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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여름휴가, 준비하셨어요?

노순동 기자 ㅣ soon@sisapress.com | 승인 2005.07.18(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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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으로 오라, 저 곳으로 가라. 휴가철이 되니 휴가 정보가 넘칩니다. 기사만 읽다보면 다들 재미나게 휴가를 보내는데, 나만 요모양 요꼴인가 싶습니다. 

  남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며 먹고 사는 편집국은 휴가철이 되면 또 다른 의미에서 골이 아픕니다. 솔직히 차고 넘치는 여행 정보를 따라잡을 길이 없습니다. 서점에도, 인터넷에도 방대하고 정확한 지침들이 그득합니다. 정작 기자들도 휴가 계획을 세울 때는 컴퓨터를 켜고 ‘응응응’에 물어봅니다. 인터넷 검색창, 참 좋습니다. 

  옆 사람을 쿡쿡 찔렀습니다. 휴가 어떻게 보내요? 어디가 좋았어요? 다들 ‘별 게 없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팔을 비틀었습니다. ‘어디가 좋더라’보다 ‘이래서 힘들었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경험많은 사람들일수록 한결같이 ‘어디’보다 ‘누구와,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부끄럽지만, 도시 빈민 수준을 면하지 못한  막내 기자부터 제법 중산층 티를 내는 중견까지 가세한 ‘<시사저널> 식구들의 여름 휴가기’를 싣습니다.  

 

귀차니스트의 휴가기
도서관에서 보낸 여름 한 철

독자들에게 쌈박한 휴가지를 소개하는 ‘진부한’ 기획 대신 엽기 발랄한 휴가 경험담을 싣자는 제안이 편집국에서 나왔을 때만 해도 내가 ‘나의 휴가 유산 답사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자신이 어떤 휴가를 보내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커밍아웃성’ 기획이라니. 지원자들이 줄지어, 빠져 나갔다. 결국 힘없는 내가 맨 먼저 당첨되었다. 휴가기를 쓴다는 말에 아내가 던진 한 마디. “만화책 보는 얘기 써야겠네.”

1998년 한 출판사에 취직한 이래 직장 생활 8년차. 중간에 출판사를 그만두고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던 1년을 제외하고 공식 휴가는 7번이었다. 나의 휴가는 대략 식물형(혹은 시체형) 휴가에 가깝다. 그야말로 그냥 쉰다. 내 기억에 산 좋고 물 좋은 여행지는, 두 번인가 갔다. 나머지 휴가 기간은 도서관과 집에서 보냈다.

   
 
ⓒ시사저널 윤무영
자주 도서관에서 휴가를 보내는 차형석 기자.
 
직장 생활 1년차, 첫 번째 휴가는 도서관에서 보냈다. 현재 아내가 된 애인은 휴가 기간이 달랐다. 휴가는 각자 알아서 하기로. 게다가 명승고적은 너무 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운전면허가 없으므로 ‘승용차로 몇 번 국도를 타고 좌회전 몇 번, 우회전 몇 번 해야 들어간다는’ 안내 글만 보아도 골치가 아팠다. 결정적으로는 돈이 없었다.

도서관에서의 휴가는 제법 짭짤했다. 임철우의 <봄날>, 에릭 홉스봄의 책 등을 들고 갔는데, 휴가 동안 열 권 남짓한 책을 읽었다. 뿌듯했다.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 직장 선배들이 어디 갔다 왔냐고 묻길래 도서관이라고 했더니 농담으로 여겼다.

대부분의 휴가를 그렇게 보냈다. 여행을 떠났을 때도 가급적 ‘쉼 모드’를 택했다. ‘온천이라도 가자’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한 온천 휴양지를 갔다가 손님이라고는 오로지 나 혼자뿐인 미지근한 온천탕에서 때를 밀고, 눈에 띄는 시외버스를 타고 내키는 대로 가는 것이 나의 휴가 여행법이다.

꽉 짜인 휴가 여행은 질색이었다. 시간대별로 어디를 갈지, 심지어 어느 식당을 갈 것인지까지 꼼꼼히 휴가 일정을 잡는 것을 보면 나는 거의 경악한다. 휴가가 무슨 ‘일’ 인가. 

올해 나는 휴가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휴가 기간을 정할 때도 국가경축일을 미리 확인해 휴가 일수를 까먹지 않겠다는 직장인으로서의 에티켓을 잊지 않고 있다. 휴가 기간에 들을 몇 장의 CD와 만화책 리스트를 점검하고 있다. 올해 휴가는 명실상부한 ‘쉴 휴(休)자, 집 가(家)자형’ 휴가일 듯 하다. 게다가 갓 백일을 지난 아들이 있다는, 제법 번듯한 명분도 마련되었다.

하루에 스무 번이 넘는다는 기저귀 갈기에서부터 아들 목욕 수발까지 동참할 요량이다. CD를 걸어 놓고, 만화책을 보며 발가락으로 요람을 살살 흔들며 보내는 여름 휴가. 궁상스럽지 않냐고? 난 이런 궁상을 즐,긴,다.

*차형석/사회생활 8년째. 아직 막내입니다. 당분간 궁기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길에서 그들을 만나다
내가 아들과 배낭 여행을 하게 된 이유

  지금 고1인 우리 맏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니까 벌써 8년 전 일이다. 어찌 어찌하다 8월말 쯤에야 여름 휴가를 가게 되었다. 어디를 갈까 한참 고민하다가 기차를 타고 경주에 가서 순환 버스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냉방이 잘 된 승용차 뒷좌석에 아이를 싣고 유명 관광지 콘도에 가서 며칠씩 보내는, 틀에 박힌 휴가에 넌덜머리가 나던 터였다. 콘도 지하 편의점에서 하드를 사서 물고 컴퓨터 게임이나 즐기는 우리 애가 애초에 가족 휴가의 감흥 따위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런 식의 여행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떠난 길이었다. 거기서 그와 그의 남매를 만났다. 

   
  아이가 직접 배낭을 메니 제법 의젓하다.  
  경주 순환버스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다 보니 그의 가족과 내 가족은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는 내 나이 또래였는데 나보다 결혼을 일찍해 딸은 6학년이었고, 아들은 4학년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이들에게서 놀러 나온 철부지들의 들뜬 분위기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침착하고 여유가 있었다. 각자 배낭을 둘러멘 가뜬한 차림새였는데 마치 노련한 여행가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 아이들에게서 어째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그와 얘기를 해보고서 알았다. 그와 그의 아이들은 벌써 4년째 방학을 이용해 국내를 여행 중이었다. 남대문 시장의 상인인 그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까 고민하다가 ‘아버지와의 여행’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돈은 상황에 따라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과 경험은 절대로 잃어버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방학이 되면 일을 모두 그의 부인에게 맡기고 한달 내내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는데, 경주에 오기 전엔 일주일간 울릉도에 머물렀다고 했다. 

  그와 그의 아이들의 여행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우선 여행 계획과 예산을 모두 함께 합의해 짠다. 그들의 여행 계획표에는 매일의 일정이 시간 단위로 빼곡이 적혀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 사람이 아버지라 해도 애초의 룰을 어기고 돈을 조금이라도 낭비하려고 하면 난리가 난다고 한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도 그들 가족이 지켜온 철칙이었다. 여행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인데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하면 그런 즐거움을 잃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밥을 손수 지어먹을 수 있는 여관을 택한다는 것도 그들이 고수해온 원칙이었다. 역할을 분담해 먹는 문제를 해결하면 팀웍이 다져지고 경비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돈을 잃어버리거나, 폭우나 폭설같은 천재지변을 만나고, 질이 안 좋은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도전을 이겨낼 때마다 아이들이 강해지고 의젓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위험에 처하면 아버지도 슈퍼맨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란 걸 아이들이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해 여름 이후 우리 가족의 여행도 달라졌다.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흉내낼 수는 없지만 그 정신만은 본뜨려고 애 쓴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조만간 해외로 눈을 돌릴 생각’이라던 그 아름다운 가족이 어디를 누비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문정우/<시사저널> 편집장. 자녀에게 여행을 통해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폼새에서 연륜이 묻어납니다. 너무 훌륭한 말씀? 그냥 진부한 길을 못참을 뿐입니다 .  

 

사돈의 팔촌까지, 일곱 식구 모여 놀다
여름만 되면 뭉치는 엽기 패밀리

나의 여름 휴가 계획은 늦어도 5월이면 발동이 걸린다. 해마다 최소 13명~최대 18명이 움직이는 대규모 가족 여행을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 13명은 친정 식구만 참가할 때다. 부모님에, 제 짝을 찾은 네 남매를 합하면 어른만 열 명이고, 손주 셋을 더하면 열 세 명이다. 여기에 나의 시동생 부부네 가족을 포함, 시부모님이 가세하면 열 여덟 식구가 된다. 물경 ‘일곱 개의 패밀리’가 뭉치는 셈이다.  

   
  대식구가 뉴질랜드에서 보낸 단란한 한때.  
어떻게 이런 엽기 여행이 가능한가. 나는 집안의 장녀, 남편은 집안의 장남. 나의 친정 아버님과 시아버님이 대학 동기라는 ‘각별한 인연’이 사돈까지 아우르는 집단 가족 여행을 가능케 했다. 

계기는 따로 있었다. 5년 전 친정아버지가 큰 병으로 고비를 한번 넘기신 뒤, “부모님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여름 휴가는 최대한 가족이 함께 부대낀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사남매의 배우자들, 즉 사위와 며느리가 흔쾌하게 따르지 않았다면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솔직히 두 올케 처지에서 보면, 시부모와 매년 여름 휴가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사돈의 팔촌’ 수준인 시누이의 시댁 식구들과 부대껴야 한다는 것이 어디 녹록한 일이겠는가. 반바지에 민소매, 때론 수영복 패션까지 선보여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꿋꿋했다.

첫 출발은 2001년 여름의 괌 여행이었다. 2002년은 월드컵에 취해 어영부영 넘어갔고,  2003년은 제주도 여행, 2004년은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대부대가 이동하는 이유로 자연스레 우리의  가족 여행은 몇 가지 특징을 갖게 되었다.  우선 휴가는 7월 초로 잡는다. 다들 맞벌이라 날짜를 맞추려면 남들이 좋아하는 이른바 ‘성수기’는 피해야 한다. 마침 그 때 항공료나 숙박비가 싸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두 번째는 간편한 패키지 여행 대신 셀프형  여행을 택한다. 우선 호텔 보다는 콘도를 찾는다. 가족 여행의 제 맛을 살리려면 방이 두 세 개는 되고 널찍한 거실이 딸려야 제 격이다. 괌 여행 때는 LG에서 운영하는 ‘라데라 타워’를 두 채 빌렸고, 뉴질랜드에서도 오클랜드-로토루아-타우포를 거치는 북섬 일주 내내 주방 딸린 콘도식 별장에 머물렀다.

럭셔리한가? 사실 우리는 한 쌍의 백조였다. 수면 아래에서는 쉴 새없이 허우적댔다. 돈 아낄 궁리하랴, 욕구의 최대 공약수를 찾으랴, 몸으로 때우랴, 차라리 오리이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지를 고르고 숙소를 예약하고 렌트카를 빌리고 손수 운전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한 데 부대낄 기회가 늘어났다. 그리고 일곱 패밀 리가 각자 휴가를 보낼 때 드는 비용보다는 훨씬 싸다.

삼 세대, 일곱 패밀 리가 움직이다보니 갈등도 심심치 않다. 대표적인 것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나이 드신 분들은 아무래도 눈으로 보는 것을 좋아하고, 젊은 세대는 직접 몸으로 뛰어들어 즐기는 것을 원한다. 아이들도 제각각이다. 때로 사소한 의견 차이로 형성된 냉기류가 한나절씩 가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우리 집의 장녀, 남편은 시댁의 장남. 대가족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면 우리 부부는 남몰래 식은 땀을 훔친다.   

올해도 우리는 일찌감치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예약까지 마쳤다. 이번에는 ‘발리 클럽메드’에 콕 박혀 각자 다양한 놀이 활동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족 중 한 명이 ‘비행기를 타서는 안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자 여행 자체를 취소해 버렸다. 위약금만 1백만 원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된다는 것이 친정 아버지의 특명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는 물 건너가는 여행 대신, 설악산 근처 한 콘도에서 뭉치기로 했다.   

*이숙이/비행기를 타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란, 그녀의 임신입니다. 그녀는 마흔을 눈 앞에 두고 첫 아이를 가졌습니다. 

 

부부싸움을 끝내다
몸도 속도 편한 ‘공동 휴가’ 즐기기

 내 경우, ‘우리 가족끼리만 오붓하게’ 식의 여름 휴가는 거의 언제나 ‘불상사’로 끝이 났다. 불상사란, 아내와 빚는 크고 작은 의견 충돌과 불협화음, 신경전 등이다. 

 초행 길에는 으레 갖가지 일이 만발한다. 교통 체증 또한, 휴가철이면 각오해야 한다. 이것은 평소 생각이고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태도가 돌변한다. 모든 재난과 불운은 조수석에 앉은 ‘아내 탓’으로 돌아간다. 지도 읽기에 서툰 것도 트집거리가 된다. 

   
  가족 여행지로는 휴양림이 무난하다.  
  취향이 다른 것도 불상사를 부르는 원인이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취향이 아니라 그 순간의 기분이다. 기분이 좋으면, 나는 빵을 먹고 싶지만 아내가 자장면을 먹자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뭔가 기분이 잔뜩 상해 있을 경우, 빵이냐 자장면이냐는 ‘세계관의 문제’로까지 비화한다. 아이들이 끼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가령 이렇다. 아내와 운전 중 신경전이 붙었다. 아이들은 떠든다.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잔뜩 깔고 주의를 준다. 고분고분 따르면,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니다. ‘그만 떠들라고 그랬지?’ 이런 고함이 사실은, 나의 불만을 애꿎은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야비한’ 수법임을 내 아내는 누구보다 잘 안다. 

  몇 년 전 주문진 여행 때도 그랬다. 이틀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돌아오는 ‘대형 참사’로 끝이 났다. 발단은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옛날 밥집에 가서 밥을 먹자 했고, 아내는 통나무집으로 된 카페에 들러 차나 한잔 하자고 했다. 일단 카페에 차를 댔으나 내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사실 카페냐, 밥집이냐도 싸움을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전후 사정은 기억나지 않으나(그 정도로 사소한 것이었으리라), 이미 우리는 신경전에 돌입한 상태였다. 또 죄없는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순간 아내의 얼굴에 ‘상종 못할 인간’이라는 표정이 스쳤다. 

  한번 뒤틀린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다. 숙소에 도착해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물놀이를 나갔을 때에도, 나는 한숨 자야겠다며 방구석에 혼자 틀어박혔다. 아이들도 눈치를 슬슬 보았다. 

  ‘좋자고 가는 휴가 여행을 이런 식으로 망쳐 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매번 도돌이표였다. 왜? 첫째 원인은 물론, 내 고질적인 성미에 있다(가끔씩 발동하는 아내의 발끈하는 ‘성깔’도 솔직히 말해 예사롭지는 않다). 그러나 구조에도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3박4일’ ‘4박5일’ 꼬박 붙어있다 보면 불만이 쌓여도 퇴로가 없다. 

 문제는 또 있다. 내 생각에 휴가는 말 그대로 ‘쉬는 것’이어야 했다. 나는 딸만 둘이다. 여성이 많은 처가 식구들과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운전수에, 짐꾼 노릇을 면치 못했다(아내도 그랬을까? 알 수 없다). 

  우리 가족의 여름 휴가는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인가. 아니다. 내가 개과천선을? 더더욱 아니다. 비결은 휴가 패턴을 바꾼 데 있다. 평소 친하게 어울리는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인연을 맺게 된 비슷한 또래, 비슷한 처지의 가족들이다. 올해로 3년째이다. 장소 또한 편히 쉴 수 있는 휴양림을 찾는다. 

  함께 하니 여러 모로 좋았다. 아무리 ‘한 성질’ 하는 나라고 해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장점이 있다. 평소라면 혼자서 낑낑 거리고 감당해야 할 일을 분담할 수 있다. 특히 아이를 건사하는 부담이 크게 준다. 아이들은 여럿이 모이면 ‘기특하게도’ 저희끼리 놀기를 더 좋아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한창을 떠들던 아이들이 피곤에 지쳐 잠에 떨어지면, 어른들 만의 잔치가 시작된다. 이 때가 제 맛이다. 모두 한잔 씩 걸쳤기 때문에, 분위기가 한결 느긋해진다. 밤하늘에 별도 보이고, 평소 안 들리던 풀벌레 소리,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 온다.  빡빡한 생활 리듬에 꽉 막혀 있던 오감이 슬슬 살아나는 것이다. 

  여름 휴가를 잘 지내기 위한 최대의 관건은 행선지도 숙박지도 아니다. 마음의 여유다. 그 여유를 혼자 찾기 힘들면, 여럿이 찾는 것도 방법이다. 공동 휴가는 의외로 효율이 높다.

*박성준/딸이 둘인 그는 실은 둘도 없는 애처가입니다. 하지만 한번 뚜껑이 열리면 아무도 말리질 못해 편집국 식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혈죽계’랍니다. 

 

잃어버린 친구를 찾아서
태국의 이면, 삶의 이면

  ‘뭘 부쳐? 그냥 들고 가지?’ 나의 태국행은  아내의 한 마디에서 비롯되었다. 은퇴하고 태국에 장기 체류 중이던 편집국 대선배가 귀한 원고를 보내주어, 그 기사가 실린 책을 우편으로 부칠 참이었다. 

  무슨 일로 바빴는지 나는 아내에게 우편 심부름을 부탁했다. 그런데 아내가 툭, 의외의 제안을 한 것이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10여년 전 홀연히 사라진 나의 절친한 친구가 태국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내처 물었다. “얼마면  돼? 백만 원?”(이래서 나는 아내를 이길 수 없다) 

   
  호수와 밀림이 한데 어울려 있는 태국 상카부리.  
  비행기 표는 38만원이었다. 현금박치기로 표를 구해, 말 나온 지 10여시간 만에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히말라야며, 이집트며 이런저런 오지를 남부럽지 않을 만큼 다녔다. 몇 번 가봤지만 태국은 나에겐 가장 편하고, 손쉬운 관광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가슴이 두방망이질쳤다.    순전히 두 사람 때문이었다. 글발 좋고, 성품이 반듯했던 나의 선배는 번잡스런 사회 생활을 끝내고 ‘조촐하나 풍요로운’ 노후를 즐기고 있었다. 반면 나의 친구는 지옥같은 한 철을 보냈을 터였다. 

  사단이 나기 전 우리는, 떼로 모여 부부 동반으로, 가족처럼 지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 땅에 아내를 남겨놓고 사라졌다. 뒷 말이 무성했다. 그러나 내막을 제대로 아는 이는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 땅에 남은 그의 아내와 오히려 절친하게 지냈다.  

  허위허위 태국에 도착한 나를 보고, 친구는 반색했다. 옆에는 당차 보이는 태국 여성이 함께 있었다. 둘을 섞어 닮은 아이도 있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감정이 남달랐다. 

  선배 내외와 나, 나의 친구는 넷이서 태국 골골을 누볐다. 다행히 내가 존경하던 선배와 나의 친구는, 나로 인해 얼마 전 안면을 텄던 터였다. 번잡한 도심이나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곳을 일부러 골라잡았다. 과연 태국은 내가 익히 알던 것과 또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매끼 다른 음식을 맛보며, 쉬이 접하기 어려운 곳을 골라 다녔다. 

  취향이 남달라, 은근히 모시기 어려운 나의 선배는 흔쾌히 ‘젊은’ 우리와의 여행을 즐겼다. 우리는 두 번 나들이를 했다. 한번은 태국의 밀림 지역 상카부리로 갔고, 한번은 왕실 리조트가 있는 후아힌 해변으로 갔다. 

  태국의 새로운 모습에 눈떠가는 짬짬이 나는 친구에게 조금씩 말을 건넸다. 10여년 동안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항변 한마디 하지 않은 친구의 심경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돈많은 외국 여자를 찾아 떠났다는 소문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친구는 그동안 일구었던 모든 것을 한국 땅에 남겨두고 맨 몸으로 태국행을 택했다. 양말 한 짝, 팬티 한 장까지 새로 장만해야 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태국인 아내에게도 과묵했던 모양이었다. 태국의 아내는, 여행이 끝날 즈음 그에 관한 내 말을 듣고 눈물을 떨궜다. 내 영어가 짧지만, 뭐가 전해지기는 한 모양이었다. 태국에는 다시는 부서지면 안 될 화목하고 행복한 한 가정이 있었다.

  풍요한 나라 태국은 축복받은 나라이다. 땅은 넓고 비옥하며 인구는 적고 기근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친구의 새로운 얼굴을 보았다.

*백승기/만능 스포츠맨에 안 가본 곳이 드물 정도로 여행 경험이 다채롭습니다. 그런 그가 여행지 정보가 아니라 사람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도시 빈민, 피렌체 가다
9할이 빚인 그녀의 ‘럭셔리’ 여행기

  그녀는 여름 휴가 때면 이불을 빨았다. 그리고 한해 걸러 한번 씩은 전셋집을 구하러 다녔다. 한 해는 즐겁고, 한 해는 괴롭다. 이불을 짱짱한 햇빛에 내말리면 기분까지 뽀송뽀송해진다. 하지만 뙤약볕에 정보지를 옆에 끼고 방을 구하러 다닐라치면 혀빼문 개가 따로 없다. 

  2년마다 전셋집은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었다. 처음에는 1천2백만 원부터 시작했다(상당액이 빚이었다). 그러다가 겨우 3천5백만 원까지 올랐다(여전히 8할은 빚이었다). 지방에 사는 분들은 짐작 못하실지 모르겠는데 그 돈으로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일은, 좀 비참하다. 1층이라고 해서 가보면 반지하고, 반지하라고 해서 가보면 지하방이다. 아니면 옥탑방이다. 

   
  피렌체는 3대 여행 명소로 꼽힌다.  
  그러던 그녀가 전문여행가들이 '꼭 가봐야할 곳 베스트 파이브'에 꼽는다는 피렌체에 갔다(‘베스트 쓰리’에 꼽는 사람도 봤다). 궁티는 면면히 흘렀다. 당시는 무슨 사연이 있어 독일에 장기 체류할 때였다. 기차값이 부담스러워 뮌헨도, 베를린도 못갔다. 한국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어디어디 가봤냐고 물어볼텐데, 창피했다. 

  궁하면 통하는 법. 유럽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유명한 저가 항공사가 있다(유용한 정보이니 사이트 주소를 밝힌다. www.ryanair.com). 어느 정도 싼가하면 이탈리아 피사까지 가는 왕복 비행기가 5~6만원 밖에 안한다. 시간대에 따라 스무배쯤 비싸지기도 한다. 하지만 새벽 첫 비행기표는 똥값이다.    

 선배 차를 얻어타고 컴컴한 새벽 길을 두어 시간 달렸다. 공항이라고 가보니 허걱, 그냥 잡초가 우거진 운동장이다. 보딩 패스도 종이를 코팅해 재활용한다(입장 후 반납한다. 존경스럽다). 어쨌든 라이언에어 덕에 그들은 이탈리아로 갔다. 그 덕에 영국도 갔다. 친구가 있어 빌붙었다. 

  궁티를 내다가 결국은 사단이 났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지중해 푸른 물결은 봐야지.’ 그런데 파라솔이 있는 곳에서는 돈을 내라고 한다. 뭐하러? 해변 귀퉁이까지 죽어라 걸었다. 더위에 헐떡이던 남편은 수영복이 없다고 투덜댔다. 까짓 거 그냥 벗으라고 했다. 엉거주춤 바지를 내리고 있는데 누가 달려와 뭐라고 뭐라고 한다. 남편이 난처한 표정이다. 그리고는 터졌다. “옷벗으려면 돈 내야 한대잖아!” 그녀도 열받았다. 남편 몫의 여권과 비행기표를 던져놓고 해변에서 찢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돈 아끼는 데는 죽이 잘 맞았다. 피렌체에서 겨우 찾은 한국인 민박집에서 ‘공짜 지도’를 줄 수 없다고 하자, 그 길로 그 집을 박차고 나올 정도였다.  

  딱 한번 호기를 부린 적도 있다. 마침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었다. 16강전에서 탈락한 이탈리아는 독이 오를대로 올라 있었다. 그 기세에 눌려 남편과 그녀는 ‘아, 쏘 데스네?’ 하며 일본인인 체했다. 그러다가 가방 가게에 들렀다. 피렌체는 피혁 제품이 유명하다. 손님은 왕. 어디서 왔냐길래 한국인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점원이 ‘우리의 아주리 군단이 편파적인 심판 때문에 패했다’며 숫제 잡아먹을 기세였다. 하지만 그는 프로였다. 어느 순간, 실실 웃더니 ‘어쨌든 한국 팀이 이긴 걸 축하한다’고 했다. 넉살좋게 악수까지 청했다. 이번에는 한 푼도 안깎았다. 그 가방은 지금 그녀의 시누이가 쓴다. 

  참, 피렌체는 ‘꽃의 성당’으로 불리는 두오모 성당이 유명하지만, 나는 우피치 미술관이 더 좋았다. 고졸한 맛이 있다. 그리고 유료지만 안비싸다. 강추다.

*노순동/피렌체에서 돌아온 그녀는 또 전셋집 구하기 전선에 나섰습니다. 전셋값은 또 오릅니다. 이젠 9할이 빚입니다.  

 

무작정 떠난 여행
그 해 여름 동해가, 지중해가 된 까닭

  지난해 여름, 나는 비참한 심정으로 휴가 여행을 떠났다. 1년 동안의 휴직 기간을 마치고 일하는 재미에나 흠뻑 빠져볼 참이었는데, 출근 며칠 만에 나는 회사로부터 일할 권리를 정지당했다. ‘속히 출근하라’는 직속 선배의 독촉을 받고 나왔는데, 회사 경영지원실에서는 ‘누구 맘대로 복직했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마침 회사에서는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었다. ‘있는 사람도 자르려는 마당에 휴직했던 사람을 어떻게 받느냐’는 논리였다. 나는 떠났다. 행선지도, 숙박지도 정하지 않은 채였다. 마음 속이 ‘난리부르스’였다.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강릉까지 냅다 달렸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경포대나 속초에 여장을 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강릉에서 동해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무작정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해안도로가 연결된 곳이 나오면 가차없이 핸들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유명하지 않은, 그래서 인적이 드문 작은 바닷가 마을을 찾아내고 싶었다.  

   
  아이들도 천렵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동해고속도로가 끝나고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더 내려가던 길에서 맘에 딱 드는 작은 항구를 발견했다. 삼척시에서 남쪽으로 20여 킬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장호항이었다. 반달 모양의 작은 해안을 따라 백사장이 펼쳐진 장호항은 아담했고, 휴가객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이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었다.

  장호항은 워낙 작아서 걸어서 마을 전체를 돌아보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고기를 낚고 있었다. 낚시꾼들은 간만에 찾아온 휴가객이 반가웠는지 손수 낚은 방어 따위를 회 쳐서 선뜻 나눠주었다. 회 한두 점에 소주 한 잔 얻어먹는데 만족하지 못한 남편은 아예 소주 여남은 병을 사서 낚시꾼 무리 속으로 끼어들었다. 

  그 날 저녁 우리 가족은 정선에서 왔다는 낚시꾼 무리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며 소주와 회로 저녁을 ‘때웠다’. 회사 일로 심란해 하는 마누라는 안중에도 없이 천렵의 재미에 흠뻑 빠진 남편이 얄미워 조금 심통을 부리기는 했지만, 그런 자리가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그 날 밤, 우리는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과 그 별들을 품에 안은 밤 바다를 질리도록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다음 날 새벽에는 장호항과 바로 옆 동네 용화해수욕장을 잇는 야트막한 산을 돌아보았다.   장호항은 반달 모양이다 보니 야트막한 언덕들이 바닷바람을 막아주어 파도가 사납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해안가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컵라면이나 열무국수로 배를 채우며 바닷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갖가지 물고기들이 놀고 있어 물안경만 쓰고도 스노클링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해 여름 동해를 나는 ‘나의 <지중해>’로 삼았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 나는 그 지중해에 영영 틀어박히지 못하고, 이렇게 기어나와 이 글을 쓰고 있다. 

*안은주/인도에 1년 머물다가 한국에 돌아와 다시  의욕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그녀를 열받게 한 회사가 어느 곳인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학습도감 옆에 끼고
가족과 함께 즐기는 체험놀이

몇 년째 무작정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다. 미리 콘도 예약도 하고 들를만한 유적지와 맛집을 챙기면 좋으련만, 이상하게 그 일을 하기가 싫었다. 휴가 전에 우리 가족이 세우는 계획이란 고작 떠나기 전 날 방향을 정하는 것뿐이었다. 

 지난해에도 그런 식으로 여행을 떠나서 삼봉산 휴양림 밑에 있는 민박집에서 이틀을 지냈다.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민박집에서 옥수수를 뜯어먹는 불편한 휴가였지만, 식구들은 별 불만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까매진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가득했다. 뜻밖이지 않은가. 화려한 볼거리와 편리함에 길든 아이들의 모습이.

   
  여행의 훌륭한 동반자인 각종 도감들.  

 비결은 자동차 트렁크 속에 있었다. 매년 휴가를 떠날 때마다 내가 수저보다, 삼겹살보다 먼저 챙겨 넣는 물건이 있다. 바로 각종 도감들이다. 지난해에는 <나무도감> <곤충도감> <무슨 나무야> <무슨 꽃이야>(이상 ‘보리’ 펴냄) <탐구도감> <놀이도감> <모험도감>(이상 ‘진선’ 펴냄)이 휴가지에 동행했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여러 도감은 우리 가족의 여행 가이드이자, 놀이기구이자, 숲 해설가나 다름없다.  

  휴가지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숙소 주위를 산책하는 일이다. 산이 있으면 오솔길을 걸어보고, 개울이 있으면 맑은 물에 발을 담가보고, 밭이 있으면 무슨 곡물을 심었는지 유심히 관찰해둔다. 그리고 아이들이 뒤따라 나오면 도감을 펼쳐들고 되새김질하듯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자연을 소개한다. 아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 분홍 싸리꽃이 7월에 피고, 멍석딸기와 산딸기가 어떻게 다르고, 사촌처럼 생긴 떡갈나무와 갈참나무와 신갈나무의 잎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었다.  

  잠자리가 자주 앉는 풀이 마타리와 오이풀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무슨 꽃이야>였다. 이 도감에는 패랭이꽃.꽃창포.뻐꾹채.짚신나물 같은 여름 꽃들이 어떤 모양인지 세밀화로 소개되어 있어, 아이들이 자연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무슨 나무야>에 실린 우리 나무 5배31종도 세밀화로 표현되어 있다. 역시 사진보다 훨씬 사실적이어서 자연에서 만나는 나무 이름을 쉽게 익힐 수 있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자연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나무나 꽃도 마찬가지이다. 미리 그 이름과 생태를 알고 있으면 훨씬 더 아름다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놀이도감>은 식사 뒤 뱃가죽이 탱탱해졌을 때  펴들곤 했었다. 도감에 실린 대로 민박집 꽃밭에 있는 분꽃을 연결해 목걸이를 만들거나, 창포 잎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리다보면 뱃가죽이 푹 꺼졌다. 그래도 안 될 때에는 그림자 밟기나 눈 가리기 술래․ 올라가기 술래․신발 감추기 같은 놀이를 했다. 땡볕 아래에서 아이들과 소리 지르며  땀 흘리다보면 묘한 쾌감이 찾아온다. 그리고 행복감과 함께 끈적끈적한 가족애를 맛본다. 

 올해에도 우리 가족은 또다시 무작정 산으로, 바다로 떠날 예정이다. 물론 아직까지 방향도 일정도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 가지는 예감할 수 있다. 책꽂이에서 도감을 꺼내 보는 날이 많아졌는데 이것은 휴가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번 휴가도 도감들과 함께 떠날 것이다.
           
*오윤현/산책을 나가면 가장 아는 게 많은 기자입니다. 그저 시골 출신이라서가 아니군요.   

 

나는 꿋꿋남이로소이다
고향 찾아 휴식 취하는 전통적 휴가

나는 여름 휴가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고향인 보성을 찾아보낸다. 보성은 남해안 다도해 지역을 끼고 있는 데다 해변 가까이에 유명한 녹차밭이 펼쳐져 있어 괜찮은 휴가지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게다가 내려가면 어릴 적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나로서는 귀향 본능을 자극하는 안성맞춤 휴가지인 셈.

   
  딸의 뽀뽀에 녹아내리고 있는 정희상 기자.  
나는 결혼 후 15년 가까이 매년 여름 휴가를 고향에서 보내도 질리는 법이 없었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시일이 흐를수록 “왜 여름휴가를 고향만 고집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아내는 시댁 마을로의 휴가는 진정한 휴가가 아니라 새로운 노동이라는 불만이다. 

 그래서 적당한 타협책을 생각해냈다. 아내의 고향이 광주이므로 휴가 말미에는 반드시 처가에 들러 어른들게 인사드리고 대접하는 것이다. 결국 나이 들어가면서 마음의 여유도 점점 없어지기에 여름 휴가를 이용해 겸사겸사 친인척 문안과 휴식을 같이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타협책도 시일이 흐르면서 흔들리고 있다. 맞벌이에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는 나이이기에 아내는 시댁이고 친정이고 떠나서 진정한 휴식을 맛보았으면 하는 눈치다. 그래도 나는 올 여름 휴가를 고향으로 갈란다. 대신 고향 가는 길에 드라마 <해신> 촬영지인 완도에 들러 며칠 보낸 후 고향은 잠시 들러 와야겠다. 에구,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귀향 본능은 점점 밀리고 있다.

*정희상/보기 드문 꿋꿋남입니다. 그 생활을 이토록 오래 유지하다니 남다른 비결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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