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결 최종 단계는 김정일 -라이스 담판?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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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 회담 복구’ 끌어낸 남북한·미국·중국 막후 움직임 전말 /‘힐 프로젝트’ 효력 발휘

 
7월9일 있었던 ‘크리스토퍼 힐-김계관의 베이징 극비 회담’은 한반도 냉전 종식사에 분기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에 빗대면, 7월9일 이전의 모든 흐름이 ‘베이징’으로 흘러들었고 여기서 새로운 물줄기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힐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극비 회동 과정을 추적하는 일은 바로 북핵문제를 정점으로 형성된 동북아 정세의 복잡 미묘한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일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길이기도 하다. ‘6.17 김정일-정동영 회담’을 계기로 본격화된 ‘힐 프로젝트’의 이면을 추적해본다.

힐 프로젝트의 시작: 김정일-정동영 회담에 대해 미국 조야는 비교적 냉소적이었다. 김위원장이 ‘미국과 조건이 맞으면 7월 중이라도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한 부분에 대해  날자를 못 박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정치적 제스쳐로 폄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현장을 중시하는 노련한 협상가 힐 차관보는 달랐다.

정동영 장관이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고 있을 때 그는 서울로 날아와 정 장관을 기다렸다. 6월18일 시내 모 호텔에서 정장관으로부터 대화 내용을  브리핑 받은 그는 뭔가 기회가 왔다는 점을 직감했다. 국내의 대북 전문가는 “김.정 회동을 계기로 김정일 위원장의 속내가 처음으로 알려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힐 차관보가 바로 그 점을 놓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으로 복귀한 힐 차관보는 곧바로 김위원장 발언의 진의 파악에 나섰다. 국무부 한반도 데스크에 비상이 걸렸다. 디트러니 대사를 통한 뉴욕 채널의 가동과 힐 차관보가 직접 구축한 중국과의 핫라인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중국 채널의 활용 : 중국은 그동안 북한과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북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한  북측으로부터 김 위원장 발언 내용을 이미 상세히 전달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힐 차관보와의 접촉을 통해 중국 내에서 그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정도로 쌓여 있었다.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힐 차관보를 적극 추천했던 것처럼 중국 역시 북측에게 힐을 상대로 협상을 할 것을 권유해왔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측은 이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측의 의중을 확인해주고 또한 북미간의 중재를 위한 아이디어 제공 및 북에 대한 설득 등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문제가 있다. 중국은 그동안 김정일 위원장의 6자회담 복귀 선언을 직접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를 중국 외교 또는 후진타오 주석의 위상 강화의 계기로 활용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9월부터 북한과 고위급 인사를 주고받으며 막후 협상을 벌여온 중국으로서는 충분히 기대할만했다.

그런데 정동영 장관이 이를 뚫고 과감하게 대시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7월중 복귀 가능성’이라는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때 중국 측은 서운해 하기보다는  ‘환영한다. 좋은 모양새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힐 차관보를 측면에서 적극 후원함으로써, 회담 날자를 못 박는 외교적 성과를 미국 협상팀의 몫으로 돌리는 대국적 자세를 취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중국은 중국 단독으로 북을 복귀시키는 것보다 한국 미국 등이 참여한 현재의 모습이 부담을 서로 나눈다는 점에서 훨씬 좋은 모양새라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부담 때문에라도 북핵 문제가 조기 해결되기를 희망하는 중국으로서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중국이 7월 중 개최를 위해 적극 움직인 배경에는 일본에 대한 견제와 압박 의도도 깊이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8.15를 겨냥해 야스쿠니를 참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일본 정가에 끈질기게 나돌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7월 중 6자회담 개최’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즉 7월 말 6자회담에 열리게 되면 국제 사회의 관심이 온통 북핵문제 해결에 쏠리게 될 것이고,  이 경우 고이즈미의 운신 폭은 대단히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자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탄을 감수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라이스의 결심: 대중국 채널을 통해 김 위원장의 의중에 대해 나름대로 확신을 갖게 된  힐 차관보는 라이스 국무장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 김 위원장이 정동영 장관 면담에 나와 7월 중 복귀 의사를 밝힌 것은 그 직전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라이스 국무장관이 보여준 전향적인 입장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컸다.

그런데 정작 라이스 장관은 정작 ‘7월중 회담 개최’에는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일본 문제를 염두에 두고 7월 개최를 밀어붙였다면 라이스 역시 바로 일본 때문에 머뭇거렸던 것이다.  즉 6자회담이 열리게 될 경우 미국으로서는  한국 뿐 아니라 일본의 조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고이즈미 총리가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어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시끄러운 문제가 다 지나가는 8.15 이후가 낫지 않을까 라는 게 라이스의 속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힐의 생각은 좀 달랐다.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낸 지금이 찬스라고 본 것이다. 힐 차관보는 대체로 두 가지의 논리로 라이스를 설득했다고 한다. 하나는 이번 기회를 놓쳐 중국이 북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게 될 경우 국무성을 중심으로 한 미국  협상팀의 입지가 대단히 약해진다는 점이다.

체니를 비롯한 네오콘 측에서 당연히 미국 협상팀은 뭐했냐고 할 게 뻔하다.  이 경우 지난 5월31일 부시 대통령이 외교적 해법을 선언하며 협상팀에 실어주었던 무게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국면을 돌파함으로써 미국 내 세력관계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북관계 측면에서도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힐 차관보는 언젠가 의회 청문회 자리에서 ‘언제까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중국에 물어봐야 하나’라고 발언 한 적이 있다. 힐이나 라이스 모두 북과의 직접 채널을 중시하고 있다. 이는 공화당 현실주의자들의 전통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과의 채널 구축을 위해서도 이 기회를 살려한 한다는 것이다.

라이스 장관이 결단을 내리게 된 데에는 힐의 주장대로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점을 그 역시 인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연적인 요소도 동시에 작용했다고 한다. 소위 ‘넬슨 리포트’ 사건이다. ‘한국 대사관의 주문을 받아 비밀리에 작성했는데 이메일 전송을 잘못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다는’ 이 보고서에서 여전히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한반도 정책을 체니 부통령이 주무르고 있다고 묘사한 부분이 라이스 장관을 열 받게 했다고 한다. 즉 이 같은 논법은 주로 일본 측이 구사해온 것으로, 따라서 일본이 뒤에서 장난 친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국무부 측에서 갖게 됐고, 결과적으로 라이스 장관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넬슨리포트가 엉eND한 기여를 한 꼴이 됐다. 넬슨 리포트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한 게 대략 6월24일이었던 점을 보면 라이스의 결단 역시 그 즈음에서 이뤄졌고 그 직후 힐 차관보가 라이스의 한중일 순방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협상안의 마련과 대북 채널 가동: 김 위원장의 진의 파악 외에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모종의 협상안이 필요했다. 바로 이점에서도 중국 측은 여러 가지 중재 아이디어를 힐 차관보에게 제시했고 힐은 이를 참고해 자신의 이니셔티브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바로 AP 등 서방 언론이 잠깐 보도했다가 사라진 ‘HEU(고농축 우라늄) 문제와 군축회담 문제를 상호 연계한 양보안’이 그것이다.


 
즉 ‘4차 6자회담 석상에서 미국은 북한에게 HEU 인정을 강요하지 않고, 북한도 군축회담 주장을 더 이상 앞세우지 않는다’는 이 협상안은 실제로 힐 차관보의 이니셔티브로 만들어졌고, 북한을 베이징 합의로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라이스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방문 중 기자회견에서 고농축 우라늄도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상기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힐이 제시한 안 역시 HEU를 묻고 가자는 것 보다는 이것으로 인해 한 발자욱도 못나가는 것보다는 먼저 해결 가능한 것부터 해결하자는 소위 중국식 ‘구동존이(求同存異)’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북핵문제의 본질은 HEU가 아니라 플루토늄 핵문제라는 점에서도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같은 합의안이 7월9일 당일 김계관을 만난 자리에서 덜컥 도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힐을 정점으로 한  국무부 한반도 팀은 협상안의 사전 조율을 위해 대체로 두 개의 대북 직접 채널을 가동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하나가 이미 알려진 대로 6월30일의 뉴욕 채널이다. 이 채널은 주로 북이 제기해온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 등 정치적 문제를 점검하는 자리였고 어떤 면에서는 밖으로 보이기 위한 자리였던 것 같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 즉 HEU와 군축회담, 그리고 김 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 비핵화’의 내용에 대한 문제 등 협상 타개와  관련한 직접적 내용은 전해 별개의 채널에서 다뤄졌던 것 같다. 즉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 국무부의 미션을 띤 인물이 평양으로 직접 들어가 김계관 부상을 비롯해 김영남 상임위원장 등 최고위 레벨과 심도 깊은 토론을 벌였고,  그가 다시 워싱턴으로 복귀 하자마자 북측은 베이징 회동 날자를 미측에 통고했다. 

대체로 그 때가 7월4,5일 경이다. 북은 동시에 중국에도 같은 내용을 통고했고, 베이징 미팅 직전인 7월7,8일 경 중국 공산당 대표단이 극비리에 평양으로 들어가 북.중간 마지막 사전 조율을 거치기도 했다.

비장의 카드는 라이스 방북? : 7.9 회동 내용과 관련해 아직 공식화는 안됐지만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바로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과 관련한 부분이다. 먼저 힐 차관보가 김계관 부상에게 4차6자회담이 성과를 거둘 경우 자신이 직접 평양을 방문할 의사가 있다고 말을 꺼냈다고 한다.

그러자 김계관 부상이 라이스 장관도 같이 올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힐의 답변은 ‘노’가 아니라  ‘예스’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라이스 장관의 발언 또한 거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방북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일단 계획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생길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핵문제의 마지막 수순은 ‘김정일-라이스 담판’이 될 것이라는 점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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