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모를 먹거리 라면의 비밀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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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륨 과다 함유로 구설에 올랐던 ‘국민 식품’ 라면이 방사선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도대체 라면이 어떻게 만들어지기에 이런 잡음이 잇따를까.

 
“인류 역사상 가장 맛있는 발명품은 라면이다.” 국내 한 라면 회사의 홍보 문구이다. 공격적인 이 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라면은 지난 반 세기 동안 ‘식품업계가 낳은 20세기 최대 걸작’(이마무라 고이치)으로서의 지위를 누려 왔다. 

세계라면협회(IRMA)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전세계에서 팔려 나가는 라면은 약 5백50억 개. 이 중 중국이 1백50억개, 일본이 54억개, 인도네시아가 62억개, 미국이 20억개를 소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미국의 중간인 38억개다. 라면 38억개를 차곡차곡 쌓으면 그 높이만도 에베레스트(8,848m) 8만5천8백95개를 합쳐 놓은 것과 맞먹게 된다고 호사가들은 말한다.  

그뿐인가. 라면 전체 소비량으로는 세계 4위지만 1인당 라면 소비량으로만 따진다면 한국은 단연 으뜸이다. 지난해 한국 사람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은 라면은 무려 84개에 달한다. 라면 최대 소비국이라는 중국(1인당 15개)은 물론 라면 종주국이라는 일본(1인당 40개)도 가볍게 제친 수준이다.   

 
이쯤이면 라면은 한국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라고 주저없이 부를 만하다. 미국 사람들이 햄버거 갖고 유난을 떨듯 한국 사람들이 라면을 요모조모 따져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럴 만한 여건 또한 곳곳에서 조성되고 있다. 지난 5월19일 서울환경연합은 기자 회견을 갖고 국산 라면에 나트륨이 과다하게 함유되어 있다고 폭로했다. 나트륨은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이기는 하지만 과다 섭취할 경우 고혈압·동맥 경화는 물론 칼슘 배설로 인한 골격계 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 

이에 대해 라면 제조 업체들이 자정 약속을 발표한 것도 잠시. 한 달 뒤인 6월15일에는 영국 식품표준청(FSA)이 한국산 농심 라면·스낵류 20여 종에 대해 ‘식품 경보(Food Alert)’를 발령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회사가 방사선을 쬔 원료를 제품에 사용하고도 이를 포장지에 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적으로 허용된 기준치 이하로 방사선을 쪼인 식품의 경우 인체에 유해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의 설명이다. 다만 유전자재조합식품(GMO)처럼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 방사선 조사 사실을 표기하게끔 했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참조). 

농심 “라면 완제품에 방사선 처리한 일 없다”

그런데 정작 어리둥절한 일은 그 뒤에 발생했다. 농심측이 7월4일 신문 광고를 통해 ‘우리는 영국 식품위생법에 적합한 제품을 생산 수출하였으며 방사선 살균 처리는 하지 않았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정말로 자사 제품에 방사선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일까? 

동종 업계의 반응은 모호하다. 자사 라면에 방사선 처리를 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해 노코멘트하겠다는 경쟁 업체의 한 관계자는 “그래도 농심이 그렇게까지 과감하게 치고 나올 줄 몰랐다”라며 난감해 했다(현행 국내법상 라면에 방사선 조사 처리를 하는 것은 합법이다).

신문 광고에서와 달리 이에 대한 농심측의 반응도 불분명하기 짝이 없다. 농심의 한 관계자는 “농심 차원에서 라면 완제품에 방사선 처리를 한 일은 분명 없지만, 스프 원료까지 장담할 수준은 아직 아니다”라고 말했다. 곧 외국에서 수입한 스프 원료의 경우 그 나라에서 방사선 처리한 재료가 일부 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원료 분석을 통한 역추적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농심은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모든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고 호언했다.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농심은 ‘거짓말 기업’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수출 업체가 방사선을 쬔 재료를 농심 몰래 스프 원료로 사용했다 는 사실이 뒤늦게 들통 났다고 해서 농심이 최종 관리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소비자들을 더 헷갈리게 만든 것은 농심측의 전과(前科)이다. 이번 사태가 터지자 농심은 2003년 스위스에서도 방사선 조사 미표기 일방적으로 판매 중단을 당한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농심측은 이것이 ‘비정한 국제 경쟁’에서 비롯한 일이라고 해석했다. 당시에도 판매 중단 조처를 당하자마자 자기네가 개척해 놓은 수출 시장을 외국 경쟁사가 대신 차지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방사선 조사가 사실이었는지에 대해 농심측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소비자들이 정작 궁금해 하는 것은 그 대목인데도 말이다.

방사선 문제뿐만이 아니다. 라면에 관해 소비자들이 알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건만, 라면 옹호론자와 라면 비판론자의 주장은 너무도 극명하게 엇갈리고만 있다.

비판론자들이 말하는 ‘라면의 5대 해악’

비판론자들에게 라면은 쓰레기 음식(정크푸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앞서 라면을 ‘20세기 최대의 걸작품’이라 치켜세우는 듯했던 일본의 건강 저널리스트 이마무라 고이치는 뒤이어 ‘(그렇지만) 21세기에는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식품이 라면’이라며, 라면의 뒤통수를 호되게 후려친다. 

 
비판론자들이 라면을 제대로 된 음식 취급을 안하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이다. 일단은 영양 불균형이다. 봉지 라면 1개의 열량이 450kcal 안팎인 데 비해 탄수화물은 65g, 단백질은 9g, 지방은 14g이다. 이같은 라면을 두고 영양학자들은 ‘열량은 높으면서 영양은 별로 없는 식품’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에 대해 라면 회사들은 라면이야말로 영양소가 고루 함유된 식품이라는 주장을 편다. 특히 스프에 채소·버섯·해산물 등을 제대로 첨가하기만 하면 단백질·광물질·비타민 류를 다양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농심 홈페이지).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같은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를 펴낸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http://ecoi.eco.or.kr/ )은 채소 스프에 들어 있는 비타민과 무기질 또한 가공 과정을 거치며 상당 부분 파괴되는 만큼 영양이라고 할 것이 별로 없는 식품이 바로 라면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라면을 튀길 때 쓰는 기름이 문제이다. 1989년 발생한 이른바 쇠기름 파동 이후 기업들은 라면용 튀김 기름을 동물성 ‘우지’에서 식물성 ‘팜유’로 교체했다(일부는 콩기름을 쓰고 있다). 그러나 팜유 또한 몸에 해로운 포화 지방산을 50% 가량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라면 회사들은 팜유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안전한 기름 중 하나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영양학자들도 불포화지방산·단일 불포화지방산, 포화지방산을 1:1:1 비율로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장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더욱이 라면 끓인 물을 1차 따라내고 다시 끓이면 라면 기름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양이나 기름보다 더 큰 문제는 라면에 다량 들어 있는 나트륨과 식품 첨가물이 야기한다. 세 번째로, 나트륨 문제를 먼저 보자. 최근 3년간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린 라면 열한 가지를 대상으로 나트륨 함유량 조사를 한 서울환경연합은, 이들 라면 1개당 나트륨 평균 함량이 2,075mg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 나라 1일 나트륨 섭취 기준치(3,500mg)의 59%에 해당한다.

문제는 한국의 나트륨 섭취 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게 책정돼 있다는 것. 곧 미국(1,500mg)이나 세계보건기구(1,968mg) 기준을 놓고 본다면, 한국인들은 라면 한 개를 먹는 것만으로 이들의 1일 기준을 훌쩍 넘어서는 나트륨을 섭취하고 있는 셈이다(여기에다 김치까지 곁들이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

“라면 스프의 30~40%는 짠맛 내는 성분”

 
사실 라면이 ‘소금덩어리’라는 것은 일반에게도 상식에 속한다. “라면 스프의 30~40%는 짠 맛을 내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라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나트륨은 면에도 다량 함유되어 있다.  

나트륨 과잉 함유가 문제라는 데 대해서는 라면 업체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농심·삼양·한국야쿠르트 등 라면 제조 업체들은 이번 파문이 터지자 △스프 양을 줄이고 △나트륨 함량을 최소화하며 △라면 봉지에 나트륨 과다 섭취에 관한 주의 경고문을 넣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나트륨 함량을 줄이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 거대 라면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나트륨을 낮추면서 종래의 라면 맛을 유지하기가 현재 기술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네 번째인 화학 조미료 문제에도 해당한다. 라면에는 화학 조미료·향료·색소·유화제·안정제·산화방지제 등을 포함한 각종 식품 첨가물이 함유되어 있다. 라면 봉지에 씌어 있는 성분 표시를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이들 식품 첨가물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 표기되지 않은 식품 첨가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전통을 자랑하는 한 라면은 스프에 ‘56가지 원료’가 포함되어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라면 봉지에 쓰여 있는 스프 원료는 여덟 가지뿐이다. 정제염, L-글루타민산나트륨, 설탕, 조미분 에이(돼지고기), 씨제이-1(대두) 순이다. 

이 중 ‘조미분 에이’나 ‘씨제이-1’은 반제품의 브랜드명이 그대로 표기된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도 그 성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라면 비판론자들은 이처럼 알 수 없는 화학 성분으로 만들어진 스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라면 회사가 이들 성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제조 노하우 유출을 걱정해서일 뿐 안전성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라는 것이 거대 라면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코카콜라 성분이 비밀에 부쳐져 있듯 자기들 또한 라면 성분을 시시콜콜히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라면 봉지에 밝혀 놓은 스프 성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L-글루타민산나트륨이다. 이는 MSG로 잘 알려져 있는 화학 조미료의 일종인데, 한마디로 라면의 감칠맛을 좌우하는 성분이라 할 수 있다. 다량 섭취할 경우 두통·무력감·간경변·지방간·생리 이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MSG의 해악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경고한 바 있다. 

문제는 이를 알면서도 MSG를 쓸 수밖에 없는 라면 회사들의 속사정이다. 삼양라면의 한 관계자는 “나트륨과 MSG는 라면 맛을 좌우하는 양대 축이다. 라면 회사들은 이를 대체할 만한 재료를 아직 찾지 못했다”라고 잘라 말했다.

화학조미료 MSG 안 쓰면 망한다?

 '무 MSG'를 표방하고 나선 라면들이 시장에서 줄줄이 실패를 맛본 데서도 이는 입증된다. 1990년대 초반부터 MSG를 넣지 않은 라면을 개발해 출시해 온 (주)우리밀 김봉섭 상무이사는 “웰빙, 웰빙 하면서도 소비자들이 MSG의 강렬한 맛은 떨치지 못하는 것 같다. 소비자들이 너무 오래 MSG 맛에 길들여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맵고 짠, 강렬한 맛을 선호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실험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2000년 오뚜기중앙연구소가 ‘라면 스프류의 감미(感味) 성분’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나트륨·MSG·당 세 가지 함량이 높은 라면을 전반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밖에도 라면은 당 지수(GI)가 높은 식품이라는 점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안병수 후델식품건강연구소 소장의 지적이다(체내에 흡수되었을 때 혈당치를 빠르게 올려주는 식품을 당 지수가 높은 식품이라 한다).

전직 제과회사 간부 출신으로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국일미디어 펴냄)이라는 책을 최근 펴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안씨는 “적은 양으로도 혈당치를 급상승시키면서 공복감을 해소시키는 대표적인 식품이 라면인데, 이를 지속적으로 탐닉할 경우 신체 대사에 빨간 불이 들어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높은 당 지수는 가공 식품 및 패스트푸드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당 지수 높은 음식을 장기간 섭취할 경우 당뇨·비만은 물론 신체의 혈당 관리 시스템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영양학자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라면 회사들은 라면의 당 지수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운 감자(85) 떡(82) 도넛(76)은 물론 흰 쌀밥(75)에 비해서도 라면의 당 지수(73)는 낮은 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쌀밥의 경우 다른 반찬을 곁들여 먹게 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당 지수가 내려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안병수씨의 반박이다.  

라면의 종주국이라는 일본에서는 라면 때문에 건강을 해쳤다는 피해자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한다. 오사와 히로시 교수의 <식원성증후군>에는 라면을 주식으로 삼던 대학생이 갑자기 사망한 사례, 라면을 늘 상자로 구입하던 어느 가정의 어린이가 숨진 사례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에서 이같은 비극이 없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안병수씨는, 라면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한국인 특유의 식습관이 비극을 막았을지도 모른다고 유추한다. 김치에 포함된 풍부한 섬유질이 식품 첨가물의 폐해를 완충시키고, 당 지수도 낮추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요행을 바랄 수는 없는 일. 이제는 라면 업계 스스로 웰빙 흐름에 걸맞게 라면의 유해성을 줄여 가려고 노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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