을 시청 기구로 만들고, 군산대학교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민간 기구도 만들었다. 올 1월에 출범한 군산시 국책사업추진팀은 공무원과 주민들에게 원전 시설을 견학시키며 방폐장 건립 필요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조병찬 군산시청 국책사업추진단장은 “영광 원자력발전소와 대전 원자력환경연구소를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뜻에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현장 견학을 보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군산 공무원 7백여 명이 모여 ‘원자력을 바로 알고 사랑하는 모임’(원사모)도 결성했다. 원사모는 거리로 나가 방폐장의 안전성을 홍보하며 유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주·포항·울진·영덕 등 4개 지자체가 방폐장 건립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경상북도에서는 도의 관심보다 각 지자체별 유치 경쟁이 더 뜨겁다. 경주에서는 95개 시민·사회 단체가 모여 국책사업 경주 유치 추진단을 만들고, 정부와 주민 홍보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주시국책사업추진단은 읍·면·동·리 단위 별로 20명 이상씩 단원을 확보하고, 주민들을 1 대 1로 만나 설득하고 있다.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브라질과 경기를 벌이던 날에는 운동장에 설치한 대형 TV를 통해 원전수거물센터의 안전성과 유치 필요성을 강조한 홍보물을 상영하기도 했다. 또 청와대를 방문해 원전센터가 경주에 건립될 당위성을 설명했다.

시장이 원전센터를 유치하겠다고 밝힌 포항은 대다수 주민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포항공대 교수들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방폐장과 함께 양성자 가속기가 포항에 들어올 경우 포항공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중·저준위 폐기물만 처리해 거부감 낮춰

이밖에 주민 2천여명이 부지 조사를 청원했던 영덕과 원전센터 지질조사 굴착 작업이 진행 중인 울진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삼척과 영광에서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유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년 가까이 기피 대상 1호였던 방폐장이 올해 들어 갑자기 지자체의 보물단지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군산 시내에서 만난 택시 기사 송중기씨는 “방폐장이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혐오 시설인데, 경기가 좋을 때야 우리 시로 가져오고 싶겠는가. 하도 불경기이고 먹고 살 만한 것이 없어 젊은이들이 계속 떠나니 군산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유치해야 되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김동식 경주시국책사업추진단 집행위원장도 “경주에서 방폐장을 유치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경제 효과 때문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정부는 특별법까지 만들어 유치 지역에 막대한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방폐장을 유치하는 지자체에는 특별지원금 3천억원을 주고, 방폐장이 가동되면 연간 85억원 가량의 반입 수수료를 지자체에 지급하기로 했다. 또 방폐장을 유치하는 지역에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를 이전하고,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양성자가속기를 개발해 설치하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한수원 관계자는 “본사를 이전할 경우 해당 지자체는 연간 42억원 가량의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수 있고, 인구 유입이나 고용 증대, 관광 수입 등으로 3천5백억원 이상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지자체들은 양성자가속기를 가져가게 되면 그 규모가 미국 유럽 다음으로 큰 것이어서 해당 지역 대학을 첨단 연구 산업의 메카로 도약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군산대학교와 포항공대 교수들까지 유치 경쟁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최연성 교수(군산대·전자정보학)는 “양성자가속기를 우리 대학에 가져올 경우 원자력 핵심기술 개발과 함께 BT, IT 등과 연계해 최첨단 연구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과거와 달리 방폐장 건립에 우호적인 또 다른 이유는 방폐장이 중·저 준위 방사성 폐기물만을 매립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고준위(사용후핵연료)를 함께 폐기할 계획이었으나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 정부는 고준위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저 준위 폐기물만 보내기로 한 것이다. 중·저 준위란 원자력발전소나 병원, 연구기관 등에서 원자력을 이용하는 데 사용했던 물건들로, 고준위 폐기물에 비해 방사성 방출량이 많지 않다. 또 선진국에서는 중·저 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인정하는 편이다.

그러나 방폐장 건립에 따른 해묵은 갈등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역 주민이 모두 환영하는 것은 아닌 데다 환경단체들이 방폐장 건립 저지에 나설 계획이기 때문이다. 환경운동 단체들은 찬반 양론이 나뉘며 지역사회가 분열될 것을 뻔히 알지만, ‘눈물을 머금고라도’ 반대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운동연합 이상훈 사무국장은 “고준위에 비해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3백년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기업도 아닌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돈을 미끼로 해서 지자체간 경쟁 구도로 몰고 가는 데 있다”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유치 경쟁을 벌이는 동안 지역 주민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고, 최종 선정에서 탈락한 지자체는 얻은 것도 없이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년 전 핵 폐기장 건립 문제로 주민끼리 큰 갈등을 빚었던 안면도의 경우,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라고 이상훈 국장은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6월16일, 방폐장 후보 부지 선정 등에 관한 공고를 발표하고 오는 8월 말까지 유치신청서를 받는 등 사업을 계획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2008년이 되면 울진 원전을 시작으로 폐기물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이다.  

방폐장 건립 추진 일지 


@1986년~1996년까지 과기부(원자력연구소)에서 5회에 걸쳐 부지확보 추진했으나 실패

- ‘86~’89 영덕, 영일, 울진

- ’90 안면도

- ‘91~’92 청하

- ‘93~’94 장안, 울진

- ‘94~’95 굴업도

@ ‘97.1월 산자부로 소관업무 이관 및 한국전력으로 사업자 전환

@ 2000.7 ~ 2001.6 유치공모에 의한 부지확보 추진

@ 2003.2.4 ‘제 252차 원자력위원회’ 동/서해안 각 2개소 4개 후보부지 발표

    - 동해안 : 영덕군 남정면 우곡리 /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 서해안 :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 2003.4.15 : 양성자 가속기 사업과 연계 추진 결정

   - 전 지자체를 대상으로 자율유치 신청기간 운영 (2003.5.1~7.15)

@ 2003.7.15 : 부안군 단독신청으로 자율유치 신청기간 마감

@ 2003.7.24 : 위도 방폐장 부지로 선정(부지선정위원회)

   - 지역 반대로 실패

@ 2004.2.5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부지공모

   - 5.31 유치청원 접수결과 7개시군(10개 지역)에서 청원제출

   - 예비신청 마감일인 지자체장의 예비신청이 없어서 무산

@ 2005.3.31 특별법 공포

   -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 분리

   - 특별지원금 3천억원을 비롯한 지역 지원 법제화

@ 2005.6.16 절차공고

@ 2005.8.31 지자체장 유치신청 접수 마감

@2005. 9.15 부지선정 위원회 부지적합성 평가, 산업자원부장관 주민투표 실시 요구

@2005. 11월 중 주민투표 실시 및 후보부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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