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의 힘' 살가도 사진전
  • 사진부 ()
  • 승인 200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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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젊은 사진가들은 저마다 하나씩 컨셉트를 잡아 인덱스 같은, 아카이브 같은,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증명 사진 같기도 한 사진들을 찍고 선보인다. 아이디어 경쟁을 벌이듯, 누군가 안 찍은 소재를 공들여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개념을 도상화한 사진들을 벽면에 걸어 놓는다. 주로 일상을 소재로 해서 주변 풍경을 촬영하는 이러한 사진들은 유럽 다큐먼트 사진의 경향을 상당 부분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다큐먼트 개념은 오늘날 상당한 미학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진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은 예술과 다큐먼트 개념의 변증법적 조화가 현대 사진의 새로운 조망점을 제공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구축하고 상징화해 재정립하는, 작가가 사고를 통해 꿰뚫는 현실을 반영하는 작업이다. 이런 인식이 배제된 다큐멘터리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나 창백한 아카이브로만 머무를 것이다.

그런데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같은 애매한 사진이 소재만 달리하면서 부쩍 증가한다는 점이다. 주제가 분명하지도, 첨예한 지식과 감각 문제가 동반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미세하고 소소한 것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예술적이지 않고 논쟁거리를 만들지 않는 다소 빈약하고 싱겁고 비심미적인 이미지들이 무척 증가했다. 그런 것들이 일상의 미학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런 우려를 지니고 있던 차에 마침 세바스티앙 살가도(1944~)의 사진전이 열렸다(서울갤러리, 9월 3일까지, 02-733-6331).

살가도는 브라질 출신 사진가다. 그는 원래 경제학을 전공하고 상파울루 재무부에 근무하다가 폭력적 군부 정권이 들어서자 파리로 이주했다. 일종의 정치 망명이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농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커피협회에서 아프리카의 커피 경작 관련 일을 보던 중 기아와 난민, 학살과 내전, 빈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참상에 눈을 뜬 그는 ‘경제학 보고서’가 아닌 ‘사진 보고서’를 기록하고자 결심했고,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길을 걸었다.


전세계 난민들 ‘고통의 피난길’ 낱낱이 기록

 
건축을 전공한 부인 덕에 사진에 관심을 가졌던 그가 본격적인 사진가의 길을 간 것은 무엇보다도 제3 세계의 참상을 전하는 데 사진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제3 세계 출신인 그는 구미인들이 보듯 제3 세계를 비참하고 낙후한 지역으로 보는 시각에 머무르지 않고 그 같은 곤경 속에서도 밝고 힘에 넘치는 긍정적인 삶을 다루었다. 그는 “경제 보고서를 쓰는 것보다 사진을 찍는 것이 나에게는 열배나 더 즐거움을 준다. 사진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살가도는 여론에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들, 잊힌 사람들,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소외된 이들을 주로 촬영했다. 그가 이런 일에 자신이 모든 열정을 투여할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 사진 기자로 활동하던 때 그는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을 취재하러 갔다가 존 힝클리의 저격 사건을 목격하고 촬영함으로써 일약 유명해졌다. 그 사진으로 인해 그는 엄청난 재력을 얻었다.

이후 자신만의 사진을 찍기로 결심한 그는 1986년부터 6년 동안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이때 그는 23개국 마흔두 군데 일터에서 혹독한 중노동에 시달리는 육체 노동자의 모습을 찍었는데, 한결같이 먹을것을 마련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장엄하고 눈물겨운 투쟁 장면들이다. 흑백 사진 속에 들어와 박힌 이 일하는 사람들의 몸은 지구상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치열한 노동이 무엇인가를 절규처럼 전해준다. 보는 이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충격적인 흡인력은 세상 껍질의 피상적 기록을 벗어나 그 내부로 들어가 만난 절실한 내용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사진으로 쓴 서사시다. 살가도는 1990년대 초부터 전세계 피난민들의 피난 길을 동참해서 그 참상을 고발하는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 안에는 폭력과 혼돈의 흔적, 그리고 온갖 역경에도 실낱 같은 희망을 추구하는 절박한 이들의 몸짓이 기록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사진은 모두 1백73점인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살가도의 사진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그의 명성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데 큰 장애가 없어 보인다. 함께 전시를 보았던 한 평론가는 백번쯤 다시 와서 보아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이 번성하고 별별 사진들이 모자람 없이 다 쏟아져 나오는 우리 사진계에 다소 고전적이고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이 다큐멘터리 사진이 새삼 감동을 주고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를 사진하는 이들은 새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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