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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군대를 허하라?

[문화비평]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ㅣ 승인 2005.07.29(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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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욱연  
뚱뚱하고 별 볼일 없는 여자 김삼순이 국민영웅이 되는 사회 분위기에 ‘필’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대법원 영감님들이 신선한 사고를 쳤다. 헌법재판소 영감님들이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던 관습법을 통쾌하게 날려 버리고, 여성도 종중 회원이 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호주제 폐지에 이어서 오랫동안 여성들을 막았던 또 하나의 사회적·문화적 금줄이 걷혔다.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이 뒤섞이는 가운데, 이제 남성만의 배타적 성역은 군대뿐이다. 군대를 어쩔 것인가.

군대 갔다 온 한국 남성들은 가끔 끔찍한 악몽을 꾼다. 다시 군대 소집 영장을 받는 꿈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군대의 기억은 끔찍하다. 그래서 남성들은 자기들만 좌로 취침 우로 취침하면서 죽을 고생을 한 것이 억울하고, 여성들이 국민의 의무는 수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요구한다고 불만이다.

이런 남성들의 비판에 보수 진영의 용감한 여성들이 맞대응하고 나섰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여성들이 “안보는 남성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여성에게 군대의 문을 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조만간 악몽의 남녀 평등화가 이루어질 것인가. 요즘 전투가 무식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것도 아닌 이상, 여성의 군대 진출은 앞으로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여성도 군대에 대한  악몽을 꾸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여성도 국민인데 왜 여성은 아직까지 군대에서 열외 상태인가. 대한민국 남자들이 여성도 군대에 보내는 이스라엘 남성보다 여성 보호 본능이 유달리 강해서? 여성을 군대에서 열외해 주는 것이 도대체 혜택인가, 차별인가?

우리 나라에서 군대는 단순히 나라 지키는 군사 기구가 아니다. 우리 나라 남자들은 군대에 서 총 쏘는 법이나 각개전투 요령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고 대한민국 문화의 진수를 체험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잔머리 굴리는 법을 배우고, 윗사람과 조직을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절대 복종하고 빡빡 기는 법을 배우고, 고참에게 당한 것을 어떻게 신참에게 되돌려 주는지를 배운다. 어떻게 해야 진짜 사나이가 되는지를 배운다.

대한민국 군대는 대한민국 문화를 재생산하는 문화적 교육기관, 특히 대한민국 남자를 진짜 사나이로 만드는 수컷 양성소이다. 그래서 군대 갔다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군대 갔다 오더니 사람 되었다고, 남자다워졌다고.

대한민국 남성에게 군대는 악몽이자 혜택

군 면제자보다는 방위나 공익근무요원들이, 방위보다는 현역이 한국 사회에 더 잘 적응하고 잘 생존하는 것은 군대에서 한국 사회의 서바이벌 비법을 배울 시간과 기회를 더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성은 대한민국 표준 국민이 될 교육 과정의 한 단계에서 배제된 셈이어서, 그만큼 한국 사회의 서바이벌 전쟁에서 남성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군대는 악몽이자 혜택이다.

여성에게 군대의 문을 여는 일은 여성에게 대한민국 표준 국민이 되고, 대한민국을 돌아가게 하는 문화적 원리를 몸소 체험할 혜택을 주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에게 군대를 허용하는 일이 남장을 하고 남성과 똑같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던 뮬란을 만드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는 차원에서는 평등한 것 같지만, 여성이 남성 문화를 체득해 남성이 되도록 만드는 일이자, 여성이 남성과 같아져야만 대한민국에서 여성도 생존할 수 있다는 남성중심주의이다.  

여성에게 군대의 문을 연다고 할 때,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악몽을 꾸게 하는 차원이나 여성을 남성화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남성 문화 시스템을 교란한다는 차원에서 사고할 일이다. 그래야 군대라는 또 하나의 국민 교육기관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는 대한민국 남성 문화 시스템이 달라질 것 아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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