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2차 빅뱅 시작됐다”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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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인터뷰] 강권석 기업은행장

 
국책 은행이지만, 연초부터 격화한 ‘은행대전’에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본격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직원들에게 파부침주(跛釜沈舟;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귀국할 때 탈 배를 가라앉혀 결사적으로 전쟁에 임함)의 자세로 돌격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시장은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중소기업 분야는 갈수록 은행권의 주요 승부처가 될 수밖에 없는데, 기업은행은 이미 상당한 비교 우위를 가진 중소기업 전문 은행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신감은 취임(2004년 3월) 이후 연체율과 부도율이 크게 떨어지고 순익 4천억원 안팎의 사상 최대 상반기 실적이라는 ‘어닝 서프라이즈’가 예고되는 터라 더했다. 창립 44주년 기념 행사(8월1일) 준비로 한참 바쁜 그를 7월19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기업은행의 네트워크론은 경기 불황기 중소기업의 구세주로 통했는데, 성과가 어떤가?
그거 물어보면 신난다. 지난해 5월 중소기업들이 정말 어렵다고 하고, 정부도 획기적 대책 마련에 부심하던 때였다. 중소기업 전문 국책 은행으로서 우리도 타개책 찾기에 골몰하던 차에 한 직원이 네트워크론 아이디어를 냈다. 이거다 싶었다. 당시 이헌재 부총리에게 말했더니 이렇게 좋은 게 왜 지금 나왔느냐며 반색했다. 그래서 네트워크론이 지난해 7월 나온 중소기업 종합대책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시행한 지 1년 가까이 된 지금 4백32개 대기업과 협약을 맺어 3천8백개 중소기업에  9천4백억원을 대출했다(7월13일 현재). 가속도가 붙고 있어 연말까지 2조원을 지원할 수 있을 것 같다. 네트워크론은 구매(발주) 계약서만으로 생산자금을 지원해주는 새롭고도 창의적 상품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자동 처리되는 네트워크론이 궤도에 오른 것은 대기업·중소기업·은행이라는 3자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인데, 앞으로 네트워크론 시리즈를 내놓을 작정이다.
 
네트워크 시리즈라면?
이미 지난 6월부터 건강보험공단과 협약을 맺어 메디컬 네트워크론을 시행하고 있다. 7만여 병·의원과 약국이 지원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 서비스업과 건설업, 정부 구매 사업 등으로 틈새 시장을 계속 개발할 것이다. 네트워크론은 우리의 블루오션 전략이기도 하다.

아예 지행장(지점장)들에게 블루오션 책을 읽도록 했다고 들었다.
거의 모든 은행이 우량 중소기업과 우수 개인 고객 유치라는 레드오션(한정된 시장)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이미 너무 경쟁이 치열하다. 새로운 전략과 발상 전환을 통해 빠른 성장과 높은 수익을 낼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 네트워크론이나 ‘독도는 우리땅 통장’, ‘e-브랜치 사업’ 등은 우리의 블루오션 시장이라고 자부한다.     

올해 들어 은행장들이 경쟁적으로 월례 조회사로 대내외 소통을 꾀하고 있는 인상이다. 조회사에서 무엇을 강조해왔나?
CEO의 상황 인식을 전달하고 결기를 다지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조회를 했는데, 비슷한 시기 다른 은행장들도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강조해온 큰 줄기는 변화와 혁신이다. 변화와 혁신은 블루오션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사실 공직자 시절 변화와 혁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막상 CEO가 되고보니 생각이 확 달라졌다. 가만히 있는 그 순간, 정체가 아니라 추락한다는 위기 의식이 들더라. 엄혹한 은행 현실이 이런 인식을 부채질한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전략과 발상 전환을 통해  빠른 성장과 높은 수익을 낼 새 시장을 찾아야 한다. 네트워크론이나 ‘독도는 우리땅 통장’ 등은 우리의 블루오션 시장이라고 자부한다.”

올해 벽두부터 은행장들이 ‘뱅크워’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그런 맥락인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은행권에 1차 빅뱅이 왔다면, 이제 내부 요인에 의해 2차 빅뱅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해만도 씨티은행이 국내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고, 스탠다드차터드 은행이 제일은행을 인수하는 등 대형화를 위한 합병·매수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3~4개 시중 은행, 2~3개 외국계 은행, 1~2개 국책 은행으로 시장이 재편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종합 경쟁력과 내부 효율의 차이가 2차 빅뱅에서 생존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국책 은행인 기업은행에도 이것이 사활적 요소가 되는가?
행장과 임원 임면권만 정부(지분 51%)가 가질 뿐 시중 은행과 똑같이 경쟁하고 있다. 이미 지배 구조가 상당히 민영화했고 세 국책은행(산업·수출입·기업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상장되어 있다(그는 취임 후 세차례에 걸쳐 1만5천주의 기업은행 주식을 사들였다). 직원들에게 국책 은행의 틀을 깨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국책 은행은 경쟁 대열에서 좀 비켜나 있었고 M&A라는 모진 바람을 겪지 않아 안이한 구석이 남아 있다.

중소기업 전문 은행인 기업은행이 개인 금융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체성 논란을 빚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80%가 넘는다.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늘려와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 시장 점유율이 15%대에서 17.7%(6월 말 현재)로 늘어났다. 그 결과 중소기업 금융 선도 은행 자리를 확실히 탈환했다. 기업은행은 처음 정부 기금을 재원으로 대출해 자금 조달 경로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전액 우리가 조달해야 한다. 자금 수요 주체인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장기이고 저원가성 자금인 가계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그래야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 중소기업 대출을 제대로 건전하게 할 수 있다. 개인 금융 강화는 일종의 균형 성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경기가 확연히 살아나면 정부에 비중 확대를 건의하려고 한다(중소기업은행법 시행령상 기업은행은 개인 금융 비중이 20% 미만으로 제한되어 있다).

 
“대기업을 뒷받침하는 것은 혁신적인 강소 기업들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협력한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상생해야 한다.”

이미 프라이빗 뱅킹(PB) 브랜드 ‘윈클래스’를 론칭하고 우체국 등과 업무 제휴를 하는 등 개인 금융 강화에 나섰지 않나?
개인 금융 비중(15%)을 아직 5% 가까이 늘릴 여지가 있다. 16만개 거래 중소기업을 조사해보니 사장이나 직원들이 기업은행과 개인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10%도 안 되더라. 우체국과 업무 제휴를 한 것은 이들에게 직원들이 봉급 이체를  부탁하니까 지점 수가 적어 부인들이 불편해 한다고 해서였다. 한국투자금융지주와 포괄 업무 제휴를 맺고 프랑스 소시에테 제너럴과 합작해 기은SG자산운용을 출범시킨 것은 종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다른 은행들은 지주 회사 체제를 꾸리거나 자회사 형태로 종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국책 은행은 그럴 수 없는 것 아니냐. 건설업으로 치면 단종 면허를 갖고 있는 셈이다. 윈클래스는 성공한, 혹은 성공할 중소기업 사장들을 ‘꼬시려고’ 내놓은 것이다.

다른 은행에 비해 사모투자펀드(PEF) 규모가 작고 집행이 늦어지고 있지 않은가?
PEF팀에게 불만이다. 돈 만들기 전부터 투자 업체를 선정하라고 했는데 늦어지고 있다. 이해는 된다. PEF가 대출과는 전혀 다른 금융기법이니 은행원의 사고나 생리와 괴리가 클 것이다. 1천2백억원을 조성했는데 조만간 중소기업 10곳에 투자할 것이다. 몇년 안에 펀드 규모를 1조~2조 원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저널>은 지난 3월부터 ‘한국의 강소 기업’이라는 특별기획을 진행하고 있는데, 강소 기업의 존재가 왜 중요하다고 보는가?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지만, 이들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강하고 혁신적인 강소 기업들이다. 획기적인 기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다 이들에게서 나온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은 큰소리칠 게 하나도 없다. 대기업 역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곧 대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말로만 협력한다고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상생해야 한다.

강행장은 꼭 30년간 공직에 몸을 담은 정통 재무 관료 출신이지만, '기(起`企`氣`基) up' 광고 카피를 쓸 정도로 아이디어가 많고 추진력이 강한 CEO로 유명하다. 반향이 컸던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이나 ‘중소기업인 명장’ 제도도 그의 작품이다. 공직을 천직으로 알았던 그에게 은행장 자리는 어떤 면에서 ‘덤’이지만, 목표(국내3강·글로벌 50대 은행)를 향해 마지막으로 필생의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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