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병석에 눕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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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문제 하나. 10년 전 이맘때 서울지역 개봉관에 걸린 한국 영화는? 놀라지 마시라. 단 한편이었다. 박대석 역으로 열연한 박중훈이 총 한 자루 들고 좌충우돌하는 코믹물 <총잡이>(사진)였다.

10년 전에는 멀티플렉스가 드물었다. 그때 서울 개봉관을 다 합치면 서른여섯 곳. 이 가운데 <총잡이>를 상영한 극장은 단성사와 롯데월드 두 군데였다. 나머지 스크린은 할리우드 영화가 점령했다. 그해 여름 ‘대표 한국 영화’였던 <총잡이>도 흥행에는 참패했다.

한국 영화가 위기를 넘어 사멸이 거론되던 때, <시사저널> 제303호는 한국 영화가 나아갈 비상구를 찾아 나섰다.

위기의 원인은 ‘안전빵’ 영화 만들기에 있었다. 제작사는 돈은 적게 들여 흥행 가능성이 높은 코믹물만 만들고, 안성기·최진실·박중훈 등 인기 배우를 ‘겹치기 출연’시키는 ‘안전빵’ 제작 관행이, 결국에는 한국 영화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10년 후, 격세지감이다. <분홍신> <여고괴담4> <천군> <연애의 목적>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한 <웰컴투 동막골>까지 한국 영화가 올 여름 스크린을 점령했다. 올해 상반기 흥행 순위 1위(말아톤)부터 5위(댄서의 순정)까지도 한국 영화가 독차지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8월은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달이다. 8·15를 앞두고 재야에서는  범민족대회를, 정부는 광복 50주년 행사를 준비하며 남과 북은 서로 하나의 민족임을 상기했다. <시사저널> 제303호도 커버 스토리로 북한의 단군릉을 다루었다. 그 해 8월4일부터 6일까지 고대사를 전공한 남북 학자들이 일본 오사카 경제법과대학에 모여 ‘원시·고대 사회의 문명’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토론의 핵심은 북한이 발굴한 단군릉의 진위 여부였다.

하지만 세미나는 진지한 토론장이 아니라 ‘억지다’(한국측) ‘왜 안 믿느냐’(북한측)는 고성만 오가는 이념 전장이 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민족보다는 이데올로기가 앞선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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